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얄미운 정 대리는 어벙할 때 행복?

등록 2007-10-03 19:18수정 2007-10-03 19:28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2에서 떠오르는 ‘얍삽 포스’ 정지순의 두 얼굴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2에서 떠오르는 ‘얍삽 포스’ 정지순의 두 얼굴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2에서 떠오르는 ‘얍삽 포스’ 정지순의 두 얼굴

어딜 가도 이런 사람 꼭 있다. 상사 앞에서는 혀에 감기는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고 여러 사람이 있을 때는 지하수를 퍼올릴 정도로 겸손이 바닥을 뚫지만 만만한 동료나 후배와 있을 때는 ‘싸가지’가 순식간에 63빌딩을 올리는 사람. 9월 시작한 <막돼먹은 영애씨>의 시즌2에 새로 등장한 영애(김현숙)씨의 라이벌 정지순 대리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생긴 건 곰돌이 푸우인데 하는 짓은 여우 백 마리라 더욱 얄미운 정지순 대리. 시즌1에서 뚱뚱하고 서른 넘은 미혼 여성을 막 대하는 세상과 싸우던 영애는 이제 정 대리 하나 막기도 숨이 찰 지경이다. 막돼먹은 영애씨와 못돼먹은 정 대리의 혈전으로 <영애씨>이 시즌2는 쾌속 순항 중이다.

불여우, 그러나 지지리 궁상맨

“얼마 전에 자고 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제 이름이 검색순위 4위에 올라와 있다고. 옛날에는 이름 쳐보면 ‘정지 순으로 작동됩니다’이런 기계 사용법 같은 게 나왔는데 <영애씨> 이후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요.”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연기하는 배우 정지순(31)이 피부로 느끼는 요즘의 변화다. 익숙한 듯 낯선 얼굴이 스크린이나 티브이에서 눈에 번쩍 띄는 경우가 대부분 그렇듯 정지순 역시 10년 가까이 연극으로 다져진 연기자다. 또 그런 연극배우들 대부분이 그렇듯 2003년부터 방송과 영화 등에서 다양한 조·단역을 ‘생계형’ 아르바이트로 해왔다.

“단역할 때 가장 많이 했던 역할은 ‘선보는 남자’였어요. 상대방은 날 싫어하거나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 속없이 좋아하는 역할 있잖아요.” 순진하고 어벙해 보이기도 하는 인상 탓이다. 또 이런 얼굴 덕에 슬쩍 눈치라도 볼라치면 오히려 극적 반전이 이뤄져 얄미움이 증폭된다. <영애씨>의 정 대리가 시시때때로 해맑은 웃음 속에서 ‘얍삽’ 포스를 발휘하는 이유다. 정지순이 이 드라마에 캐스팅되는 계기가 된 베스트 극장 마지막 회 <드리머즈>에서도 그는 얌전했다가 꿈을 통해 폭력적으로 변하는 양면적 캐릭터를 연기했다.


처음 대본을 보면서는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때려주고 싶은 정 대리였지만, 그런 사람 왜 없겠나. 연극을 같이 했던 선배들 몇몇이 그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동극 할 때 한 여자 선배는 평소에 제 분장도 직접 해주고 너무너무 친절했어요. 그런데 남자친구와 싸움만 하면, 분장이 그게 뭐냐며 소리를 막 지르고 구박하다가 또 남친과 화해하면 잘해주고, 완전히 후배를 강아지 취급하는 사람이었어요. 또 어떤 선배는 술 심부름 시키고는 극장 앞에서 봉투 싹 뺏어가지고 가서는 더 윗선배한테 요즘 후배한테는 술 심부름도 못 시켜요 이러고. 이런저런 꼴 보기 싫어서 대학로에서 짐 싸서 선배 둘과 가난해도 맘 편하게 연극하자고 인천으로 갔어요.”

하지만 본인이 연기하는 정 대리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생동감 넘치는 연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 대리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싶어요. 시청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해 보여야 미워도 제대로 미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드라마 속 정 대리는 불여우일 뿐 아니라 지지리 궁상맨이기도 하다. 꽁초가 가득 찬 재떨이용 접시를 음식 먹는 접시로 쓰겠다고 가져가고, 군만두를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짜장면 그릇에 묻어놓는다. “군만두 에피소드에서 어릴 때 동생들이 하도 많아서 숨겨 놓고 먹는 습관이 들어서 어쩌구 하는 애드리브를 쳤거든요. 대본에 나온 건 아니지만 제가 생각한 정 대리의 배경이죠. 시골에서 동생 많은 장남으로 태어나 아끼고, 빨리 먹고, 밖에서 얻어먹을 때 많이 먹고, 이런 게 몸에 밴 사람이요. 앞으로는 이런 정 대리의 인간적인 모습이 더 많이 보이게 될 것 같아요.”

만약 정지순이 정 대리를 만나면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A형의 소심한 성격이라 영애씨처럼 행동할 것 같다고 한다. “가만히 있기는 너무 화가 나지만 대놓고 맞장을 뜰 자신은 없고, 그냥 코 후비고 찻잔 헹구는 정도의 복수? 소심하게 복수하고 나 혼자 킬킬거리면서 좋아할 것 같은데요.”

2년 전부터 교육방송 ‘어벙이’로 활약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2에서 떠오르는 ‘얍삽 포스’ 정지순의 두 얼굴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2에서 떠오르는 ‘얍삽 포스’ 정지순의 두 얼굴

정지순에게는 정 대리 말고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2년 전부터 해온 교육방송 <모여라 딩동댕>의 어벙이 캐릭터다. 많은 배우들에게 아동극은 신인 시절의 짧은 추억이지만 그는 아동극에 대한 애착이 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동극을 시작했을 때는 객석의 아이들이 안 보였어요. 눈이 지독하게 나쁜데 안경을 쓸 수가 없으니까요. 첫 월급을 받아서 렌즈를 사 꼈어요. 그때 처음으로 아이들 얼굴을 봤는데 나를 보는 눈빛이 너무 똘망똘망하고 예쁜 거예요. 그때부터 애들 앞이라고 대충 연기하면 안 된다고 결심하게 됐죠. 아동극 <모여라 딩동댕> 할 때도 제일 행복한 순간은 공연 끝나고 아이들과 악수하고 안아줄 때예요.”

지금까지는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닥치는 대로 드라마나 영화의 배역을 맡아왔지만 이제는 “잠깐 나오더라도 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가 가장 닮고 싶은 배우는 손현주. 손현주처럼 “어디에다 갖다놔도 튀지 않고 온전히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얄미운 정 대리’의 목표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