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2에서 떠오르는 ‘얍삽 포스’ 정지순의 두 얼굴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2에서 떠오르는 ‘얍삽 포스’ 정지순의 두 얼굴
어딜 가도 이런 사람 꼭 있다. 상사 앞에서는 혀에 감기는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고 여러 사람이 있을 때는 지하수를 퍼올릴 정도로 겸손이 바닥을 뚫지만 만만한 동료나 후배와 있을 때는 ‘싸가지’가 순식간에 63빌딩을 올리는 사람. 9월 시작한 <막돼먹은 영애씨>의 시즌2에 새로 등장한 영애(김현숙)씨의 라이벌 정지순 대리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생긴 건 곰돌이 푸우인데 하는 짓은 여우 백 마리라 더욱 얄미운 정지순 대리. 시즌1에서 뚱뚱하고 서른 넘은 미혼 여성을 막 대하는 세상과 싸우던 영애는 이제 정 대리 하나 막기도 숨이 찰 지경이다. 막돼먹은 영애씨와 못돼먹은 정 대리의 혈전으로 <영애씨>이 시즌2는 쾌속 순항 중이다.
불여우, 그러나 지지리 궁상맨
“얼마 전에 자고 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제 이름이 검색순위 4위에 올라와 있다고. 옛날에는 이름 쳐보면 ‘정지 순으로 작동됩니다’이런 기계 사용법 같은 게 나왔는데 <영애씨> 이후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요.”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연기하는 배우 정지순(31)이 피부로 느끼는 요즘의 변화다. 익숙한 듯 낯선 얼굴이 스크린이나 티브이에서 눈에 번쩍 띄는 경우가 대부분 그렇듯 정지순 역시 10년 가까이 연극으로 다져진 연기자다. 또 그런 연극배우들 대부분이 그렇듯 2003년부터 방송과 영화 등에서 다양한 조·단역을 ‘생계형’ 아르바이트로 해왔다.
“단역할 때 가장 많이 했던 역할은 ‘선보는 남자’였어요. 상대방은 날 싫어하거나 관심도 없는데 나 혼자 속없이 좋아하는 역할 있잖아요.” 순진하고 어벙해 보이기도 하는 인상 탓이다. 또 이런 얼굴 덕에 슬쩍 눈치라도 볼라치면 오히려 극적 반전이 이뤄져 얄미움이 증폭된다. <영애씨>의 정 대리가 시시때때로 해맑은 웃음 속에서 ‘얍삽’ 포스를 발휘하는 이유다. 정지순이 이 드라마에 캐스팅되는 계기가 된 베스트 극장 마지막 회 <드리머즈>에서도 그는 얌전했다가 꿈을 통해 폭력적으로 변하는 양면적 캐릭터를 연기했다.
처음 대본을 보면서는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때려주고 싶은 정 대리였지만, 그런 사람 왜 없겠나. 연극을 같이 했던 선배들 몇몇이 그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동극 할 때 한 여자 선배는 평소에 제 분장도 직접 해주고 너무너무 친절했어요. 그런데 남자친구와 싸움만 하면, 분장이 그게 뭐냐며 소리를 막 지르고 구박하다가 또 남친과 화해하면 잘해주고, 완전히 후배를 강아지 취급하는 사람이었어요. 또 어떤 선배는 술 심부름 시키고는 극장 앞에서 봉투 싹 뺏어가지고 가서는 더 윗선배한테 요즘 후배한테는 술 심부름도 못 시켜요 이러고. 이런저런 꼴 보기 싫어서 대학로에서 짐 싸서 선배 둘과 가난해도 맘 편하게 연극하자고 인천으로 갔어요.” 하지만 본인이 연기하는 정 대리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생동감 넘치는 연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 대리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싶어요. 시청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해 보여야 미워도 제대로 미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드라마 속 정 대리는 불여우일 뿐 아니라 지지리 궁상맨이기도 하다. 꽁초가 가득 찬 재떨이용 접시를 음식 먹는 접시로 쓰겠다고 가져가고, 군만두를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짜장면 그릇에 묻어놓는다. “군만두 에피소드에서 어릴 때 동생들이 하도 많아서 숨겨 놓고 먹는 습관이 들어서 어쩌구 하는 애드리브를 쳤거든요. 대본에 나온 건 아니지만 제가 생각한 정 대리의 배경이죠. 시골에서 동생 많은 장남으로 태어나 아끼고, 빨리 먹고, 밖에서 얻어먹을 때 많이 먹고, 이런 게 몸에 밴 사람이요. 앞으로는 이런 정 대리의 인간적인 모습이 더 많이 보이게 될 것 같아요.” 만약 정지순이 정 대리를 만나면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A형의 소심한 성격이라 영애씨처럼 행동할 것 같다고 한다. “가만히 있기는 너무 화가 나지만 대놓고 맞장을 뜰 자신은 없고, 그냥 코 후비고 찻잔 헹구는 정도의 복수? 소심하게 복수하고 나 혼자 킬킬거리면서 좋아할 것 같은데요.” 2년 전부터 교육방송 ‘어벙이’로 활약
정지순에게는 정 대리 말고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이 있다. 2년 전부터 해온 교육방송 <모여라 딩동댕>의 어벙이 캐릭터다. 많은 배우들에게 아동극은 신인 시절의 짧은 추억이지만 그는 아동극에 대한 애착이 크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동극을 시작했을 때는 객석의 아이들이 안 보였어요. 눈이 지독하게 나쁜데 안경을 쓸 수가 없으니까요. 첫 월급을 받아서 렌즈를 사 꼈어요. 그때 처음으로 아이들 얼굴을 봤는데 나를 보는 눈빛이 너무 똘망똘망하고 예쁜 거예요. 그때부터 애들 앞이라고 대충 연기하면 안 된다고 결심하게 됐죠. 아동극 <모여라 딩동댕> 할 때도 제일 행복한 순간은 공연 끝나고 아이들과 악수하고 안아줄 때예요.”
지금까지는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닥치는 대로 드라마나 영화의 배역을 맡아왔지만 이제는 “잠깐 나오더라도 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가 가장 닮고 싶은 배우는 손현주. 손현주처럼 “어디에다 갖다놔도 튀지 않고 온전히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얄미운 정 대리’의 목표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처음 대본을 보면서는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때려주고 싶은 정 대리였지만, 그런 사람 왜 없겠나. 연극을 같이 했던 선배들 몇몇이 그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동극 할 때 한 여자 선배는 평소에 제 분장도 직접 해주고 너무너무 친절했어요. 그런데 남자친구와 싸움만 하면, 분장이 그게 뭐냐며 소리를 막 지르고 구박하다가 또 남친과 화해하면 잘해주고, 완전히 후배를 강아지 취급하는 사람이었어요. 또 어떤 선배는 술 심부름 시키고는 극장 앞에서 봉투 싹 뺏어가지고 가서는 더 윗선배한테 요즘 후배한테는 술 심부름도 못 시켜요 이러고. 이런저런 꼴 보기 싫어서 대학로에서 짐 싸서 선배 둘과 가난해도 맘 편하게 연극하자고 인천으로 갔어요.” 하지만 본인이 연기하는 정 대리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생동감 넘치는 연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 대리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싶어요. 시청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해 보여야 미워도 제대로 미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드라마 속 정 대리는 불여우일 뿐 아니라 지지리 궁상맨이기도 하다. 꽁초가 가득 찬 재떨이용 접시를 음식 먹는 접시로 쓰겠다고 가져가고, 군만두를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짜장면 그릇에 묻어놓는다. “군만두 에피소드에서 어릴 때 동생들이 하도 많아서 숨겨 놓고 먹는 습관이 들어서 어쩌구 하는 애드리브를 쳤거든요. 대본에 나온 건 아니지만 제가 생각한 정 대리의 배경이죠. 시골에서 동생 많은 장남으로 태어나 아끼고, 빨리 먹고, 밖에서 얻어먹을 때 많이 먹고, 이런 게 몸에 밴 사람이요. 앞으로는 이런 정 대리의 인간적인 모습이 더 많이 보이게 될 것 같아요.” 만약 정지순이 정 대리를 만나면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A형의 소심한 성격이라 영애씨처럼 행동할 것 같다고 한다. “가만히 있기는 너무 화가 나지만 대놓고 맞장을 뜰 자신은 없고, 그냥 코 후비고 찻잔 헹구는 정도의 복수? 소심하게 복수하고 나 혼자 킬킬거리면서 좋아할 것 같은데요.” 2년 전부터 교육방송 ‘어벙이’로 활약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2에서 떠오르는 ‘얍삽 포스’ 정지순의 두 얼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