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Esc]문득 생각난
지나간 계절이 기억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90년대 초반의 어느 여름은 타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 매일 한낮에 걸었던 지하철 2호선의 한 역 주변 풍경으로 남아 있고, 몇년 전 가을은 부산 앞바다를 부드럽게 휘감던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쓰리 타임즈>의 삽입음악 ‘레인 앤 티어스’로 기억된다.
2007년 가을은 한 편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아일랜드 음악 영화인 <원스>다. 영화 기사를 챙겨 보는 독자들은 이미 이 영화를 극찬하는 기사를 여러 번 봤을 테니 굳이 여기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거리의 악사인 남자와 가난한 피아노 연주자인 여자가 만나서 이야기하고 함께 노래를 녹음하게 된다는, 그러니까 특별한 이야기도 없는 이 영화를 보노라면 그들과 함께 쌉싸름한 가을 공기를 마시며 함께 더블린 거리를 걷는 것 같고, 악기점의 피아노 위에서 이들이 화음을 맞춰 가며 완성하는 노래를 곁에 앉아 고요하게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극장을 나오면 변한 건 하나도 없지만 살아가는 데 작은 용기를 얻은 기분이다.
지난달 20일 <원스>는 상영관 두 군데서 개봉했으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상영관이 17개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이 가을을 추억할 ‘꺼리’를 아직 만들지 못한 독자라면 <원스>를 보시라. 분명 2007년의 가을은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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