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시각표〉를 아십니까
[매거진 Esc] 구제금융과 인터넷의 파고를 넘어 34년째 가판대 지키는 마지막 잡지의 분투
<시각표>를 기억하시는지. 대낮에도 어둡기 일쑤인 지방 소도시의 시외버스 터미널. 그물에 쌓인 계란과 쥐포를 굽는 가스레인지 아래 가판대에 끼워져 있던 잡지. 그 잡지가 34년째 나오고 있다.
“1974년 당시 철도국에서 근무하던 아버지 안종복씨가 창간했어요. 부정기적으로 발행하던 철도시각표를 정기간행물로 등록한 거지요.”
지금은 아들 안영선(54)씨가 발행인. 그때나 지금이나 <시각표>는 똑같다. 책의 첫장부터 마지막까지 시각표. 다만 열차 시각표 하나만 있던 게 시대가 바뀌면서 시외버스, 고속버스, 여객선, 고속철도(KTX) 시각표가 차례로 추가됐을 뿐.
주 용도는 기업의 ‘출장비 정산용’
재밌게도 주 용도는 ‘기업의 출장비 산출용’이다. 사실 정기구독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기업체 회계부서다.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전까지만 해도 200부를 보는 기업도 있었다고 한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시간표 하나를 받으려면 몇 년 동안 담당자에게 공을 들여야 해요. 잡지에 반송봉투를 덧붙여 보내지요. 해당 터미널에 수정사항이 있으면 표시해 보내달라는 거죠. 하지만 ‘돈 받는 거 아니냐’며 잡지를 통째로 반송하는 경우도 있어요.”
<시각표>가 결간한 적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대부분 갑작스런 요금 인상 때문이었다. 1970년대 유류 파동 때는 인쇄까지 해놓고서 보내질 못했다. 열차·버스 시간표와 함께 운임이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숫자로만 이뤄진 잡지에서 틀린 숫자는 가치가 없었다.
<시각표>의 가장 큰 위기는 1997년 구제금융 사태와 인터넷의 출현이었다. 한국 경제는 경제 위기를 인터넷 붐으로 넘겼지만, <시각표>에게 이들은 연이은 간난의 고개였다. 한때 3만부를 넘나들던 발행부수도 구제금융 사태를 겪고 1만부 이하로 줄어들었고, 만드는 사람도 아버지만 남았다. 광고도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한 부 5천원짜리 잡지를 팔아서는 도무지 이문이 나지 않았다.
“구제금융 사태 이후 저도 이 일에 뛰어들었고, 아버지와 함께 <시각표>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 지난해 아버지가 77살로 돌아가셨어요.”
돌연사였다. <시각표>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떠난 아버지가 야속했다. <시각표>는 이제 아들의 몫이 됐다. 지금은 발행사를 ‘철도여행문화사’에서 ‘관광교통문화사’로 바꾸고 온라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시외버스 시간표도 소도시 터미널까지 확대하는 등 여러 구상을 하고 있다.
창업자 돌연사, 아들이 물려받아
<시각표>에는 마니아들이 많다. 우선 철도 마니아들이 <시각표>를 으뜸으로 친다. 인터넷에서는 출발지와 도착지를 일일이 넣어야 정차시간이 나오지만, <시각표>에는 열차편명에 따라 모든 역의 시간표가 나온다. 안씨는 “잘못된 기재 사항을 알려주는 전화가 자주 온다”고 말했다.
1974년 9월 나온 월간 <시각표> 1호 첫장에는 “월간 관광교통 시각표는 친절, 정확이 생명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1970~80년대 팔도일주를 떠나는 사람들의 손에는 <시각표>가 들려 있었다. 사람들이 편리와 속도에 빠져 잊은 사이 <시각표>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창간 정신을 지키고 있었다. 안씨의 아버지 안종복씨도 ‘거리의 안내자’라는 말을 즐겨 썼다고 한다. 매달 나오는 <시각표>의 가격은 5천원. 연간 구독료는 5만원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또 다른 국내외 시각표들
영국은 134년 전통 자랑
⊙ 에어타임스= 한국과 외국을 정규 운항하는 여객기의 시간표가 망라돼 있다. 1994년 7월 김경수(49) 에어타임스 대표가 창간해 오늘에 이른다. 김 대표는 “대부분 여행사가 대량 구매해 기업체 등 주요 고객들에게 나누어 준다”며 “한 달 4만5천부를 발행한다”고 말했다. 인천·김포·김해공항 등 전국 공항에서 출발하는 여객기의 시간표, 편명, 기종, 비행시간, 경유지, 등급별 좌석까지 소개한다. 개인 정기 구독도 가능하다. 월간 잡지 한 부 1500원, 연간 구독료 1만5천 원. (02)464-7691.
⊙ 토머스쿡 열차시각표= 1873년 처음 영국 토머스쿡 출판사가 발행해 지금까지 시판되는 열차 시간표. 매달 나오는 유럽 열차시각표와 두 달에 한 번씩 나오는 국외 열차시각표가 있다. 국외 열차시각표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메리카 등 주요 간선 철도 시간까지 나와 있다. 자유 여행자를 위해 계절별로도 나온다. 배낭여행 전문 내일여행의 김남경 전략기획부장은 “유럽 열차시각표는 한때 유럽 배낭여행의 필수 지참물로 통했으나, 인터넷 시각표의 보급으로 갖고 다니는 이가 드물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머스쿡의 전통과 관록은 아직까지 세계 최고. 교보문고나 아마존 등에서 주문을 할 수 있다. 3만원 정도.
⊙ 한눈에 보는 열차(Trains at a glance)= 인도 장기 배낭여행자들은 대부분 이 책으로 일정표를 짠다. 정규 버스 편이 다양하지 않고 그나마 규칙적이지 않아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열차가 최고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인도 철도청에서 해마다 발간한다. 인도 열차역에서 구입할 수 있다. 700원 정도. 인도 철도청 홈페이지(indianrail.gov.in)에서 피디에프(PDF) 파일로도 볼 수 있다.
남종영 기자
1974년 9월 〈시각표〉 창간호(왼쪽)와 올해 10월호(오른쪽). 열차·지하철에서 육상·해상 교통수단 전반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시각표〉어떻게 볼까?
에어타임스
토머스쿡 열차시각표
한눈에 보는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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