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날>(2006)
[매거진 Esc]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웃기는 영화는 많지만 웃겨서 대접받는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실컷 웃으며 다량의 엔돌핀을 공급받고서는 ‘웃겨’라는 한마디로 넘기는 건 너무 야박한 일 아닐까요? 웃기는 영화에도 다양한 급이 있고 큰 웃음, 작은 웃음, 쿨한 웃음, 눈물 나는 웃음 등 색깔도 가지가지입니다. 격주로 연재되는 ‘웃기는 영화’는 영화들의 요모조모를 뜯어보고 그 재치에 존경을 보내는 칼럼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무엇일까?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06년 영화관객 성향조사에 따르면 코미디가 21.7%로 가장 많았다. 로맨틱코미디를 다른 장르 항목으로 분류한 결과로 둘을 합치면 40%에 육박한다. 그런데 의외로 한국에서 개봉되지 않는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가 꽤 많다. 코미디 장르에도 대중음악처럼 ‘국산 우위의 법칙’이 적용되는 걸까. 그렇더라도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했던 흥행작-게다가 무한도전 뺨치는 몸개그 영화다-을 한국 개봉관이 외면한 건 코미디 팬들의 인권에 관한 문제다. 얼마 전 디브이디로 출시된 <영광의 날> 말이다.
여기서 품위 있고 비판적인 전쟁영화 <영광의 날들>과 헷갈리면 안 된다. <영광의 날>에서 날은 ‘day’가 아니라 ‘blade’, 즉 스케이트 날이다. 정상에서 경쟁하던 두 남자 피겨 스케이트 선수가 싸움으로 인해 영구 출전 정지를 먹는다. 각자 방황하던 둘은 몇 년 뒤 싱글 부문 출전 정지는 곧 페어 출전 가능이라는 유권해석을 거쳐 한 팀을 이뤄 ‘영광의 날’을 재현한다는 스포츠 드라마다.
하지만 진지하고 감동적인 스포츠 드라마에게는 조금 미안한 게, 보통 스포츠 드라마라면 육체가 가장 아름답게 표현되는 순간이 이 영화에서는 가장 우스꽝스럽다. 실제 경기에서는 아름답게만 보이던 다양한 피겨 스케이팅 기술들이 남자-남자로 엮이는 순간 외설적 뉘앙스를 풍기면서 폭소를 자아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파트너의 허리를 반짝 들어올렸을 때 엉덩이에 파묻힐 듯 가까워진 다른 파트너의 똥 씹은 얼굴이나 이상한 체위를 연상시키는 포즈를 연출하며 몹시 착잡해하는 두 주인공의 표정이 예술이다. 여기에 배꼽이 빠지는 이유는 이 연기를 할리우드의 ‘박거성’이라고 불릴 만한 안하무인, 자기도취의 윌 페럴이 한 덕도 크다.
나중에 따로 소개해야 할 ‘프랫팩’, 할리우드의 잘나가는 코미디 배우 집단에서도 최근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윌 패럴은 ‘자뻑’이 하늘을 찌르는 거친 남성으로 등장한다. 문제는 자칭 ‘섹스 머신’이며 자신의 완벽함으로 미셸 콴을 미치게 만들었고 그 밖의 수많은 은반의 스타들을 섹스 노예로 삼았다고 떠벌이는 그의 상태가 심하게 안 좋다는 것이다.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는 없다”며 벗고 설치는 그의 몸은 차라리 안 봤으면 싶을 정도로 지방 덩어리고, 짐 모리슨을 대놓고 흉내낸 헤어 스타일은 늘 떡이 져 있으며, 야성을 뿜어내는 대사는 여자랑 꿈속에서만 백번 자본 고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서 늘 터프해 보이는 각을 잡으며 “이 방은 밤이 되면 어두워질 것 같아서 불길하다”는 저능아스런 말을 떠들어댄다.
영화 속 ‘루저’는 흔하지만 <영광의 날>이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루저 그 이상, 내면화된 ‘위너’ 근성-물론 남들은 무시한다-을 가진 루저들의 이야기라 지겹지 않다. 영화 속 윌 패럴은 온몸으로 웅변한다. ‘찌질이들, 비 엠비셔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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