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되어 꽃을 그리다보니 완전히 다른 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거진 Esc]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올 들어 처음 영하로 떨어진 날, 얄궂게도 아이비 제라늄이 꽃을 피웠다. 지난봄 불꽃같은 빛깔에 반해 남들의 두배 값을 들여 데려온 녀석이다. 하지만 여름 내도록 이상하게 시들거리며, 새 꽃을 내보일 낌새도 없는 게 아닌가? 비싸게 구네. 나는 늘 그렇듯, 옥상에 덩그러니 내어두고 살 테면 살아보라고 했다. 그런 녀석이 너무 뒤늦게 ‘철’이 들어 봄을 보려고 한다. 때늦은 청춘이라도 칭찬해주어야 마땅하겠지만, 베란다로 내려놓아도 온기라곤 없는 곳이기에 며칠이나 갈까 싶다.
괘씸하기는 하지만 어여쁜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연분홍 꽃잎 위로 제각각 다른 무늬로 번져나가는 불꽃의 색을 기억해주기로 한다. 무엇이 좋을까? 사진은 영리하고 간단하다. 그러나 기차의 창밖으로 마리아 테레지아 공원을 흘깃 본 듯이 성의가 없다. 꽃은 그려야 한다. 그것만큼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은 없다.
내겐 클로드 모네나 타샤 튜더의 천국 같은 정원도 없고, 더더구나 그들에게 내려진 천상의 솜씨를 욕심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소박하여도 연정은 연정인지라, 손바닥보다 작은 스케치북과 색연필 몇자루로도 적지 않은 기쁨을 누린다.
처음엔 보고 그리며 화가의 마음에 가까워지겠거니 했다. 그러나 줄기 하나하나가 뻗어 나오고 그 끝에 잎과 꽃과 열매를 맺는 모양을 정직하게 따라가다 보니 수도원의 텃밭에 완두콩을 심어놓고 그 모습을 기록해간 멘델이 보였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로 본 꽃과 풀들을 그려가며 채집 식물학자를 흉내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붓꽃은 석장, 패랭이꽃은 다섯장, 코스모스는 여덟장, 하며 식물에 깃든 피보나치의 기하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머지않아 나는 다시 화가로 돌아왔다.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색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원색의 강렬함이라는 말을 상투적으로 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 근원이 결국 꽃의 팔레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원사인 나는 바이올렛(제비꽃)을 키울까, 아프리칸 바이올렛이 좋을까 고민한다. 또한 화가인 나는 저녁 무렵 제비꽃의 색을 기억하기 위해 ‘바이올렛’ 물감에 무엇을 섞어야 할지 고심한다. 어느 쪽이든 서투르기 그지없다. 그러나 둘이 잡은 손은 놓지 못할 것 같다.
이명석 저술업자
이명석의 반려식물 사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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