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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의 친구, 부시 파일럿

등록 2008-01-16 21:14

알래스카의 친구, 부시 파일럿
알래스카의 친구, 부시 파일럿
[매거진 Esc] 남종영의 비행기 탐험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테드 스티븐스 국제공항 상공에 진입해 비행기가 기수를 낮추면 소담한 호수 ‘후드레이크’가 나타난다. 후드호수 서편에 부시 파일럿을 기리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인 알래스카 항공박물관이 있다. 툰드라와 설산, 지도 밖을 날던 전설적인 부시 파일럿들을 기념하는 명예의 전당이다.

부시(bush)는 알래스카의 두메를 가리키는 말이다. ‘부시 파일럿’은 오지 비행사다. 툰드라와 설산, 빙하가 길을 삼킨 알래스카에서 그들은 자동차만큼 가벼운 비행기를 타고 두메로 떠난다. 비행기에 몸을 맡긴 그들의 삶과 죽음은 백지 한 장 차이다. 위성항법장치(GPS)도 없이 맨눈으로 산과 강을 본 뒤 방향을 정하고 활주로가 없는 목적지에선 활주로를 만들어 착륙한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부시 파일럿들은 알래스카 개척시대의 상징이었다. 그들은 최초로 북아메리카 최고봉 매킨리를 비행하는 ‘기록’을 세우고, 컬럼비아 빙하에 착륙하는 신기원을 수립했으며, 한밤중 브룩스 산맥을 넘는 단독비행에 성공해 찬사를 받았다. 부시 파일럿은 조종사이기 전에 모험가였던 것이다. 알래스카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훗날 저명한 환경운동가로 활동한 여성 파일럿 실리아 헌터나 평생을 매킨리와 함께한 산악 파일럿 돈 셸든이다. 미국 본토에서 알래스카까지 비행에 성공해 유명세를 탄 실리아 헌터는 알래스카에 정착한 뒤 알래스카 자연보존협회를 창설하는 등 환경운동가로 이름을 날렸고, 돈 셸든은 매킨리 등정에 성공한 원정대와 미처 닿지 못하고 스러진 주검과 함께했다.

부시 파일럿은 알래스카 문학과 예술에도 단골로 등장한다. 평생 알래스카의 야생을 쫓은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에도, 덫사냥꾼으로서 대자연에 귀의한 자연주의자 하이모 코스의 삶에서도 부시 파일럿은 친구다. 부시 파일럿은 사람들을 알래스카의 두메에 떨어뜨리고, 두어 달 있다가 먹을거리를 갖다 주고, 계절이 바뀌면 데리러 온다.

알래스카 항공박물관은 격납고 두 동을 개조해 만들었다. 부시 파일럿의 유품과 사진, 그리고 부시 플레인들이 전시됐다. 바로 옆 후드호수의 수상 활주로에선 지금도 수많은 부시 파일럿들이 손님을 싣고 두메로 떠난다. 그리고 어느 툰드라의 평원에 도착해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프로펠러를 돌릴 것이다.

“안녕, 친구! 내년 봄에 보게나. 행운을 비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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