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정 입구 모습(위). 어복 쟁반(아래).
[매거진 Esc] 예종석의 맛있는 집-서울 퇴계로 대림정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에서 어복장국을 냉면과 함께 평양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꼽았다. 육당은 어복장국을 “소반만 한 큰 쟁반에 국수를 만 것을 사람 수대로 벌여놓고, 쟁반 한가운데에는 편육을 담은 그릇을 들여놓고 여럿이 둘러앉아서 먹는다”고 기술했는데 이 어복장국을 요즘은 어복쟁반이라고 이른다. 쟁반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장국이 더 적절한 이름일 것 같은데 우리 음식 이름에는 구절판, 신선로처럼 음식을 담는 그릇의 이름을 붙인 경우가 가끔 있다.
쇠고기가 주재료인 어복쟁반이 생선의 배를 뜻하는 어복이라 일컬어지게 된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소의 젖가슴 살(뱃살)이 들어가기 때문에 우복이라고 하다가 어복으로 변한 것이라고도 하고 쟁반의 생김새가 생선의 배 모양이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어복쟁반은 평양의 상인들이 즐겨 먹던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상인들이 거래를 하면서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갈등이 생길 때 어복쟁반을 같이 들게 되면 적대감이 풀어지고 흥정도 쉽게 되므로 상가에서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의 어복쟁반은 요즘처럼 상위에서 직접 끓이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육수를 수시로 부어가면서 먹었다는데, 고기를 집어 먹다 돌아가며 쟁반을 기울여 입을 대고 국물을 마셨다는 게 흥미롭다. 상대편이 국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 눈치면 이쪽에서 쟁반을 기울여 주고 내가 마시고 싶으면 상대방이 기울여 주는 식으로 들이키다가 식사생각이 나면 냉면사리를 주문해 남은 국물에 말아 먹었다고 한다. 그러니 음식을 먹다가 정분이 생기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입을 대고 국물을 마신다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위생관념으로는 못마땅하겠지만, 생각해보면 정감이 넘치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 기쿠치간(菊池寬)이 일제시절 평양에서 어복쟁반을 먹어보고는 낭만적인 음식으로는 세계적이라고 격찬을 했겠는가.
퇴계로 대한극장 건너편에 있는 대림정에 가면 제대로 된 어복쟁반을 먹을 수 있다. 대림정은 4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형 한식당이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대형식당을 선호하지 않지만 대림정은 모든 식자재를 자급자족하는 별난 식당으로 예외가 적용되는 좀 특별한 집이다. 간장·된장·고추장은 물론 채소까지도 충남 아산에 있는 직영농장에서 생산한 것만을 쓰고, 고춧가루와 참기름도 식당 내 자가 방앗간에서 직접 만들어 쓰며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지키는 집이다. 어복쟁반에도 질 좋은 양지머리, 차돌박이, 우설(소 혀)과 질 좋은 채소만을 쓴다. 4명이 충분히 먹을 만한 어복쟁반 한 틀에 8만원이며 냉면사리는 4천원, 추가 만두는 6천원이다. 어복쟁반 외에도 한정식과 곱창전골은 물론 갈비탕·비빔밥·육개장 등 단품음식도 수준급의 맛을 낸다. 전화번호는 (02) 2266-1540이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예종석의 맛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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