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김꾼의 손길을 거치고서야 ‘소의 주검’은 쇠고기로 태어난다. 쇠고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새김꾼을 천시하는 것은 모순이다.
[매거진 Esc] 마장동 새김꾼 김지삼의 18년 ⑤-마지막회
아직도 편견 많지만 자식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아 다행
“일하는 얘기 빼고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없네. 어이 조씨, 마장동에 관련된 재밌는 얘기 없어?” 인터뷰 때마다 김지삼 사장은 동료들을 쳐다보며 곤혹스러워했다. 인터뷰가 거듭됐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노동이 왜 얘깃거리냐고 되물었다. 연휴 직후라 한갓진 지난 13일 낮 마장동에서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사장은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 세 사람도 함께 자리에 둘러앉았다.
마지막 인터뷰였지만 쇠고기 얘기는 별로 오가지 않았다. 여느 40대들처럼 경기 불황과 자녀 교육이 화제였다. 한 시간쯤 지나 취재수첩을 접을 때 김 사장은 문득 “아이들이 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속한 세대는 여전히 쇠고기를 새기고 손질하는 일을 낮춰보는 것 같다며 섭섭해했다. 그는 자신의 노동이 신성하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외려 과묵한 취재원에 가까웠다. 따라서 새김꾼을 취재하는 일의 시작과 끝은 그의 손의 움직임을 보는 것이었다. 김 사장의 투박한 손이 만든 차돌박이와 안창살을 먹는 사람들이 “쇠고기를 새기는 일은 천하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갑옷을 입는 독일의 새김꾼들
마장동에서 새김질하는 사람들은 따로 은퇴나 정년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요샌 과거와 달리 새김질 따로 축산업체 운영 따로 하지 않습니다. 업체를 운영하면서 새김질도 함께 합니다. 그래서 대체로 50대에 접어들면 새김칼을 놓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깨를 많이 쓰는 직업이라 나이가 들수록 육체적 한계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40대로 접어든 뒤 하루하루가 다릅니다. 새김질을 멈춘 다음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종종 고민합니다. 쇠고기를 새기고 손질하는 일을 해 왔고 잘 아는 게 쇠고기밖에 없으니 쇠고기를 파는 식당을 경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올해 대학교 새내기가 되는 큰딸과 고3 수험생이 된 아들 모두 제 인터뷰 기사를 인터넷으로 읽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저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제 가게 옆에서 소머리 등을 공급하는 분이 몇 해 전 티브이에서 독일의 장인(마이스터) 제도를 다룬 프로그램을 봤다는 군요. 동종업계 얘기라서 아무래도 자세히 봤나 봅니다. 그 분 말씀이, 독일 새김꾼들은 쇠사슬로 된 앞치마를 입더랍니다. 칼이 엇나가도 제 몸을 찌르지 않도록 일종의 갑옷을 입는 셈입니다. 보수를 포함해 사회적인 대접도 융숭하다고 합니다. 독일 새김꾼들도 ‘야스리’(줄:쇠붙이를 쓸거나 깎는 데 쓰는, 강철로 만든 연장)를 들고 일하더군요.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한국에서는 ‘야스리’를 위로 향하게 들고 일하는 반면, 독일에선 거꾸로 밑으로 향하게 하고 사용하더군요. 생각해보니 독일 방식이 더 안전한 것 같습니다. 취재기자가 만화가 허영만씨의 <식객> 얘기를 해주더군요. ‘마장동편’에 새김꾼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입니다. 기막히게 솜씨 좋은 새김꾼이 있었다, 한 여자를 사랑했으나 여자의 부모가 새김꾼이라는 이유로 반대해 헤어졌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한이 됐다, 뭐 그런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새김꾼 주인공이 젊은시절이었으니 만화의 배경은 대략 20여년 전 마장동입니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직업의 하나일뿐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새김질은 천한 것이라는 인식이 여전합니다. 제가 속한 40대 후반 세대만 해도 아직 이런 인식이 남아있습니다.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옆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본 적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새김꾼 한 분이 조촐한 모임을 열었습니다. 저 역시 초대를 받고 저녁 일을 마치고 느지막이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모임에는 다른 직업을 가진 분도 있었습니다. 저를 초대한 새김꾼은 자기를 소개하며 그저 “정육점을 운영한다”고 말하더군요.
그가 굳이 거짓말을 하려던 건 아닐 겁니다. 주위의 수군거림을 듣기 싫어서였겠지요. 저와 함께 일하는 동료는 딸 셋 아들 한 명입니다. 큰딸은 슬슬 혼기가 찼습니다. 동료도 “사위될 사람이 편견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은근히 걱정입니다. 젊은세대는 이런 인식이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더도 말고 새김꾼을 그저 열심히 일하는 직업의 하나로 바라봐줬으면 좋겠습니다.
김지삼 부영축산 대표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올해 대학교 새내기가 되는 큰딸과 고3 수험생이 된 아들 모두 제 인터뷰 기사를 인터넷으로 읽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저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제 가게 옆에서 소머리 등을 공급하는 분이 몇 해 전 티브이에서 독일의 장인(마이스터) 제도를 다룬 프로그램을 봤다는 군요. 동종업계 얘기라서 아무래도 자세히 봤나 봅니다. 그 분 말씀이, 독일 새김꾼들은 쇠사슬로 된 앞치마를 입더랍니다. 칼이 엇나가도 제 몸을 찌르지 않도록 일종의 갑옷을 입는 셈입니다. 보수를 포함해 사회적인 대접도 융숭하다고 합니다. 독일 새김꾼들도 ‘야스리’(줄:쇠붙이를 쓸거나 깎는 데 쓰는, 강철로 만든 연장)를 들고 일하더군요.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한국에서는 ‘야스리’를 위로 향하게 들고 일하는 반면, 독일에선 거꾸로 밑으로 향하게 하고 사용하더군요. 생각해보니 독일 방식이 더 안전한 것 같습니다. 취재기자가 만화가 허영만씨의 <식객> 얘기를 해주더군요. ‘마장동편’에 새김꾼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입니다. 기막히게 솜씨 좋은 새김꾼이 있었다, 한 여자를 사랑했으나 여자의 부모가 새김꾼이라는 이유로 반대해 헤어졌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한이 됐다, 뭐 그런 내용으로 기억합니다. 새김꾼 주인공이 젊은시절이었으니 만화의 배경은 대략 20여년 전 마장동입니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직업의 하나일뿐

마장동 새김꾼 김지삼의 18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