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지하고 진득한 TV 음악의 가능성을 보여준 ‘EBS 스페이스 공감’의 백경석 PD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진지하고 진득한 TV 음악의 가능성을 보여준 ‘EBS 스페이스 공감’의 백경석 PD
이번주부터 새롭고 신선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를 인터뷰하는 ‘피디 열전’이 시작됩니다.
2004년 4월부터 지금까지 월화수목금 일주일에 다섯번씩 하루도 빼먹지 않고 쓴 음악 일기가 있다. 이 일기에는 1천회의 공연이 기록돼 있으며 4천여명에 이르는 뮤지션의 이름이 쓰여 있다. 일기장 제목은 교육방송 <이비에스 스페이스 공감>(이하 <공감>)이다. 지금 우리 음악을 가장 정직하고 섬세하게 기록하는 음악 백서 <공감>과 1회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함께 해온 백경석(40) 피디를 만났다.
록 정신으로 방송 입문… <문학산책>에 자부심
1997년 교육방송에 입사해 올해로 11년째를 맞은 백 피디의 이력은 독특하다. 감성적인 음악 프로그램 피디라면 문학도였을 법하지만 그는 한때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공대생이었다. “전공에 흥미가 없어서 전자공학 공부는 거의 놓다시피 하고 연극을 했어요. 연기도 했지만 스태프 일을 더 많이 했죠.(웃음) 인문학·사회학이 더 좋아 졸업하고 대학원 사회학과에 들어갔어요. 문화이론 쪽을 공부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학자 스타일은 아닌 것 같더라요. 그래서 방송으로 관심을 돌렸죠.” 백 피디를 방송으로 이끈 것은 팔 할이 ‘록 정신’이다. 어릴 때부터 록 음악이 전부인 ‘록 키드’였던 그는 음악에 한발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이유로 피디를 선택했다. 연극을 했기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있었다. 그렇게 피디 생활을 시작하고 조연출 생활이 끝난 뒤 3년 동안 청소년 드라마 <학교 이야기>를 만들었고, 2003년에는 현대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해 보여주는 <문학산책>을 연출했다. “<문학산책>을 만들면서 단순히 소설을 그대로 드라마로 옮기기보다는 소설이 가진 언어를 어떻게 영상으로 옮기느냐를 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교육방송의 특성상 스타급 연기자 기용이 힘들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배우의 연기력과 연출력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가야 하는 창의적인 고민을 많이 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마는 전상국의 <플라나리아>예요. 그나마 소설가에게 가장 덜 송구스러운 작품이라고 할까요? <문학산책>은 지금 다시 편성돼도 좋을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문학산책>이 끝날 때 즈음, 교육방송 1층에 공연장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음악과 관련된 것에는 무조건 머리를 들이밀었던 그는 그 티에프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고 그 공연을 녹화해 프로그램으로 만들자는 기획을 세웠어요. 처음에는 안 될 것 같았지만 무조건 해야 한다 싶었어요. 시도만큼은 가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티브이 음악 방송에는 상업적인 구조를 가진 티브이형 음악만이 존재해요. 그런데 그것 말고도 더 좋고 진지하고 진득한 음악이 많잖아요. 그걸 우리가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하게 ‘강산에나 한대수 같은 뮤지션이 나와 길게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록 키드’다운 도전이었다. <공감>을 시작하고 8개월이 될 때까지 뮤지션에게 섭외 전화를 하면 ‘왜 내가 교육방송에 가서 공연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뮤지션들은 <공감>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가장 신경 쓴 것은 ‘친절’이었어요. 뮤지션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주자는 거였죠. 소리에도 공을 들였어요. 그랬더니 반응이 오기 시작했죠. 뮤지션들이 원하는 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것과 소리가 좋은 것 딱 두 가지가 전부거든요.” <공감>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뮤지션의 현재적 관심이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에게 예전 인기곡을 불러 달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항상 ‘지금 하고 싶은 음악을 들려달라’고 얘기하죠. 기획 공연을 제외하고는 곡목에 대한 요구는 거의 하지 않아요.” 그리고 4년이 흐른 지금, <공감>에는 권위가 생겼다. 딱딱하고 보수적인 권위가 아니라 <공감>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음악을 하는 데 ‘잘했어요’ 도장 하나 받은 것 같은 그런 권위다. 좋은 음악 프로그램 피디가 되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상식이에요. 기본적인 감수성은 있어야 하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상식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을 갖고 또 자신의 관심과 취향을 객관화시키는 것, 지금 시대에서 중요한 것이 뭔지를 고민하고 찾아가는 게 바로 상식이에요. 세상이 흘러가는 것을 보려고 하는 마음과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만 있다면 좋은 음악 프로그램 피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피디를 하면서 상식 시험을 보긴 봐야 한다는 데 점점 동의해요.”(웃음) 특별히 추가된 금요일 저녁의 스케줄 <공감>을 연출하면서 백 피디가 다시 생각하게 된 것들이 여러 가지 있다. “음악을 공부하면서 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공연을 본다는 것은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목격하는 거예요. 음악이 원래 존재하던 방식인 거죠. 음악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요? 좋은 음악을 듣다보니까 음악에 대한 갈증도 생기고 자극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학창시절부터 연주했던 기타도 다시 잡았어요.”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공연도 하고 최근에는 ‘한국피디대상’ 시상식 무대에 다른 회사 동료 피디들과 만든 ‘피디밴드’의 기타리스트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3월의 마지막 금요일, 인터뷰가 끝나고 약속이 있어 홍대 쪽으로 간다는 그의 손에는 종이가 몇 장 쥐어져 있었다. 종이에 쓰인 것은 ‘클럽데이’에 나오는 밴드와 뮤지션 목록이었다. “약속이 끝나면 오늘 여기 동그라미 친 밴드 공연을 보려구요. 작가가 이 밴드들 공연 꼭 보고 오래요.”(웃음) 좋은 음악 프로그램 피디의 조건에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 그리고 금요일 저녁까지 추가해야겠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1997년 교육방송에 입사해 올해로 11년째를 맞은 백 피디의 이력은 독특하다. 감성적인 음악 프로그램 피디라면 문학도였을 법하지만 그는 한때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공대생이었다. “전공에 흥미가 없어서 전자공학 공부는 거의 놓다시피 하고 연극을 했어요. 연기도 했지만 스태프 일을 더 많이 했죠.(웃음) 인문학·사회학이 더 좋아 졸업하고 대학원 사회학과에 들어갔어요. 문화이론 쪽을 공부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학자 스타일은 아닌 것 같더라요. 그래서 방송으로 관심을 돌렸죠.” 백 피디를 방송으로 이끈 것은 팔 할이 ‘록 정신’이다. 어릴 때부터 록 음악이 전부인 ‘록 키드’였던 그는 음악에 한발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이유로 피디를 선택했다. 연극을 했기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있었다. 그렇게 피디 생활을 시작하고 조연출 생활이 끝난 뒤 3년 동안 청소년 드라마 <학교 이야기>를 만들었고, 2003년에는 현대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해 보여주는 <문학산책>을 연출했다. “<문학산책>을 만들면서 단순히 소설을 그대로 드라마로 옮기기보다는 소설이 가진 언어를 어떻게 영상으로 옮기느냐를 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교육방송의 특성상 스타급 연기자 기용이 힘들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배우의 연기력과 연출력으로 드라마를 이끌어가야 하는 창의적인 고민을 많이 했죠.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마는 전상국의 <플라나리아>예요. 그나마 소설가에게 가장 덜 송구스러운 작품이라고 할까요? <문학산책>은 지금 다시 편성돼도 좋을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문학산책>이 끝날 때 즈음, 교육방송 1층에 공연장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음악과 관련된 것에는 무조건 머리를 들이밀었던 그는 그 티에프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고 그 공연을 녹화해 프로그램으로 만들자는 기획을 세웠어요. 처음에는 안 될 것 같았지만 무조건 해야 한다 싶었어요. 시도만큼은 가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티브이 음악 방송에는 상업적인 구조를 가진 티브이형 음악만이 존재해요. 그런데 그것 말고도 더 좋고 진지하고 진득한 음악이 많잖아요. 그걸 우리가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하게 ‘강산에나 한대수 같은 뮤지션이 나와 길게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록 키드’다운 도전이었다. <공감>을 시작하고 8개월이 될 때까지 뮤지션에게 섭외 전화를 하면 ‘왜 내가 교육방송에 가서 공연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뮤지션들은 <공감>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가장 신경 쓴 것은 ‘친절’이었어요. 뮤지션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주자는 거였죠. 소리에도 공을 들였어요. 그랬더니 반응이 오기 시작했죠. 뮤지션들이 원하는 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것과 소리가 좋은 것 딱 두 가지가 전부거든요.” <공감>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뮤지션의 현재적 관심이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에게 예전 인기곡을 불러 달라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항상 ‘지금 하고 싶은 음악을 들려달라’고 얘기하죠. 기획 공연을 제외하고는 곡목에 대한 요구는 거의 하지 않아요.” 그리고 4년이 흐른 지금, <공감>에는 권위가 생겼다. 딱딱하고 보수적인 권위가 아니라 <공감>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음악을 하는 데 ‘잘했어요’ 도장 하나 받은 것 같은 그런 권위다. 좋은 음악 프로그램 피디가 되려면 뭐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상식이에요. 기본적인 감수성은 있어야 하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상식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을 갖고 또 자신의 관심과 취향을 객관화시키는 것, 지금 시대에서 중요한 것이 뭔지를 고민하고 찾아가는 게 바로 상식이에요. 세상이 흘러가는 것을 보려고 하는 마음과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만 있다면 좋은 음악 프로그램 피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피디를 하면서 상식 시험을 보긴 봐야 한다는 데 점점 동의해요.”(웃음) 특별히 추가된 금요일 저녁의 스케줄 <공감>을 연출하면서 백 피디가 다시 생각하게 된 것들이 여러 가지 있다. “음악을 공부하면서 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공연을 본다는 것은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목격하는 거예요. 음악이 원래 존재하던 방식인 거죠. 음악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요? 좋은 음악을 듣다보니까 음악에 대한 갈증도 생기고 자극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학창시절부터 연주했던 기타도 다시 잡았어요.”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공연도 하고 최근에는 ‘한국피디대상’ 시상식 무대에 다른 회사 동료 피디들과 만든 ‘피디밴드’의 기타리스트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3월의 마지막 금요일, 인터뷰가 끝나고 약속이 있어 홍대 쪽으로 간다는 그의 손에는 종이가 몇 장 쥐어져 있었다. 종이에 쓰인 것은 ‘클럽데이’에 나오는 밴드와 뮤지션 목록이었다. “약속이 끝나면 오늘 여기 동그라미 친 밴드 공연을 보려구요. 작가가 이 밴드들 공연 꼭 보고 오래요.”(웃음) 좋은 음악 프로그램 피디의 조건에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 그리고 금요일 저녁까지 추가해야겠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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