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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빈틈, 한 사람의 자리

등록 2008-05-07 22:35

‘별’ 카페의 1인 노천 테이블에서 소나기를 감상해도 좋다. 사진 이명석.
‘별’ 카페의 1인 노천 테이블에서 소나기를 감상해도 좋다. 사진 이명석.
빨간 날이 마구 덤비는 때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여행을 떠날 궁리로 들떠 있다. 나 역시 이런 황금 같은 계절엔 마음이 뒤숭숭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평일 한낮에 그 친구들 회사 근처 카페에서 약 올리는 문자를 보낸 죄책감에 이런 성수기는 피해 주기로 한다. 대신 한가해진 거리에 하나둘 피어나는 노천카페에서 여행의 감흥을 대신한다.

나는 지금도 묵직한 배낭에 헐거운 지갑을 들고 처음 유럽으로 떠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마구 질투심을 느낀다. 그들이 인생에서 처음 만날 온갖 즐거움들이 천천히 눈앞을 스쳐간다. 무엇보다 파리의 강변, 베니스의 광장, 피렌체의 뒷골목에서 그들이 만날 노천카페들의 빈자리가 아련하다.

의자 팔걸이엔 눅눅한 새똥이 묻어 있고, 쌀쌀한 습기가 등을 덮쳐오고, 커피는 기대만큼 훌륭하지 않고, 종업원은 노골적으로 팁을 청하지만 …. 그래도 거기에는 내가 반드시 앉아야 할 의자가 있는 것 같다.

나와 비슷한 때에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은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카페를 차리고 가게 밖으로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지옥 같은 대기 오염, 대륙에서 침공해오는 황사, 빵빵거리는 자동차들이 〈아멜리에〉의 환상을 덮었다. 대로변 자리는 담배쟁이들의 어눌한 휴식처가 되었고, 나 같은 사람들에겐 그 혼탁한 공기를 뚫고 실내로 들어갈 용기조차 꺾는 바리케이드가 되었다.

작년 정도부터 영리한 카페들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혼탁한 대로의 과감한 노출보다는 뒷골목의 옆구리에 살짝 빈틈을 만들고, 커다란 차양으로 가게 전체를 열었다 닫고, 키 높은 화분으로 초록의 경계를 만들고, 반층 정도 올라간 위치에 옥상 정원과는 다른 느낌의 노천을 만들어낸다.

광화문 뒷길, 신사동 가로수길, 분당의 정자동은 자동차가 조금 한산한 시간에는 제법 상냥한 풍경을 펼쳐낸다. 유럽풍의 거창한 테이블 대신 동남아 여행자 거리처럼 1인용의 작은 테이블을 바깥을 바라보게 내놓으며 다채로움을 더하고 있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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