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우현 공장장은 매일 아침 맥아즙부터 시제품까지 모든 과정의 맥주를 맛본다.
[매거진 Esc] 백우현 공장장과 맥주의 시대 ④
집에서 만든 맥주 콘테스트,
핀란드 친구인 니코와 한 조가 되다 1994년 10년 넘은 경력을 뒤로하고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동기는 ‘현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진짜 기술을 더 배워 보고 싶었습니다. 가령 ‘거싱 사건’이 그랬습니다. 85년 어느 날 생산된 병맥주를 검병하는데, 뚜껑을 따자 갑자기 맥주에서 거품이 마구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닙니까? 흔들지도 않았는데 거품이 막 나오는 현상을 ‘거싱’(gushing)이라고 합니다. 병맥주의 거품과 금속이온의 비밀 처음 겪는 현상인데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습니다. 그날부터 몇날며칠을 밤새 독일어 맥주 책을 뒤졌습니다. 결국 “제조과정에 금속이온이 첨가되면 거싱이 생길 수 있다”는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정확히 어느 과정에서 금속이온이 첨가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공정 하나하나 점검했습니다. 결국 당시 철로 만들어졌던 발효 탱크에서 금속이온이 용출됐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술력이 낮아 고생한 것이죠. 외국인을 위한 맥주 유학 과정이 미국·영국 등에도 있었지만, 정통이라 일컬어지는 독일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선입견은 뮌헨 대학 마이스터 과정 첫 수업을 듣는 순간 사라졌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독일 정통 맥주’에 대한 환상이 컸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을 듣고 보니 이미 경력 10년이 넘은 제 맥주 지식이 그리 적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독일의 고등학생들은 고교 졸업 뒤 곧바로 대학으로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일반 기업에서 몇 개월 실습한 뒤에야 대학 맥주 양조 과정을 수강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맥주에 대한 아무런 실질적 정보 없이 대학엘 가면 뭘 가르치는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함께 수업을 듣던 300여명의 독일 학생들은 기껏해야 6개월 경력인 반면, 저는 어쨌든 10년 넘게 맥주를 만들며 잔뼈가 굵던 터라 수업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이미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정작 유학 시절의 고생은 독일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생겼습니다. 문법은 의외로 쉬웠습니다. 그러나 역시 말하기·듣기가 문제였습니다. 시험 보면 필기 점수는 잘 나오는데 듣고 말하는 건 어려웠습니다. ‘아, 이러면 안 되겠다’ 싶더군요. 결국 밤마다 ‘비어가르텐’이라는 야외 맥줏집을 다니기로 했습니다. 밤마다 혼자 비어가르텐에 나가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노라면, 동양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동네라 그런지 얼큰히 취한 독일 청년들이 “한잔 하자”고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들과 술에 취해 띄엄띄엄 대화를 나눴습니다. 신기한 건 맥주만 마시면 독일어가 술술 나왔습니다. 술의 힘 덕분인지 두세 시간 얘기해도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정교사도 불러 보고 자율학습도 해 봤지만, 가장 좋은 독일어 공부는 ‘맥주를 통한 공부’였습니다. 그 어렵던 남성·여성 명사도 술술 외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회사에서 독일에 있던 제게 맥주를 보내 준 것도 이런 ‘맥주를 통한 공부’에 도움이 됐습니다. 당시 회사는 신제품을 품평해 보라는 취지로 독일까지 맥주를 공수해 줬습니다. 저는 몇 병만 품평에 쓰고, 나머지는 외국인 친구들을 불러 모아 먹였습니다. 나이가 어려 가난한 외국 유학생들한테 점수도 따고 짐짓 품평도 시켰지요. 물론 이렇게 술술 잘 나오던 독일어가 술만 깨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려 해서 고생도 했습니다. “○월○일 ○○강의실에서 실습이 있다”는 말을 못 알아 들어, 텅 빈 강의실을 들어갔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외국인 유학생끼리 뭉쳐 다행히 ‘비빌 언덕’이 있었습니다. 저 같은 외국인 수강생들이 ‘외국인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수강한 맥주 양조 과정에는 오스트리아·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스위스·중국·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생존’을 위해 뭉친 것입니다. 나름대로 1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클럽입니다. 심지어 저보다 먼저 이 과정을 수강한 저희 회사 선배도 이 클럽의 회원이었지요. 클럽은 일주일에 한번 모였습니다. 모두 모여 맥주잔을 기울이며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를 논의했습니다. 이 친구들과 어울려 근처 맥주 공장을 방문해 맥주 맛도 보고 견학도 다녔습니다. 독일에서 맥주에 관해 깊이 깨달은 것은 소소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맥주 문화를 배웠습니다. 한국인들은 수십 년 동안 공장에서만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집에 있는 도구만 가지고 맥주를 빚더군요. 덕분에 ‘맥주를 어떻게 집에서 만들까’ 하는 제 궁금증은 해답을 얻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듣던 수업 시간에도 ‘집에서 만든 맥주 콘테스트’가 있었습니다. 2인 1조로 각자 집에서 만든 맥주를 제출하는 것입니다. 저는 핀란드 친구인 니코와 한 조가 됐습니다. 오비맥주 광주공장장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핀란드 친구인 니코와 한 조가 되다 1994년 10년 넘은 경력을 뒤로하고 독일행 비행기에 오른 동기는 ‘현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진짜 기술을 더 배워 보고 싶었습니다. 가령 ‘거싱 사건’이 그랬습니다. 85년 어느 날 생산된 병맥주를 검병하는데, 뚜껑을 따자 갑자기 맥주에서 거품이 마구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닙니까? 흔들지도 않았는데 거품이 막 나오는 현상을 ‘거싱’(gushing)이라고 합니다. 병맥주의 거품과 금속이온의 비밀 처음 겪는 현상인데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습니다. 그날부터 몇날며칠을 밤새 독일어 맥주 책을 뒤졌습니다. 결국 “제조과정에 금속이온이 첨가되면 거싱이 생길 수 있다”는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정확히 어느 과정에서 금속이온이 첨가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공정 하나하나 점검했습니다. 결국 당시 철로 만들어졌던 발효 탱크에서 금속이온이 용출됐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술력이 낮아 고생한 것이죠. 외국인을 위한 맥주 유학 과정이 미국·영국 등에도 있었지만, 정통이라 일컬어지는 독일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선입견은 뮌헨 대학 마이스터 과정 첫 수업을 듣는 순간 사라졌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독일 정통 맥주’에 대한 환상이 컸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을 듣고 보니 이미 경력 10년이 넘은 제 맥주 지식이 그리 적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독일의 고등학생들은 고교 졸업 뒤 곧바로 대학으로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일반 기업에서 몇 개월 실습한 뒤에야 대학 맥주 양조 과정을 수강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맥주에 대한 아무런 실질적 정보 없이 대학엘 가면 뭘 가르치는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함께 수업을 듣던 300여명의 독일 학생들은 기껏해야 6개월 경력인 반면, 저는 어쨌든 10년 넘게 맥주를 만들며 잔뼈가 굵던 터라 수업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이미 아는 내용이었습니다. 정작 유학 시절의 고생은 독일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생겼습니다. 문법은 의외로 쉬웠습니다. 그러나 역시 말하기·듣기가 문제였습니다. 시험 보면 필기 점수는 잘 나오는데 듣고 말하는 건 어려웠습니다. ‘아, 이러면 안 되겠다’ 싶더군요. 결국 밤마다 ‘비어가르텐’이라는 야외 맥줏집을 다니기로 했습니다. 밤마다 혼자 비어가르텐에 나가서 맥주를 홀짝이고 있노라면, 동양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동네라 그런지 얼큰히 취한 독일 청년들이 “한잔 하자”고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들과 술에 취해 띄엄띄엄 대화를 나눴습니다. 신기한 건 맥주만 마시면 독일어가 술술 나왔습니다. 술의 힘 덕분인지 두세 시간 얘기해도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정교사도 불러 보고 자율학습도 해 봤지만, 가장 좋은 독일어 공부는 ‘맥주를 통한 공부’였습니다. 그 어렵던 남성·여성 명사도 술술 외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회사에서 독일에 있던 제게 맥주를 보내 준 것도 이런 ‘맥주를 통한 공부’에 도움이 됐습니다. 당시 회사는 신제품을 품평해 보라는 취지로 독일까지 맥주를 공수해 줬습니다. 저는 몇 병만 품평에 쓰고, 나머지는 외국인 친구들을 불러 모아 먹였습니다. 나이가 어려 가난한 외국 유학생들한테 점수도 따고 짐짓 품평도 시켰지요. 물론 이렇게 술술 잘 나오던 독일어가 술만 깨면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려 해서 고생도 했습니다. “○월○일 ○○강의실에서 실습이 있다”는 말을 못 알아 들어, 텅 빈 강의실을 들어갔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외국인 유학생끼리 뭉쳐 다행히 ‘비빌 언덕’이 있었습니다. 저 같은 외국인 수강생들이 ‘외국인클럽’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수강한 맥주 양조 과정에는 오스트리아·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스위스·중국·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생존’을 위해 뭉친 것입니다. 나름대로 10년이 훌쩍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클럽입니다. 심지어 저보다 먼저 이 과정을 수강한 저희 회사 선배도 이 클럽의 회원이었지요. 클럽은 일주일에 한번 모였습니다. 모두 모여 맥주잔을 기울이며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를 논의했습니다. 이 친구들과 어울려 근처 맥주 공장을 방문해 맥주 맛도 보고 견학도 다녔습니다. 독일에서 맥주에 관해 깊이 깨달은 것은 소소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맥주 문화를 배웠습니다. 한국인들은 수십 년 동안 공장에서만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집에 있는 도구만 가지고 맥주를 빚더군요. 덕분에 ‘맥주를 어떻게 집에서 만들까’ 하는 제 궁금증은 해답을 얻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듣던 수업 시간에도 ‘집에서 만든 맥주 콘테스트’가 있었습니다. 2인 1조로 각자 집에서 만든 맥주를 제출하는 것입니다. 저는 핀란드 친구인 니코와 한 조가 됐습니다. 오비맥주 광주공장장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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