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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온몸에 얼음이 맺히리라

등록 2008-06-25 19:04수정 2008-06-28 14:43

달려라, 온몸에 얼음이 맺히리라
달려라, 온몸에 얼음이 맺히리라
[매거진 Esc]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생애 최악의 레이스, 북극점 마라톤 체험기
누구나 한번쯤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꿈꿔 봤을 것이다. 그것이 사막이든 정글이든 극지방이든 …. 하지만 막연한 두려움과 망설임으로 오지 여행을 선택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특히 남극이나 북극은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환경적인 요건을 제공하지도 않고 단순히 ‘일상 탈출’만을 꿈꾸며 찾아가기에도 쉽지 않다. 그리고 북극점은 수많은 탐험가들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뛰어드는 곳이다. ‘한번뿐인 짧은 인생 멋지고 쿨하게 살고 싶다’는 나의 욕망만으로 선택하기에 그리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다.

스발바르 제도에서 모여 소형 항공기로 이동

북극점 마라톤 지도
북극점 마라톤 지도

사전을 찾아보면 북극은 ‘북극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고위도 지방’이라고 나온다. 면적은 2500만~3000만㎢. 북극지방의 범위는 그 정의가 여러 가지나, ‘수목의 북한계선 이북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곧 북극점을 중심으로 하는 약 1400만㎢의 북극해가 대부분을 이루며, 여기에 유라시아·아프리카 대륙의 북위 70°내외, 캐나다 동부의 북위 60° 및 그린란드 지역과 아이슬란드의 일부를 포함하는 광대한 고위도 지역이다. 남극과는 달리 북극권의 대부분은 바다로 이루어진 ‘북극해’이고 ‘북극점 마라톤’ 또한 바다얼음(해빙) 위를 달리는 경주다. ‘북극이 사라진다’는 표현은 지구 온난화로 이 바다얼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언젠가는 사라져 없어질지도 모르는 곳에서 마라톤을 한다는 것, 그건 새로움과 설렘이고 모험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북극에 가는 것만으로도 내가 ‘침입자’이고 ‘파괴자’라는 뜻이었다. 나 역시 우리 인간들의 욕심이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북극점 마라톤은 2002년 아일랜드의 리처드 도너반이 남극과 북극을 마라톤으로 완주하고 난 뒤, 2003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운영된다. 북극점 마라톤은 기네스북에도 ‘세상에서 가장 추운 마라톤’으로 기록돼 있다. 이 대회는 북위 89도에서 북위 90도 사이에서 진행되며, 노르웨이 북쪽 북극해의 스발바르 제도에 참가자들이 모인 뒤 주최 쪽에서 마련한 소형 항공기를 이용해서 대회 장소로 이동한다. 스발바르 제도는 노르웨이령이며 스피츠베르겐을 포함한 여러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발바르 제도의 롱이어바이엔은 북위 78도에 있는 세계 최북단의 작은 도시다. 롱이어바이엔에 도착한 날은 마침 푸른 하늘을 볼 만큼 맑았지만 기온은 영하 10도로 내려가며 쌀쌀했다. 밤 9시가 넘어야 해가 지고 새벽 4시가 되면 날이 밝아오는 밤이 그리 길지 않은 도시였다. 다음날 새벽, 날이 밝아 잠이 깨어 아침운동을 하려고 창밖을 봤는데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극지방이라 날씨 변화도 심했고 이날 많은 눈이 내리는 관계로 러시아 스태프들이 먼저 출발해서 대회 장소에 캠프를 설치한다는 계획이 연기됐다.

스발바르는 눈의 도시답게 온세상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바다도 얼음이고 도로도 멀리 보이는 산도 모두 얼음으로 덮였으며 얼음으로 된 동굴도 있다. 햇빛이 비치면 그 풍경들은 햇살 속에서 더 아름답게 빛을 낸다. 스키를 즐기러 온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고, 교통수단이라 할 만한 ‘스노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 개썰매를 즐기는 사람들도 쉽게 보는 풍경들이다. 하지만 그리 길지는 않지만 여름이 되면 영상으로 올라가서 시내에는 풀과 여러 가지 꽃들을 구경한다고 한다.


달려라, 온몸에 얼음이 맺히리라. 사진 안병식
달려라, 온몸에 얼음이 맺히리라. 사진 안병식
기상악화로 엿새나 연기… 창밖은 영하 30도

기상악화로 엿새나 연기된 후에야 북극점 마라톤 대회 장소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하늘에서 바라본 북극 풍경도 신비로웠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북극점’에 간다는 생각 때문에 그 설렘은 더 컸다. 2시간의 비행 끝에 대회 장소에 도착했고, 새벽이지만 북극점 근처라 밤이 없이 태양이 밝게 비쳤다. 기장이 “밖은 영하 30도”라고 말했다. 영하 30도는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추웠다. 눈과 코를 제외하고 모두 가리지 않고는 일반 복장으로 그리 오래 견딜 수 있는 날씨가 아니었다.

처음 계획은 마라톤 대회를 끝낸 뒤 북극점으로 이동해 기념촬영을 할 예정이었으나, 북극점에 먼저 가서 기념 촬영을 한 뒤 대회를 진행하기로 일정을 변경한다는 통보가 왔다. 우린 다시 헬리콥터를 타고 20여분을 간 후 북극점에 도착했다. 사실 처음에는 북극점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설레고 기쁨도 컸지만, 영하 30도의 날씨는 그 설렘을 금세 움츠리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얼어버리게 할 만큼 추운 날씨였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추운 경험은 처음이었다. 너무 추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달려라, 온몸에 얼음이 맺히리라. 사진 안병식
달려라, 온몸에 얼음이 맺히리라. 사진 안병식
북극점은 남극점과는 달리 기준점이 정확히 정해지지 않아 계속 움직인다고 한다. 북극점에서 남쪽으로 1㎞ 내려가고 다시 서쪽으로 1㎞ 가고 다시 북쪽으로 1㎞를 가면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같은 태양이지만 북극점에서 바라본 태양의 느낌도 새로웠다. 기념 촬영이 끝난 뒤 다시 대회 장소로 이동해서 캠프에서 대기하다 대회가 시작됐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온도는 영하 29도. 너무 차갑고 너무 뜨거운 것 같은 느낌. 대회 끝나고 먹으려고 준비했던 바나나도 배낭 속에 놓아 뒀지만 금세 얼음으로 변했다.

대회가 시작되고 바다얼음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몸에 열이 조금씩 나기 시작하면서 얼었던 발의 체온은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갑 속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손은 얼어버리는 느낌이었고, 얼굴에는 흐르는 땀이 바로 얼음으로 바뀌는 정말 상상하기 쉽지 않은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내가 달리는 곳은 땅이 아니었다. 바다이자 얼음이었다. 대부분 눈이 덮여 있고 바람이 불어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은 얼음을 그대로 드러낸 곳도 있었다. 태양이 내리쬐고 바람은 한적한 겉보기엔 평온해 보이는 날씨였지만, 가끔 무릎까지 빠지는 눈과 얼음 위를 달릴 때의 미끄러움, 그리고 강렬한 추위는 모래 위를 달리는 ‘뜨거운’ 사막에서와의 느낌과 달랐고 체력 소모도 많아 도로에서 달리는 일반 마라톤처럼 속도를 내면서 달릴 여건도 아니었다.

달려라, 온몸에 얼음이 맺히리라. 사진 안병식
달려라, 온몸에 얼음이 맺히리라. 사진 안병식
24명 중 7명은 완주에 성공하지 못해

42㎞를 달리는 동안 장갑도 신발도 옷도 얼굴도 얼음으로 뒤덮였다. 이런 몰골을 하고 달리는 건 어쩌면 ‘극단적인 경험’이자 ‘생애 최악’의 마라톤 레이스였다. 우리 인간은 자연 앞에서 강인해지려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느끼게 한 레이스였다.

이런 극한의 환경은 의지와 인내만으로 버틸 수 없다. 극지 마라톤은 환경의 영향도 많이 받고 기능성 장비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그나마 나로서는 사막·정글·남극 등 그동안의 많은 오지 레이스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이번 ‘북극점 마라톤’ 참가자는 24명이었고, 이 가운데 7명은 완주에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아쉬움이 컸으리라. 하지만 완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어쩌면 살아가면서 한 번 경험 할까 말까한 마라톤 아니었을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너무나 강렬했던 그 기억들은 우리 모두에게 쉽게 잊혀 지지 않을 추억들이 될 것이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오지를 달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막이나 정글·북극·남극 등은 나에게는 모두 낯선 곳이다. 하지만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그리고 북극점 마라톤은 극단적인 경험이었고 극단적인 행복이었다. 먼 훗날 지금의 방황은 내 인생의 오아시스가 되어 있을 것이다.

글 안병식/ 오지 마라토너

사진 북극점마라톤(npmarathon.com) 제공


‘고독한 레이스’ 완전정복

북극점 마라톤 1등 한 안병식씨, 세계 4대 사막마라톤도 모두 완주

달려라, 온몸에 얼음이 맺히리라
달려라, 온몸에 얼음이 맺히리라
오지 마라토너들은 가장 고립된 곳에서 가장 고독하게 달린다.

가장 대표적인 오지 마라톤은 세계 4대 사막 마라톤 대회. 미국 회사 레이싱더플래닛(4deserts.com)이 여는 이 대회는 중국 고비사막을 달리는 ‘고비의 진군’, 칠레 아타카마사막을 달리는 ‘아타카마 횡단’, 아프리카 사하라사막을 달리는 ‘사하라 레이스’ 그리고 남극을 달리는 ‘라스트 데저트’로 이뤄진다.(남극도 생물이 존재하지 않고 빙하만 가득한 대륙이라는 점에서 극지사막이다.) 마라토너들은 총 거리 250㎞를 6박7일 동안 달린다. 음식 등 비상용품이 든 10㎏ 배낭을 멘 채 달리는, 정식 마라톤이라기보다는 빠른 행군이다.

2003년 시작된 북극 마라톤은 사막 마라톤에 견줘 연륜이 짧지만, 최근 들어 사막을 섭렵한 마라토너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올해는 4월1일 북극점 근처 42.195㎞ 코스에서 열렸다. 안병식(35)씨는 선두 그룹을 형성해 같이 달리다가 30㎞ 지점에서 후발주자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결승선까지 혼자였다. 4시간2분37초. 바다 얼음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이전 대회보다 오래 걸렸다. 2위 이그나스 스타슈케비치우스(리투아니아)는 4시간19분5초에 들어왔다.(북극점 마라톤은 기상과 바다 얼음 상태 때문에 수시로 코스가 달라져 기록이 큰 의미가 없다.)

안씨는 4대 사막 마라톤을 완주하고, 남·북극을 뛴 국내 유일의 마라토너다. 미술을 전공한 안씨는 여행을 좋아했고 이어 마라톤에 빠져들었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이어 2005년 9월 사하라 완주에 성공했고, 2006년 고비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같은 해 아타카마 마라톤에서는 4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남극 마라톤에 참가한 데 이어 지난 4월 북극점 마라톤에 참가해 우승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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