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외국인에게는 숨겨진 비밀
[매거진 esc]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W서울워커힐 총주방장과 함께한 한정식 코스, 그가 조언한 한식 세계화 노하우
W서울워커힐 총주방장과 함께한 한정식 코스, 그가 조언한 한식 세계화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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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란 히키 총주방장(이하 히키): 일식집엔 테이블 밑이 움푹 들어가 있어 다리가 편한데 한식당은 불편해요. 이곳은 등받이 의자가 있어서 낫습니다. 저는 삼겹살 식당을 좋아하는데, 그냥 바닥에 앉는 건 너무너무 불편해요. 삼겹살 테이블 밑에는 가스관도 있죠. 그래도 전 한식을 좋아합니다. 기회 될 때마다 먹어요. 호텔 직원식당도 종종 갑니다. 닭고기에 고추로 양념하고 감자가 들어간 음식이 뭐죠? 맛이 정말 환상적이더군요. 고나무 기자(이하 고): 닭볶음탕 아닌가요? 히키: 아, 맞아요, 닭볶음탕! 닭볶음탕 환상적이야! 고: 한국인들은 음식 문화에 자부심이 대단하고 경제 수준이나 역사에 비해 음식이 덜 알려졌다고 느낍니다. 히키: 한국을 찾는 사람들이 적어요. 그게 문젭니다. 중국 음식은 일찍부터 알려졌고 서양인들을 위해 변형했죠. 타이, 베트남은 휴양지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아니죠. 고: 한식 세계화와 관련해 어떤 한국인 요리사는 한식을 서양의 코스 요리처럼 서비스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하더군요. 반면 한 상 차림이 독특한 색감을 준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히키: 우리(서양인들)는 한 상 다 차려 놓고 먹지 않아요. 그래서 저도 한 상에 다 차려진 한식을 보면 헷갈려요. 뭘 처음 먹어야 하지? 어떤 음식을 무엇과 함께 먹어야 하지? 그러나 음식 서비스 문제는 키포인트는 아닙니다. 제 생각에 가장 중요한 건 교육입니다. 한국 음식은 숨겨진 비밀입니다. 사람들(서양인)은 새로운 걸 원합니다. 타이 음식, 중국 음식은 이미 다 알아요. 사람들은 삼성·현대만 알 뿐 한국에 대해선 모릅니다. 음식과 문화는 함께 갑니다. 한국 음식은 훌륭합니다. 다만, 알려야 합니다. 유명 요리사가 한국 음식이나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겁니다. 유명 한국인 요리사가 외국에서 음식 시범을 보이고 교육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나저나 금속 젓가락은 잡기 힘들군요. 나무젓가락이 훨씬 편합니다. 고: 어떤 요리사는 너무 고추를 많이 써서 음식 맛을 가린다고도 하더군요. 히키: 서양인도 향신료 좋아합니다. 그보다 식재료가 뭔지 알 수 없는 게 신경 쓰여요. 서양인이 안 먹는 걸 한국인들이 먹는 게 있습니다. 가령 이게(그는 해파리를 가리켰다) 뭘까 저는 신경 쓰입니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제 서양인 요리사 친구는 이름을 바꾸라고 하더군요. 서양인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요. 용수산(잠실점 02-425-4674~5, www.yongsusan.co.kr)은 한식 세계화를 표방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 모두 8개 지점이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개성식을 추구하기 때문에 음식의 풍부한 맛을 그대로 음미할 수 있어 외국인에게 호평을 받는다고 홈페이지에서 알리고 있다. 서양 코스 요리처럼 한 접시씩 서비스한다. 점심 코스(2만5000원)는 죽과 물김치, 청포묵, 흑임자두부와 채소, 해물냉채, 개성 제육보쌈, 식사(연잎쌈밥, 누룽지탕, 온면 중 선택), 후식 등으로 이뤄졌다. 제트: 한국 음식과 포도주와의 마리아주(포도주과 요리의 궁합)를 찾는 건 어렵습니다. 제 생각에 고추를 너무 많이 써(포도주 맛을 느낄 수 없도록) 혀를 마비시키는 것 같습니다. 히키: 또 제가 어떤 대중적인 치킨집에 갔는데 너무 엠에스지(MSG)가 많아서 한 시간 뒤에도 입에 남더군요. 고: 한국 음식을 알리는 광고문 첫 줄은 뭐로 해야 할까요? 가령 일식은 서양에서 웰빙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 않나요? 히키: 그보다 ‘세련된’(소피스티케이티드) 음식으로 여깁니다. 초밥을 먹으면 ‘경험 많은 글로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초밥 인기는 놀라워요. 제가 있던 터키 이스탄불에도 초밥집이 20여개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 음식 광고문은, 음 … 숨겨진 비밀? 제 고향 아일랜드에도 아시아 음식 레스토랑이 있어요. 인도네시아 음식부터 타이, 중국 음식 다 있죠. 한국 음식만 없어요. 교육이 필요해요. 제트: 그러나 한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김치를 알려왔는데요? 히키: 김치는 그저 반찬(사이드 디시)일 뿐이에요. 독일에도 자우어크라우트(김치처럼 절인 양배추)가 있죠. 그러나 그게 독일 음식을 대표하나요? 제트: 음식이 나올 때마다 젓가락을 바꾸지 않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히키: 필요하면 손님이 달라고 하면 되죠. 큰 문제는 아닌 것 같군요. 고: 한국 식당의 위생 상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히키: 물론 끔찍한 곳도 봤죠. 그러나 더 나쁜 아시아 나라도 있어요. (세계화와 관련해) 위생은 이슈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 용수산에 대해 평가해 주시죠. 히키: 2만5000원에 이런 음식이라면 훌륭합니다. 세련된(소피스티케이티드) 레스토랑입니다. 한국도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 같네요. ‘품’(서울 후암동에 위치한 퓨전 한식을 표방하는 식당)도 훌륭한 레스토랑이라고 들었습니다. 고: <조선일보> 요리면에서는 ‘품’의 음식을 담는 방식이 일식과 구분이 안 된다고 평했더군요. 히키: 그건 그냥 다른 스타일의 한식일 뿐입니다. 한식이 성공하려면 서로 다른 스타일을 차용해야 합니다. 뉴욕에 최고급 해산물 레스토랑 ‘르 버나딘’(le Bernardin)이 있어요. 그곳에서 한때 생선과 김치를 함께 낸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최근 W서울워커힐에서 제가 비슷한 메뉴를 개발했어요.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고나무 기자의 맛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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