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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소라의 콘서트 입장료 환불 기사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익이 곧 성공의 지표가 되는 세상에서 콘서트를 온전히 작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떨어지는 완성도(관객이 아니라 작가만이 느끼는)에 대한 그녀의 부끄러움은 다 큰 어른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봉을 앞둔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35살 미만 관람불가’로 하고 싶다는 홍상수 감독의 말을 들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죠. 홍 감독은 전작 <극장전>에서도 직접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야하거나,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달고 쓴 인생의 경험을 한 어른이 아니면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힘든 정서와 감정의 결들 때문이겠죠. 보통 영화사들이 등급을 낮추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고 때로는 필름까지 잘라내는 행태와 반대되는 모습입니다.
이번주 김어준씨는 ‘어른의 사랑엔 판타지가 없다’라는 제목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내 사랑은 특별하고, 나의 파트너는 뻔한 남자/여자들과 달라야 하며, 내 이별은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다’고 외치는 수많은 남녀들에게 ‘미안하다, 평범하다’고 일갈했군요. 십인십색이란 말처럼 세상에 똑같은 사람 하나 없지만, 누구나 속 보이는 욕망과 유치한 질투심 따위를 조금씩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죠.
어른에 자격이 있다면 이처럼 대단할 것 없고, 특별하지 않은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일 겁니다. 홍상수의 작품이 어른의 영화인 이유 역시 멀쩡해 보이는 성인들의 한 꺼풀 속, 유치하고 비루하고, 그래서 때로 측은하고 귀엽기까지 한 내면 풍경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죠. 이번 주 ‘너 어제 그거 봤어’에서 이야기한 ‘남자의 자격’ 역시 어떻게 보면 홍상수‘과’ 버라이어티인 것 같네요. ‘가오’를 벗은 아저씨들의 허술한 모습,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홍상수 영화 좋아하세요? ‘남자의 자격’은 어떤가요? 두 가지로 본인의 어른 지수를 한번 체크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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