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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조강지처

등록 2009-07-08 21:12수정 2009-11-11 01:18

니콘 카메라 F3 <니콘이미징코리아>제공
니콘 카메라 F3 <니콘이미징코리아>제공
[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카메라 수리공이 꿈인 조경국 <포토넷> 기자가 숨겨졌던, 잊혀졌던 카메라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만약 자식 같은 카메라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면 남길 단 1대의 카메라는 고민을 할 필요도 없이 니콘 F3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캐논 5D도 아니고, 요즘 한창 찍는 맛을 들인 소니 a350도 제외다. 그렇다고 중고장터에 매일 ‘매복’하며 힘들게 구했던 코니카 Hexar RF Limited(2001대만 생산)도 아니다. 가장 오랫동안 사용하며 정을 붙인 니콘 F3만 있으면 된다.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몸값이 그야말로 ×값이 되었지만 어찌 조강지처를 내칠 수가 있으리오.

니콘 F3의 첫 모습은 1974년 공개됐다. 올해 필자의 나이 서른여섯, 동갑내기다. 이전 모델인 F2AS를 기본으로 프로토타입(시제품)이 만들어졌다. 1977년 두번째 프로토타입이 발표된 이후 양산 모델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이다. 가장 기본형인 F3부터 F3hp, F3/T, F3p, F3AF, F3Limit 등 2000년 10월 생산이 중지되기까지 모두 여섯가지 양산 모델이 나왔다.

나의 조강지처 F3는 시리얼 번호가 ‘14’로 시작하는 1982년 생산품이니 거의 초기 모델인 셈이다. 2000년 8월 니콘에서 “4000대의 F3만 주문받고 더는 만들지 않겠다”고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을 당시 주문량이 폭주했었다고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기 F3의 단종을 슬퍼하는 팬들이 그만큼 많았던 모양이다.

니콘 F3의 디자인은 자동차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를 디자인한 살아있는 전설 조르제토 주자로(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또다른 그의 작품인 영화 <백투더퓨처>에 나오는 들로리안 DMC 12는 (물론 구할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자동차다. 그는 현대자동차의 ‘포니’ ‘스텔라’, 대우자동차의 ‘빅매그너스’ ‘렉스턴’ 등 국내 자동차 디자인을 맡기도 했고 지금까지 100대가 넘는 자동차 디자인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자동차부터 카메라, 시계, 심지어 파스타까지 넘나드는 주자로의 디자인 세계의 가장 큰 매력은 오랫동안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탄탄한 검은색 몸체에 살짝 유선형으로 돌출한 그립, 그립과 몸체 사이에 가늘지만 강렬한 붉은 줄 하나가 그어져 있는 니콘 F3의 세련된 디자인.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보아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후 주자로의 검은색 몸체에 붉은색 포인트를 준 디자인은 니콘 카메라의 이미지로 자리잡는다. 요즘 나오는 니콘 디에스엘아르 카메라들도 모두 그립 부분에 붉은색 포인트가 있으니 한번 확인해 보시길.

니콘 F3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캐논 F-1, 펜탁스 LX 등 경쟁사들의 ‘명기’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결국 모두 상대가 되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 AF 카메라가 시장에 자리잡기 전까지 이렇게 경쟁사를 따돌리고 니콘 F3가 독보적인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디자인을 맡았던 주자로의 힘이 컸다. 특히 1982년 콘탁스가 포르셰 디자인 그룹과 함께 선보였던 콘탁스 RTS II도 치솟는 니콘 F3의 인기를 꺾지 못했다. 독일 디자인에 맞선 이탈리아 디자인의 승리인 셈이다. F3는 기술과 디자인이 제대로 결합할 경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기술을 바탕으로 모양새까지 갖추면 쉽게 넘볼 수 없는 아우라가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이다.

글 조경국 월간 <포토넷>기자·사진 니콘이미징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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