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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밉다

등록 2009-10-28 21:45수정 2009-10-28 22:05

손님이 밉다
손님이 밉다
[매거진 esc] ‘왕’ 대접받기에 20% 모자란 레스토랑 무매너 손님 백태




한식 세계화가 이슈다. 구호가 울리고 깃발이 펄럭인다. 그러나 한식 세계화는 새마을운동이 아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을 보는 것이 먼저다. < esc >가 요리사·식당 주인과 손님의 대화를 시도한 이유다. 요리사와 식당 주인은 항상 약자다. 식당의 음식 재사용, 불친절은 숱하게 지적받아왔다. 한국의 식당 손님은 어떨까? 요리사·식당 경영자 등 4명에게 1)가장 황당하거나, 화나게 했던 손님의 추억 2)손님에게 바라는 점 3)한식 세계화를 위한 과제, 이 세 질문을 던졌다. “손님이 왕”이라지만, 한국 손님들이 세종대왕인지 연산군인지는 이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데이트하다가 싸우면 돈이라도 내고 가든가

⊙ ‘오키친’ 스스무 요나구니 주방장

‘오키친’ 스스무 요나구니 주방장. 사진 박미향 기자
‘오키친’ 스스무 요나구니 주방장. 사진 박미향 기자
1) 오키친을 찾는 대부분의 손님은 훌륭합니다만, 가끔 아쉬운 분도 있습니다. 2007년 오키친을 개업한 전후의 일입니다. 미식가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식당 비평가가 식당을 직접 열 수 있느냐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제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배우가 연출자가 되어서는 안 되나요? 소설가가 평론가가 되어서는 안 됩니까? 또다른 비판은 “스스무 요나구니가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요리를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방장이 항상 주방에 있어야 한다는 신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방장은 주방 운영과 관련한 총체적 경영·관리를 해야 합니다. 부주방장(수 셰프)이 그날의 메뉴를 정하는 일, 스태프 훈련, 요리 등 하루하루의 실무를 담당합니다. 요리는 접시 위에 있는 그대로 판단돼야 합니다. 오키친의 모든 요리는 제 이름을 걸고 만듭니다. 저는 제 요리와 함께 살고 죽습니다.

손님과 관련해서 잊히지 않는 사건이 있습니다. 올해 초 겨울이었습니다. 20대 손님들이 신년 파티 목적으로 예약했습니다. 행사 당일 파티를 개최한 호스트가 갑자기 메뉴를 바꾸고 메인 요리를 추가해 달라고 요청하지 뭡니까. 요식업에서 손님이 신입니다. 요구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빙 직원들은 주문을 적어 전달했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주문 뒤 파티 참석자들 대부분이 테이블을 옮겨 섞어 앉았습니다. 어떤 테이블엔 손님이 몰려 앉고 어떤 테이블엔 좌석이 남기도 했습니다. 손님이 몰린 테이블엔 좁아서 제대로 음식을 대접할 수 없었고, 주문이 뒤죽박죽 섞였습니다. 제가 요리를 한 30년 동안 이런 혼란은 처음이었습니다. 손님들은 주문이 틀리고 음식이 느리다고 불평했고 스태프들은 히스테리컬해졌죠. 저 또한 미칠 듯 화가 났습니다. 뒤죽박죽인 이 청년들에게뿐 아니라, 메인 코스를 추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저 자신에게 화가 났죠.

손님이 밉다
손님이 밉다
2) ① 제발 취해서 홀 직원에게 치근거리지 말아주세요. 오키친은 레스토랑이지 호스티스 클럽이 아닙니다. ② 화장실 변기 커버에 소변 흘리지 말아주십시오. 흘렸으면 최소한 닦아주십시오. 우리는 그걸 예의라고 합니다. 테이블에 앉은 채로 방귀를 뀌는 것도 제발 좀. ③ 오키친에서 첫 데이트를 하는 신사 숙녀분, 싸우지 마세요. 싸워서 따로 나간다면 최소한 함께 나가셔야죠. 함께 왔다 싸운 뒤 계산도 안 하고 나가버린 남자 손님을 본 적 있습니다. 여자분은 결제 안 되는 카드밖에 없어서 엉엉 울고만 있었습니다. ④ 담배 때문에 식사 중에 자리를 너무 자주 뜨지 마세요. 음식이 맛없어집니다. ⑤ 오키친은 금연입니다. 고집하지 말아주십시오. ⑥ 오키친의 코르크 차지(직접 가져온 술을 마실 때 내는 돈)는 1만5000원입니다. 매우 합리적입니다. 그러니 이것마저 깎으려고 하지는 말아주십시오. ⑦ 예약한 뒤에는 약속을 지키거나, 못 올 땐 최소한 전화라도 부탁드립니다. ⑧ 홀 서빙 직원들을 존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당신에게 더 잘 할 겁니다. ⑨ 와인을 거의 다 비워놓고 “파리가 들어갔다”고 항의하거나, 스테이크를 절반 이상 먹어놓고 “원하는 대로 익히지 않았다”고 항의하시면 곤란합니다. ⑩ 레스토랑은 즐겁게 식사하는 곳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보여주려고 행동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손님의 행동과 태도를 보고 손님이 얼마나 중요하고 현명한 사람인지 압니다.

3) 한국 음식의 미래는 날마다 먹는 지역 음식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탈리아 요리처럼 말입니다. 가령 저는 설렁탕과 추어탕의 깊은 풍미를 사랑합니다. 일상의 음식인 햄버거나 마카로니 치즈를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줄 수준으로 끌어올린 요리사 토머스 켈러가 생각납니다. ‘한국의 토머스 켈러’가 나타나 <미슐랭 가이드>가 별을 부여할 수준으로 만든 김치찌개를 맛보고 싶군요.

⊙ ‘올리브 앤 팬트리’ 김신 요리사
‘올리브 앤 팬트리’ 김신 요리사. 사진 박미향 기자
‘올리브 앤 팬트리’ 김신 요리사. 사진 박미향 기자

1) 늘 빈번하게 있는 일을 소개합니다. 3명이 와서 2인분을 주문 후 갑자기 한 분이 “맛있어 보인다”며 포크와 나이프를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손님은 커피를 드시러 옵니다. 세 분이 와서 두 분만 주문합니다. 잠시 후 두 분이 사라지고 한 분이 새로 옵니다. 그러곤 커피를 리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애초 주문하셨던 분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 외에 테이블에 낙서하는 손님, 테이블 웨어를 예쁘다며 훔치시는 손님도 있습니다.

2) 첫째, 음식에 대한 존경심이 없습니다. 요리사의 창의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또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많이들 주장하지만 다른 나라 음식에 대한 존중도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가령 스테이크나 파스타를 드시면서 깍두기를 달라고 하시는 분이 있죠. 식사의 마지막은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는 것이지만 이렇게 하시는 한국 손님은 별로 없습니다. 다른 나라 음식 문화에 대한 인식 없이 한국의 문화만 강요해도 될까요?

둘째, 반찬 문화 때문에 생기는 음식 낭비입니다. 반찬을 재활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백반집에서 5000~6000원에 5~6개의 반찬을 곁들이면 실질적으로 생선 반 토막 올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셋째, 손님의 수준에 맞추어 음식을 내면 “전통적이지 않다”고 평가절하하시고, 전통적인 방식으로-즉 외국과 똑같이- 만들면 “한국인 입맛에 맞추지 않았다”고 평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3) 외국에 무지합니다. 그들의 음식문화에 한국 음식을 어떻게 넣을 수가 있을까 하는 연구가 없습니다. 맥도널드식의 한식 세계화냐, 오트 퀴진(고급 요리) 방식의 한식 세계화냐가 먼저 정해져야 판로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 ‘르 생텍스’ 안상준 사장
‘르 생텍스’ 안상준 사장. 사진 르 생텍스 제공
‘르 생텍스’ 안상준 사장. 사진 르 생텍스 제공

1) 최근 벌어진 일입니다. 음식을 드시던 한국 손님이 갑자기 일행한테 “이건 프랑스 음식이 아니다”라며 주방장이 누군지 물어보시더군요. 주방장이 프랑스인이라 그럴 일이 없다며 제가 자세하게 설명해 드렸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정작 옆 테이블 프랑스 손님들은 맛있다며 드시고 있었습니다. 설령 입맛에 안 맞더라도 주관적인 생각을 과시하듯 표출하시는 모습은 보기 안 좋았습니다. 프랑스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한국인 주방장이 만든 김치찌개를 먹은 프랑스인 손님이 “이건 한국 음식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2) 아직도 직원한테 반말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또 레스토랑 고유의 콘셉트나 맛이 있을 텐데도, 자신이 아는 지식만으로 “○○나라 음식은 이렇게 조리하지 않던데”라거나 “미국식이 더 맛있는데 왜 안 따르냐”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3) 마케팅이 중요합니다. 무조건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찾아가 알려야 한다고 봅니다.

똥기저귀 식탁에 놓고 가는 센스!

⊙ 송파구 방이동 ㅂ 한식당(홀 직원 8명이 1번 설문에만 답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온 답변 순서대로 공개합니다.)

드시지도 않는 반찬을 계속 더 달라고 하는 손님(5명). 반말하는 손님(4명). 주문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늦다고 짜증내는 손님(2명). 아기의 변이 묻은 기저귀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가는 손님(2명). 아이가 뛰어다니며 다른 손님에게 민폐를 끼치는데도 방치하는 손님(2명). 술 취해 야한 농담을 던지며 만지거나 치근대는 손님(2명). 금연인데 굳이 피워야겠다는 손님. “술 마셔야 하니 구울 때 딱 두 점씩만 불판에 올려라”고 하시던 손님. 물컵에 담뱃재 터는 손님. 물론 홀 직원이 고기를 구워드려야 하지만, 직원이 바쁜데 눈앞에 고기가 타는 걸 보고도 뒤집지 않고 결국 고기가 탔다며 바꿔 달라던 손님.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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