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대하는 태도, 몸짓, 시선 하나까지 모두 치밀하게 배려된 행동이다. 심지어 직원들도 임무에 따라 동선이 구분된다. 사진은 매드 포 갈릭의 서비스 모습.
[매거진 esc] 고객 앞에 무릎 꿇는 극친절에서 편안함, 맞춤형으로 변해가는 레스토랑 서비스
식당은 밥만 팔지 않는다. 어떤 분위기에서 누구와 먹느냐가 밥맛의 절반 이상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특급 호텔 레스토랑 직원들은 웃음과 배려를 함께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시선과 몸짓조차 계산하고 학습하고 교육하는 이유다. 손님을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한 ‘작전’이다. 감정노동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릎 꿇고 앉아 주문받는 ‘퍼피독’(puppy dog) 서비스를 요새 찾기 어려운 이유부터 시대마다 손님이 원하는 서비스가 어떻게 변하는지 취재했다. 썬앳푸드, 티지아이 프라이데이스, 더블유서울워커힐호텔, 밀레니엄 서울힐튼으로부터 도움말을 얻어, 가상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2년차 남성 서비스 직원의 일상을 재구성했다.
손님이 외려 불편한 퍼피독 서비스
점심부터 40대 아주머니 손님 4명이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가만있자, 가운데 계신 분은 제가 몸담고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다른 지점 동기가 저희 서비스 직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서 소개한 분이네요. 교육받은 대로 얼른 가서 팔짱을 껴드렸습니다. 웬 팔짱이냐고요? 손님에 따라 제 표정과 말투도 달라집니다.
중년 여성 손님들이나 아주머님들은 얘기를 들어주면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저희 교육팀장님 말씀으로는 자식들이 자라면서 외로움을 점점 느끼신다더군요. 하긴 군대 있을 땐 매주 “보고 싶다”는 낯간지러운 편지를 보내더니 정작 제대한 뒤 전화도, 문자도 안 하는 저 같은 아들을 둔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합니다만. 그래서 팔짱을 낀 뒤 “오시느라 고생하셨죠?”라는 말씀을 일부러 하는 게 좋다고 교육받았습니다.
요샌 레스토랑이건 호텔이건 표준이 아닌 맞춤형이 서비스의 대세죠. 더블유호텔에 있는 친구 말로는 거기 레스토랑에는 ‘시크릿 세븐’(Secret 7) 프로그램이 있대요. 스마일&아이 콘택트(웃으며 눈 마주보기), 웜 웰컴(따뜻한 환영), 프렌들리 앤 어프로프리엇, 10-5 룰 등등이 있대요. 이 중 프렌들리 서비스는 가령 40~50대 동창회 모임이 있는 단체 테이블엔 미리 어머님들이 좋아하실 만한 ‘키친’레스토랑의 최고 꽃미남들로 서버(서비스 직원)를 구성해 서비스하는 거죠.
테이블로 모시고 갔습니다. “요새 날씨가 추워서 어깨가 결리는데 한남동의 ○○정형외과가 좋다”는 말씀을 5분 정도 들어드린 뒤 주문을 받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패밀리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무릎 꿇고 주문받는 ‘퍼피독’ 서비스가 유행합니다. 1992년 저의 경쟁업체인 티지아이 프라이데이스 1호점이 그때부터 현재까지 퍼피독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퍼피독 서비스는 주문 때 손님과 서버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응대하는 거죠.
지금 10년차이신 업장 선배는 입이 닳도록 퍼피독 서비스 얘기를 하시죠. 1990년대 당시 이 서비스가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과 호텔로 대유행처럼 번졌죠. 선배 말씀으로는 1990년대 후반에 저희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이 선배에게 “왜 여기서는 무릎 꿇고 주문 안 받으세요?”라고 직접 묻기도 했다는군요. 아, 이 얘기 벌써 열다섯 번 들었습니다.
그런데 선배 말로는 손님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시대마다 달라진대요. 퍼피독 서비스라는 게 직원은 서 있고 손님은 앉아 있으니까 손님이 서버를 쳐다봐야 하는 데서 출발하거든요. 제가 있는 레스토랑은 오히려 손님이 불편해해서 안 하고 있죠. 저희 경쟁 레스토랑인 토니 로마스도 퍼피독 서비스가 유행일 때 잠시 도입한 적이 있었는데 금세 없앴다더군요.
‘손님이 왕’이라는 건 좀 예전 콘셉트이고 대세는 편안함이라는 게 그쪽 생각인가 봐요. 저희랑 생각이 비슷하네요. 하긴 어느 신문에서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홍석일 총괄부장님이 하신 말씀도 기억나요. “예전엔 손님이 왕이고 직원이 시종이었다면, 지금은 손님과 직원은 패밀리다.” 힐튼 호텔도 5년 전쯤 로비라운지에서 실험적으로 실시하다가 중단했답니다. 손님이 외려 불편해하더라면서요.
그래서 저는 상반신을 적당히 굽히고 주문을 받습니다. 주문을 받은 뒤 주방으로 들어갑니다. 저 같은 서버(서비스 직원)는 러너(음식을 나르는 직원)와 부딪히지 않게 미리 짜인 동선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주방에서 음식을 내는 러너와 빈 접시를 치우는 서버가 충돌했다간 상상하기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처럼 직원의 동선은 지뢰라도 깔린 것처럼 엄격하게 구분돼 있죠. 웬만한 패밀리 레스토랑이 다 그렇습니다.
주문한 음식을 갖다 드린 뒤 필요한 게 없느냐고 조심스레 여쭤봅니다. 다행히 흡족하신 모양이군요. 대부분의 한국 손님은 급한데 이분들은 느긋합니다. 토니 로마스에서 일하는 제 친구가 지난 주말 술자리에서 해준 말이 떠오르네요. 토니 로마스가 다국적 프랜차이즈잖아요? 서비스에 관한 보편 매뉴얼이 있는데 한국에 도입하려다 못한 게 딱 한 가지 있대요. 한식의 한상차림과 달리 양식은 코스로 서비스하죠. 그래서 처음 토니 로마스가 문 열었을 때 전채 주문받아 서비스한 뒤 손님이 전채를 다 드시면 느낌을 묻고 주요리 주문을 차례로 받는 ‘에프엠’에 따랐답니다. 그런데 한국 손님들이 좀 급하시잖아요? “왜 한꺼번에 주문하면 안 되죠?”라는 반응이 많았대요. 결국 처음에 한꺼번에 전채에서 디저트까지 주문받는 ‘한국 스타일’로 바꿨다더군요, 하하.
조금 있으면 프리버싱을 해야 합니다. 접시 치우는 걸 ‘버싱’이라고 불러요. 중간에 접시 치우는 게 프리버싱이죠. 이것도 치밀하게 계산해서 해야 합니다. 정장을 입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 나누는 손님이 있는 테이블엔 손님이 직접 부르기 전에는 섣불리 가지 않는 게 좋죠. 토니 로마스에서는 이런 손님을 위해서 호텔의 ‘두 낫 디스터브’ 비슷한 문구가 있는 쪽지를 테이블에 둔 적도 있었대요. 테이블과 의자 높이도 최적의 높이를 실험을 거쳐 산출한 것이란 사실을 손님들은 잘 모르죠. 그저 무의식적으로 ‘편하다’고 느낄 뿐이죠. 밀레니엄 힐튼 호텔 레스토랑의 의자 높이는 약 50㎝, 테이블 높이는 약 75㎝라는군요.
코스별 서비스가 속터지는 한국 손님들
레스토랑마다, 호텔마다 서비스 철학이 조금씩 다르죠. 어쨌든 대세는 ‘맞춤형’과 ‘편안함’인 것 같습니다. 서비스 차별화는 쉽지 않죠. 어느 외국계 호텔의 경우 공항에 브이아이피 손님을 마중 나갈 일이 있으면 마중 나간 직원이 손님 얼굴을 프런트에 알려준대요. 그리고 호텔 로비에 손님이 오면 프런트에서 반갑게 인사하는 거죠. 서프라이즈 서비스라고 할 수 있죠. 티지아이 프라이데이스는 아이들에게 테이블 안내할 땐 아이들 보폭에 맞추기까지 한다니 이 직업도 쉽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늘도 웃음을 연습합니다. 그러니까 혹시 실수해도 좀 귀엽게 봐주세요.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ㆍ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레스토랑 <메드 포 갈릭>의 직원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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