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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집에 밥이 아쉬워

등록 2010-01-27 21:14수정 2010-01-31 10:21

(왼쪽) 사람들은 가정식 백반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만 진짜 집밥 같은 밥집을 찾기는 어렵다. ‘나물 먹는 곰’ 비빔밥. (오른쪽)‘남촌’ 고등어구이.
(왼쪽) 사람들은 가정식 백반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만 진짜 집밥 같은 밥집을 찾기는 어렵다. ‘나물 먹는 곰’ 비빔밥. (오른쪽)‘남촌’ 고등어구이.
[매거진 esc]




소박한 반찬과 메뉴로 한끼 걱정 덜어주는 홍대 앞 밥집 탐방…
찬수 줄이고 주메뉴에 집중했으면

한정식집은 비싸고 부담스럽다. 김밥, 분식 프랜차이즈의 얕고 설익은 맛은 지겹다. ‘백반’이라는 말은 쉽지만 백반다운 백반을 만나기는 어렵다. 고기나 한정식이 아니고 밥과 반찬이 나오는 식당을 보통 ‘가정식 백반집’이라 부른다. 그냥 밥집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이탈리아의 ‘비스트로’다. 일부러 멀리서 찾아갈 맛집은 아니지만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밥을 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밥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홍대 근처 출판인, 요리사, 주민들에게 알려진 밥집 순우리(02-333-5001), 밥(02-3143-7999), 어머니와 고등어(02-337-0704), 남촌(02-323-6823), 나물 먹는 곰(02-323-9930) 등 5곳을 윤정진 요리사와 함께 찾아가 먹으며 좋은 밥집이 뭘까 대화를 나눴다.

좋은 재료로는 5000원 한끼 힘들어

‘순우리’에서 된장찌개와 갈비볶음(9000원)을 주문했다. 기본찬은 김과 김치 등 5가지였다.

고나무 기자(이하 고) : 음식 맛은 평범하네요.

윤정진 요리사
윤정진 요리사
윤정진 요리사(이하 윤) : 4000원짜리 된장찌개에 진짜 바지락 못 넣죠. 김도 옛날 식으로 염산 안 쓰고 만들려면 힘들어요. 염산 안 쓰면 수확량이 형편없죠.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변한 건 예전 방식으로 만든 음식을 찾아 먹는 분들이 늘었다는 거죠. 예전엔 질보다 양이었는데 지금은 양보다 질이라고나 할까요.


고 : 갈비볶음도 크게 대단한 맛은 아니군요.

윤 : 이름은 갈비볶음이지만, 돼지고기볶음이네요. 물엿 또는 설탕과 간장 넣어서 만든 맛입니다. 딱 5000원짜리 맛입니다. 반찬도 그렇고요. 사실 진짜 좋은 재료를 제대로 써서 만든다고 하면 김치만 해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크죠. 가령 된장을 직접 담가 된장찌개를 만든다고 해요. 비용만 따진다면 된장찌개 하나에도 2만원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허락하지 않죠.

‘밥’에서 부추비빔밥과 갈치조림(1만원)을 주문했다. 찬은 김치와 시래기볶음 등 5가지였다.

고 : 오늘 주제가 밥집인데요, 5000원짜리 밥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사실 직장인들은 5000원도 비싸다고 느낍니다.

윤 : 저는 한국 식당의 반찬 가짓수를 줄일 수 있다고 봐요. 가령 김치찌개를 시켜도 김치가 나오고 다른 걸 시켜도 김치가 나오죠. 항상 같은 찬이잖아요? 그러나 김치찌개 시켰는데 왜 김치가 나오느냐는 거죠. 지금까지 저희가 방문한 두곳이 다 5찬인데, 저는 반드시 5찬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에 맞는 좋은 반찬 몇개면 되죠. 나머지 비용은 메인에 집중하자는 거죠. 개인적으로 3찬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고 : 지난번에 이곳에 왔을 때 전 시래기볶음이 좋더라고요. 이런 반찬 주는 곳은 흔치 않죠.

윤 : 시래기볶음 맛있네요. 부추비빔밥도 먹을 만하군요. 4000원치고 깔끔합니다. 잡스럽지 않게 만들었어요. 갈치조림도 6000원 가격을 생각하면 양념이 잘된 편입니다.

고 : 프랜차이즈 분식집에 가면 잡스러운 걸 못 먹겠더군요. 항상 된장찌개처럼 식재료나 조리법이 특이하지 않은 음식을 시켜요. 이런 얘기 하면 친구들은 나이들었다고 놀리죠.

윤 : 나이든다는 건 어머님 맛을 기억한다는 거예요. 예전에 집에서 한 음식에 잡스러운 게 있었나요? 김치를 항아리에서 꺼내 돼지고기나 조금 넣고 끓이면 그게 바로 김치찌개였죠.

고 : 테이블에 숭늉 주전자를 갖춰놓은 것도 인상적이군요.

윤 : 아이디어가 좋네요. 찬 중에는 시래기볶음이 인상적이네요. 사소한 것 같지만 반찬도 중요합니다. 거기서 먹을 수 있는 반찬 하나가 중요하죠. 한끼를 먹더라도 내가 뭔가를 먹었다는 느낌을 줘야죠. 그래서 전 한식요리사지만 한정식 한상 차림을 싫어합니다. 먹고 나면 내가 뭘 먹었는지 모르겠어요. 밥집이 살려면 메뉴도 간소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건너편 식당에서 순두부가 인기를 끄니까 자기도 순두부를 한다고 칩시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순두부를 오래 두니 맛없어지고, 그러면 또 손님은 외면하는 악순환이죠. 메뉴는 대여섯 가지가 어떨까요? 그래야 현실적으로 비용도 맞출 수 있어요. 부추 한 단 사는 것과 열 단을 한번에 사는 것은 가격 차이가 있어요.

‘어머니와 고등어’에서 정식과 콩비지찌개(1만7000원)를 주문했다. 김치 두 종류 등 반찬 6가지에 미역국이 나왔다.

고 : 이곳은 테이블에 작은 김칫그릇이 있어 손님이 알아서 덜어 먹을 수 있게 한 아이디어가 좋지 않나요?

윤 : (직원은 김칫그릇을 직접 맞춤 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백김치가 깔끔하네요. 미역국도 제대로군요. 미역에 점성이 있거든요. 이곳 미역국은 국물에 무게감이 있군요. 다만 김치는 테이블에 오래 올려져 있어 맛이 아쉽네요. 김치는 독에서 꺼내면 익는 속도가 빨라지며 맛이 떨어지죠. 항아리에서 바로 꺼내서 “아삭”하는 소리가 나는 맛이 제대로죠.

고 : 테이블에 미리 꺼내 놓는 게 일장일단이 있군요. 삼겹살볶음도 입소문이 많이 난 반찬이죠.

윤 : 삼겹살볶음은 반찬이라 하기엔 좀 무겁군요.

남촌에서 정식과 된장찌개(1만4000원)를 주문했다. 기본찬은 멸치볶음, 깍두기, 미역 등 9가지였다.

고 : (직원은 기본찬이 9가지라고 설명했다.) 기본찬이 어마어마하군요. 맛은 별론데요. 된장찌개 맛이 특이하군요. 풍미나 목 넘긴 뒤 입안에 남는 식감이 유달리 텁텁하군요.

윤 : 된장찌개에서 나는 텁텁함은 밀가루 맛인데요. 좋은 된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전망이 좋고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좋군요. 담배도 못 피우게 하고 바닥에 좌식으로 먹게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주방 아주머니들이 깨끗하게 모자를 쓴 모습도 좋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간 4곳 모두 밥집이 밥집이 아니네요.

밥이 아쉽다는 거예요. ‘어머니와 고등어’도 밥은 별로예요. 4곳 다 미리 담아 놓거나 오래된 밥처럼 느껴졌습니다. 윤기 있고 차진 밥이 아니에요. 밥집은 밥맛인데.

‘나물 먹는 곰’에서 아사곰 소반과 배추지지미(2만2000원)를 주문했다. 아사곰 소반은 비빔밥에 아사히 생맥주 330㎖ 한 잔이 함께 제공되는 세트메뉴였다. 비빔밥에 딸린 기본찬은 우엉졸임, 두부, 콩나물국이었다.

윤 : 김치가 맛있으면 김치찌개도 맛있을 수밖에 없죠. 고추장도 맛있네요. 백김치는 약간 짠 편이지만 정갈합니다. 경상도식입니다. 사실 김치야말로 까다로운 음식이에요. 사람마다 어찌나 식성이 다른지. 제 아이가 셋인데 나이에 비해 식성이 섬세한 편이죠. 6살에서 대략 12살까지 입맛이 평생 가는 것 같습니다. 혀가 가장 발달할 때가 아닌가 해요. 다국적 음식 체인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면 아이들부터 먹인다잖아요. 무서운 일이죠.

김치 맛은 밥집의 기본이자 핵심

고 : 밥은 어떤지 봐주시죠. 제가 봐도 약간 마른 것 같은데요.

윤 : 배추전은 반가 음식이죠. 전은 훌륭합니다만, 밥은 이곳도 좀 말라 있군요. 총평을 하자면, ‘순우리’는 샐러리맨들이 한 끼 정도 먹을 만한 곳이라 느꼈습니다. 5000원 가격을 생각하면 그냥 먹을 만한 곳이란 생각입니다. ‘밥’은 숭늉을 주는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시래기볶음도 인상적이고요. ‘어머니와 고등어’는 정갈하고 깨끗한 음식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백김치도 좋았고요. 콩비지찌개의 경우 돼지고기 풍미가 좀 나는 게 아쉬웠습니다. 9000원 가격이 적정하다고 느낍니다. ‘나물 먹는 곰’ 역시 가격 대비 괜찮습니다. 특히 배추전은 가격 대비 아주 괜찮네요. 비빔밥에 소반을 받치는 디테일도 좋습니다. 메뉴를 보니 점심에 아사히 생맥주를 제외하고 비빔밥이 6000원입니다. 질을 생각하면 훌륭한 가격입니다. 김치에 자꾸 손이 갑니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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