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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열다 내 공화국을 펼치다

등록 2010-02-03 21:00수정 2010-02-07 09:23

식당을 운영하는 것은 직장을 다니는 것만큼 어렵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야 하고 요리부터 경영과 마케팅까지 도맡아야 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것은 직장을 다니는 것만큼 어렵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야 하고 요리부터 경영과 마케팅까지 도맡아야 한다.
[매거진 esc] 직장인들의 로망 레스토랑 차린 프로듀서 출신 김정훈·강수연씨의 창업스토리
아침 최저기온 영하 4도. 올겨울 날씨를 생각하면 지난달 28일 오전 10시40분 기온은 높은 편이다. 찜질방에서 나온 김정훈(39)씨는 자동차 핸드브레이크를 풀기 전 오전에 살 식재료를 적은 메모를 본다. 오늘은 채소와 해산물이다. 마포 농수산물시장과 노량진 수산시장 두 곳 다 가야 한다. 지난해 11월30일부터 이날까지 거의 매일 장을 보며 익숙해진 아침이다.

“여러분의 80%는 6개월 안에 망합니다.”

가게를 들렀다 곧장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해 11시20분쯤 도착했다. 김씨는 오징어 다섯마리를 5000원에 흥정했다. 현금영수증을 끊어 달라는 김씨와 상인 사이에 흥정이 이어진다. “오늘 영수증 종이가 떨어졌는데?” 아주머니는 능청을 떤다. 오늘은 김씨가 ‘졌다.’ 식당 경영자의 원칙은 분명하다. ‘매출은 최소한, 매입은 최대한.’ 세금을 적게 내려면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매입 비용을 철저히 증빙해야 한다. 반면 파는 노량진 상인은 자신의 매출이 적은 게 유리하다.

바지락 2㎏, 새우 1㎏, 숭어 2.3㎏, 오징어 5마리를 트렁크의 보관함에 넣고 다시 핸드브레이크를 올렸다. 시동을 켜자 피오나 애플이 부른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가 흘러나왔다. 비틀스의 곡이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은 소 공화국을 운영하는 것과 같다고 홍대 바 ‘망명정부’의 전상삼 사장은 말했다. 6호선 상수역 4번 출구 근처의 ‘이탈리안 비스트로 달고나’가 김씨의 공화국이다. “아무것도 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 거야.”(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 목요일 평일 점심이지만 준비를 늦출 수 없다. “자이 구루 데바 옴.”(Jai guru deva om) 노래가 이어진다. 김씨는 무신론자다. 그러나 불경기에 레스토랑 문을 연 그도 존 레넌처럼 이 만트라(석가의 깨달음이 담긴 말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를 되뇔지 모른다. ‘선지자 덕분입니다.’

12시에 동업자 강수연(41)씨가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8평 공간이지만 색감이 세련되게 통일돼 있다. 밝은 톤의 빨간색 격자무늬 테이블 덮개 위에 다시 진한 빨간색 천을 덮었다. 두 사람이 예전에 했던 일을 생각하면 이런 섬세한 미감이 이상하지 않다. 1999년 술친구로 처음 만난 둘 다 영상 일을 했다. 여러 매체에서 프로듀서로 일했고, 나중엔 자신들의 프로덕션을 만들었다.

술과 음식을 좋아하는 둘은 잘 뭉쳤다. 둘 다 직장 생활이 15년 넘어가던 2004년 즈음 ‘내 식당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1980년대 후반 학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어려 보이는 강수연씨와 웃을 때 눈웃음이 생기는, 잘생긴 김정훈씨 모두 처음부터 이탈리아를 고집한 건 아니었다. 스페인이든, 이탈리아든, 그리스든 지중해면 다 좋다고 생각했다. 2008년 3월 둘은 훌쩍 떠났다. 2008년 9월부터 이탈리아 중부 베로나에 주로 머물면서 이탈리아 곳곳을 돌아다녔다. 한 손에는 카메라를, 다른 손에는 포크를 들고.

지난해 4월 인천공항에 내리면서도 ‘내 식당을 열려면 2~3년은 걸리겠지’라 생각했다. 국내의 여러 레스토랑을 돌아다녔다. 요리학원도 다녔다. 그러다 창업이 급물살을 탔다. “좋은 가게가 나오니까 일사천리더군요”라고 김씨는 말했다. 4년 넘게 살던 경기 고양 일산의 월세에 놀라 풀이 죽었다. 그러다 상수역 근처 철물점을 찾았다. 느낌이 왔다. 오로지 홍대 앞에 있다는 이유로 철물점에도 권리금이 있다는 사실에 분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법원은 권리금에 대해 임대 기간이 끝나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돌려받을 수 없다고 여러 차례 판결했다. 두 사람은 권리금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투사가 아니라 창업 준비자들이었다. 저축을 털어 곧장 계약했다. 권리금과 인테리어 등 기초 공사 비용만 4000만원이 훌쩍 넘었다.

강수연씨가 인테리어 일부를 맡았다. 그러나 창업은 쉽지 않았다. ‘쉽지 않았다’는 서술어에는 전압을 높이는 공사가 어려워 스페인산 오븐을 울며 버린 일, 부엌의 환기구 흡입력이 강해 외풍이 생겨 손님들이 추위에 떤 일 등 수많은 에피소드가 숨어 있다. 그렇게 어렵게 준비하고도 한국음식업중앙회의 위생교육 때 강사로부터 김씨와 그 자리에 모인 식당 창업자 300여명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여러분 중에 80%는 6개월 안에 망하고 10%는 1년 안에 망할 겁니다.” 중앙회의 위생교육은 일주일에 3번이다. 한국음식업중앙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마포구에만 한식, 일식 등 일반음식점이 3139곳 영업한다. 그토록 많은 식당이 생기고 망한다.

낮 12시가 지났지만 아직 마수걸이도 못 했다. “한 레스토랑 주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어요. ‘매출이 0원인 날이 있다. 더한 공포는 그 다음날 생긴다. 오늘도 0원이면 어쩌지?’라는 말이었죠.” 웃으면서 강수연씨가 말한다. 개업한 뒤 이날까지 약 두 달. 가게를 쉰 날이 5일이 채 안 된다. 비스트로는 편안한 분위기의 작은 식당을 가리킨다. 음식은 어느 요리학교를 나왔느냐는 학벌로 결정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음식이 그것을 증명한다. 봉골레 파스타의 바지락은 통통했다.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생산된 ‘시티아’ 올리브기름 향은 풍미가 섬세했다. 살시차(이탈리아 햄의 한 종류) 파스타(가운데 사진)도 좋았다. 둘 다 8000원과 1만2000원이라는 가격이 믿어지지 않게 양도 많았다. 먹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이탈리아 시골 밥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모시조개를 미리 삶아 냉동한 뒤 그때그때 꺼내서 봉골레 파스타를 만들면서 가격은 비싼 엉터리 이탈리아식 레스토랑과 달랐다.

음식에 대한 애정과 고집, 직장 생활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 이탈리아 미식기행 경험 등은 무형 자산이다. ‘달고나’가 1년을 버티고 살아남는 10% 안에 들까? 벌써 블로그 여기저기에 입소문이 났지만 미래는 예측 불가다. 식당을 낸다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로망’을 그들은 이뤄냈다. 현실은 지금부터다. 함께 일하는 요리사 최경준씨가 “요리사에게 크리스마스란 그저 평소보다 조금 더 바쁜 날이지”라고 표현한, 바로 그 식당의 현실 말이다. “직장 생활과 달리 자기 미래를 자기가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이 좋죠.” 김씨는 요새 이탈리아 요리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피곤하다는 말을 연방 했지만, 쉴 새 없이 강수연씨가 직접 만든 치즈를 자랑하고 올리브기름에 대해 설명했다.

“내 미래를 내가 그릴 수 있어 좋죠.”

마법처럼, 오후 1시에 4명의 단체 손님, 혼자 온 남자 1명, 백인 남자 2명이 들어왔다. “치이익!” 주방에서 ‘플람베’(조개 등이 담긴 달궈진 팬에 화이트와인을 끼얹는 것) 소리가 들렸다. 김씨는 마지막 설거지와 정리를 마치면 어제처럼 의정부의 집 대신 밤 11시께 마포의 단골 찜질방에 몸을 던질 게다. 어제처럼 아마 꿈도 꾸지 않고 깊게 잘 게다.

달고나 식생활 기행 프로젝트(dalgona.tv) | 강수연, 김정훈씨의 음식 편력기와 창업기가 고스란히 적혀 있다. ‘이탈리안 비스트로 달고나’를 찾아 신선한 수준급의 음식을 직접 맛보는 것도 공부다. 마포구 상수동 328-14. (02)324-2123. 봉골레 파스타 8000원, 살시차 파스타 1만2000원, 숭어 카르파치오 1만5000원 등. <우리 카페나 할까>(김영혁 등 지음. 디자인하우스)도 참고할 만하다. 홍대 카페 비하인드의 동업자들이 쓴 창업기다. 창업 준비생의 필독서.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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