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눈 비비고 뺨 꼬집어 봤지만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지난주 180호 〈esc〉 대장 들고 편집국을 뛰어다니다 티브이에서 목격한 연평도는 말 그대로 ‘불바다’였습니다. ‘집 고치기의 행복한 꿈’은 날아드는 포탄에 불타는 집들 앞에서 망연해질밖에요. 그렇다고 다급히 ‘피난법’ 특집을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죠. 정색도 장난도 맞지 않는 황당한 상황. 전쟁영화 같은 현실이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데, 우리네 삶은 금세라도 무너지고 깨져버릴 허상이 아닐까, 묘한 상념도 잠시 들더군요. 영화 같은 현실 속에 부대끼고, 현실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영화에 빠져드는 일이, 어디 하루이틀 일인가요.
그래도 삶은 이어지고, 〈esc〉는 재미와 의미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이번호는 밑바닥부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 상업영화의 제작비가 많게는 수백억원을 웃돌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이보다 10배가 넘지만, 200만원 들여 찍는 영화도 있고 아예 ‘무전제작’도 있다니 놀랍지 않나요. 영화를 보며 울고 웃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도 못지않은 감동이 있습니다. 정부의 독립영화 제작 지원이 내년부터 없어진다지만 거리 곳곳에선 카메라를 들고 꿈을 찍어대는 젊음들이 넘쳐날 겁니다.
영화에 인생을 걸기도 하지만 영화는 재미난 장난감이기도 합니다. 큰돈 주고 질렀지만 먼지 덮인 디에스엘아르, 전화통화하고 트위터·게임용으로만 쓰는 스마트폰을 잠깐 들어보세요. 가만히 주변을 들여다보면 평소 지나치던 광경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양익준·노영석·이응일 같은 쟁쟁한 독립영화 감독들이 저렴하고 효과적인 촬영 비법도 알려줬습니다. 마침 9일부터 일주일 남짓 서울 상암동에서 36회 서울독립영화제가 열리는데요. 혹시 압니까? 박철민·서영희와 같은 감동적인 소감을 무대 위에서 여유있게 읊을 날이 올지? 시절이 하수상해도 삶은 지속됩니다.
김진철 〈esc〉 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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