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이드북은 요점 정리용으로만 활용하는 게 좋다.
[매거진 esc] 김형렬의 트래블 기어
‘제이’와 ‘에스’는 동창이면서 인천과 광주광역시에 떨어져 살지만 자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라오스 루앙프라방 야시장에서 처음 그들을 봤다. 젊은 그녀들은 헐렁한 ‘추리닝 패션(?)’이었다. 4주째 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을 돌고 있단다. 타이는? 했더니, “사람이 많아 ‘땡기지’ 않아요” 한다. 베트남의 할롱베이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프 더 비튼 트랙’(발길이 닿지 않은 곳)을 걷는 여행자들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일정 만들기다. 갈 곳을 이리 엮느냐 저리 엮느냐에 따라 체류 시간이 달라지고 씀씀이도 왔다갔다 한다. 여행의 느낌도 다르다. 외국인 친구가 한국을 여행한다고 했을 때 ‘서울을 먼저 보고 제주를 가는 것’과 반대로 ‘제주를 우선 돌고 나중에 서울을 보는 여정’ 중 어느 쪽을 추천하겠는가? 여행에는 조삼모사가 없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가이드북 탐독이다. 블로그를 찾아다니는 것도 좋다. 이 방법은 안전한 여행을 보장해 준다. 이름난 관광지를 놓치지 않을 수 있고 빠른 교통편과 편안한 숙소를 얻을 수 있다. 단점은 모두가 에펠탑 밑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는 것이다.
가이드북이란, 시간적으로는 지난 정보의 집합이자 공간적으로는 저자 입맛에 맞는 목적지의 나열이다. 여행의 콘셉트는 일상을 벗어나자는 것인데, 그 방법이 남이 써놓은 대로 하는 것이라면 그건 여행에 대한 자기부정이자 모독이다. 사실 가이드북이 없다고 해서 여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론리 플래닛’의 창시자 토니 휠러는 세계 최고의 가이드북 출판사를 일궜지만 그는 변변한 가이드북이 없던 시절에 런던를 떠나 아시아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 당도했다.
가이드북은 요점 정리용으로만 활용하라는 것이다. 첫째 한 도시의 교통수단을 정리할 때(공항에서 시내 가는 법 등), 둘째 그 도시의 지리적 특징을 파악할 때(광화문은 서울의 중심지이며 주변에 주요 고궁들이 모여 있다 등), 셋째 그 도시에서 주의할 점(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에는 소매치기가 득실거린다 등). 이밖에 볼거리·식당·숙소 정보 등은 가이드북 필자들도 자료에 의존하거나 협찬으로 이용한 경우가 많아 객관성이 떨어진다. 가이드북을 고를 때 살펴야 할 점도 있다. 협찬 광고가 과다하거나, 사진이 지나치게 많거나, 지도가 부실하거나, 무겁고 제본이 나쁜 책들은 피하는 게 좋다. 여행에서 최고의 ‘가이드북’은 사람들이다. 살아 있는 생생한 정보는 여행자들과 그들을 도와준 현지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멋진 것 보러 가기보다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행한다는 ‘제이’와 ‘에스’가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글·사진 김형렬 호텔자바 이사 www.hoteljav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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