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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얼굴을 곰곰 들여다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기자 경력이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뭔가 느낌 같은 게 생겼다고나 할까요. 나도 모르게 처음 만나는 이들의 인상을 가늠해보곤 합니다. 나이, 성별, 직업, 학력 따위를 불문하고 한 사람을 훑어 지나는 어떤 흔적들이 얼굴에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탐욕으로 가득한 늑대, 계산속 뻔히 보이는 여우, 제 허물도 모르는 미련한 곰, 책임감 넘치는 충직한 개, 순진하고 귀여운 다람쥐, 영리하고 지혜로운 고양이…. 동물들의 형상이 오버랩되며 멍한 상념에 젖어들다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개인적으론 불만 덕지덕지 붙은 얼굴이 가장 나빠 보입니다. 이도 저도 싫은 불만덩어리 삶은 안타깝지만 가까이해선 안 된다고 본능이 경고합니다. 삶이 만족으로 충만할 수만은 없는 일이지만 방향 없는 투덜거림이 생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역시 무엇이든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더 좋은 일이야.’ 속으로 되뇌며 현실감각을 되찾곤 합니다. 제대로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이 싫어하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 좋아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esc〉 이번호에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노래하고 연기하는 이들을 사랑하는 다양한 팬들의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맹목적 추종의 팬 문화가 사회의식의 각성으로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읽어낼 수 있을 겁니다.
열대어를 아끼고 좋아하는 ‘물생활’ 즐기기의 달인도 부럽습니다. 알록달록 반짝이는 작은 열대어들이 때때로 그를 위로했을 겁니다. 좋아하더라도 정말 좋아해야 할 것을 놓쳐선 안 될 일입니다. 열대어의 즐거움에 빠져 가족을 잊진 마시길.
‘야동’을 좋아하는 새신랑을 걱정하는 새색시도, 걱정의 뒤에는 좋아함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김진철 〈esc〉 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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