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정리를 참 못합니다. 결혼 뒤 아내와 많이도 다퉜죠. 일을 하건 쉬건 공간은 편해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아내는 어질러 놓은 공간이 편치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평행선처럼 대거리가 이어질밖에요. 평행하는 두 직선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죠. 하지만 비유클리드기하학에선 만납니다. 지구 위 경도가 양극에선 접점을 찾지요. 나는 조금씩 정리했고 아내는 조금씩 덜 정리하는 정도의 화해랄까요. 그래도 서재는 나만의 공간. 마음껏 어지럽힐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책이 쌓여가고 더는 눈뜨고 못 볼 지경이 되면 그제야 정리에 나서곤 합니다.
정리 못하는 건 병이랍니다. 집에 각종 잡동사니를 잔뜩 쌓아두는 사람, 우울증일 경우가 많다고요. ‘미련’이라고 할 만합니다. 불필요한 것,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하는데, 돈 주고 산 것 버리기가 쉬운가요. 더구나 물건엔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책도 옷도 각종 물건도 버리지 못하고 꾸역꾸역 쌓이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과감히 버려야 정리된다고 합니다. 눈앞에 산적한 물건들이 마음을 더욱 어지럽히기도 한다니, 악순환의 고리는 끊을 일입니다. 헤어진 애인 미련스럽게 떠올려봐야 어디 쓸 데 있나요. 화려한 정리의 공간, 국가대표 책장들을 커버스토리로 준비했습니다. 책장 만들고 책 정리하는 방법들도 마련했습니다. 화창한 봄날 대청소하고 책장 정리해보는 것 어떨까요. 정리합시다.
신정아씨도 〈esc〉가 정리 한번 해보려 했습니다. 제가 직접 인터뷰 신청을 하고 두 달이나 기다려 어렵게 성사됐습니다. 언론과 하는 마지막 인터뷰라고 합니다. 김어준씨도 평소와 달리 적잖이 긴장한 게 인터뷰 행간에 느껴집니다. 억울한 부분도 있고 허무맹랑한 부분도 있는 것 같네요. 신정아씨도 정리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일이 너무 크게 터졌고 속상한 부분도 왜 없겠습니까. 그래도 펼쳐놓은 논란들은 스스로 정리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버릴 건 버려야 합니다.
김진철 〈esc〉 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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