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밥 먹으러 가자. 어디 갈까…. 뭐 먹고 싶어? 니가 가고 싶은 데. 난 아무거나 좋은데.
이러다 우리 부부, 다투기도 합니다. 우유부단의 극치인지, 아니면 까다로운 입맛이 말썽인 건지. 외식이 잦진 않아도 주말이면 한 주 내내 안팎에서 힘들었던 아내, 놀아주지 못한 아이 생각에 밥집을 찾습니다. 식당이 많아도 탈, 없어도 탈인데, 누가 좀 골라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럴 땐 여섯살짜리의 단순한 소박함이 고맙죠. “난 탕수육!” 내 손으로 멋진 밥 한 상 차려 가족 앞에 짜잔~ 펼쳐놓는 아름다운 상상, 한번 해봅니다.
밥벌이도 지겹지만, 밥 먹기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겁니다. 매일매일 점심시간 뭐 먹을까 고민하는 일이 즐거워야 할 텐데, 때로 한심하고 지겹게 느껴지기도 하죠. “밥맛 없어도 밥심으로 사는 게야.” 할머니 살아생전 말씀이 나이 들어 갈수록 절절해집니다.
맛있는 밥 이야기 한 솥 가득 지어내려 했는데,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결론은 역시 마음이라네요. 맛없는 밥이라도 사랑하는 이와 마주한다면 어찌 맛없겠습니까. 그러니 홀로 외로이 식탁에 앉았다 해도 주문을 외워봅시다. 맛있다, 행복하다, 즐겁다, 신난다…. 그래도 안 되면 입에 착착 달라붙는 밥 지을 궁리해보세요. 어떤 쌀이 맛있는지, 어떻게 지어야 달콤한지, 어떻게 차려 먹어야 행복한지.
누군가 그러더군요. 자동차는 남자의 로망이라고. 그 말 이해할 수 없었는데, 요즘 들어 슬근슬근 차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있는 건 돈밖에 없다’는 불쌍한 중년의 길에 접어든다 해도, 다른 것 없이 유일하게 있는 돈이란 게 보잘것없으면 정말 서글플 테죠. 그래서 일단 꿈만 꿉니다. 아이가 권유하는 스포츠카를 그려보고, 또 제 스타일의 밋밋하고 단순한 4륜구동 정도. 저도 어느 날 우르릉 멋진 차 몰고 집에 들어가 열쇠 던져주며 짧고 건방진 미소 지어 볼까요?
김진철 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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