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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이다! 일어서라, 미뢰들아!

등록 2011-06-23 10:48

한성문고에서 만난 웹진 모자이크 청년들
박형진(성균관대 3년)씨는 재미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내는 데 귀신이다. 룸메이트가 지하철 천장 청소, 편의점 담배간판 갈기 등 다소 힘든 일을 선호하는 반면 그는 미술학원 두상 모델, 만화 캐릭터 연기, 방송보조 등을 했다. 그의 노동에는 파우더 가루처럼 나풀거리는 유머가 있다. “코엑스에서 열린 전국 캐릭터대회에서 스폰지밥 인형을 입었어요. 앞에서 뽀로로가 춤추고 뒤에서는 파워레인저가 애크러배틱을 했죠.” 스폰지밥 인형 안은 숯가마보다 더웠다. 안에는 감전의 위험이 있는 작은 선풍기 팬이 있었다. 그는 스폰지밥으로 하직할 순 없었다. 그것마저 끄자 더위는 폭발 직전의 화산으로 변했다. 땀으로 범벅된 짜증은 쉬는 시간 사라졌다. “뽀로로가 ‘에이 못해먹겠다’ 소리 지르면서 주저앉아서 담배를 뻐금뻐금 피우는 거예요.”

아르바이트가 끝난 뒤엔 라면이 그를 위로했다. 육체노동을 즐기는 룸메이트와 별난 라면요리를 만들었다. 일명 짜파구리. 짜파게티 면과 너구리라면 면을 삶고 국물을 모두 버린다. 수프를 모두 섞는다. 3:1 수프 비율을 좋아하는 이도 있지만 박씨는 1:1을 즐긴다. 혀가 짠 것을 그리워하면 볶음라면을 만든다. 삶은 면에 수프만 넣고 볶는다. 남미의 붉은 정열이 자린고비의 짠맛과 만난다. 콩나물라면은 별미. 콩나물을 라면의 2배 이상 넣는 것. “해장 금방 되죠.” 라면이라면 놀고 있던 그의 미뢰(미각세포)들이 벌떡 일어난다. 그와의 인연은 역시 라면이었다. 그의 정교한 라면 맛 검증 능력이 신라면블랙의 맛을 평가하는 데 유용했다.

감사의 뜻으로 ‘모신 곳’은 2호선 합정역 부근 라면집 ‘한성문고’였다. 이미 일본라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하카다분코의 주인 김연훈씨가 연 라면집이다. 그는 돼지사골, 닭뼈, 생선(가쓰오부시와 고등어)을 우려낸 육수에 생면을 삶아 넣은 ‘서울라면’을 만들었다. 면은 숙성을 두번 한다. 알칼리성 물로 처음 반죽한 뒤 20분 숙성, 다시 한번 반죽하고 40분간 둔다. “알칼리성 물과 밀가루가 만나면 딱딱해지는 경향” 때문이라고 주인은 설명한다. 육수는 8시간 끓인다. 와우, 육수도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을 지킨다. 고명은 돼지사태를 조린 것과 돼지오겹살이 올라간다. 사태는 사감선생처럼 깐깐하고 오겹살은 누이처럼 부드럽다. “라면 맛 어때요?” “와, 고급인데요. 면 좋네요. 제대로 느끼한 것 같아요. 비린 느끼함이 없어요. 차슈도 눅눅한 지방 느낌 좋아요.”

그는 지금 휴학을 하고 20대 청년들이 창업한 ‘모자이크’(www.mosaicist.net)에 참여하고 있다. 모자이크는 따스한 감성이 묻어나는 콘텐츠를 온라인에 유통시키는 집단이다. 김예찬(26)과 그의 동생 김예신(24)이 만들었다. 모자이크는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를 떠올릴 만큼 반짝이는 콘텐츠가 많다. 평범한 이들의 인터뷰(이것들은 지구를 덮을 만큼 거대한 모자이크로 다시 태어날 예정), ‘여행자의 마음’, ‘흥얼흥얼 팔도 어쿠스틱’ 등. 박씨와 김예찬씨는 모자이크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났다. 20대 9명도 모자이크에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에도 관심이 많은 이 청년들에게서 이 땅의 희망이 보였다. (한성문고/서울라면 1만원/02-332-7900)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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