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귀차니스트’였습니다. ‘햏자’도 됐다가 시체놀이도 즐겼죠. 기나긴 여름방학 한 일본 소설가의 작품들을 모조리 읽어내려가며 ‘방콕’한 적도 있었습니다. 후끈한 한낮의 열기도, 여름밤 창문을 열면 잠시 불다 마는 한줄기 바람도, 즐길 만했죠. 맥주잔에 몽글몽글 맺히는 물방울들이 후루룩 흘러내리고 스피커에서 퀸이나 파이어하우스 아니면 임펠리터리 따위의 노래가 흘러 나오던 작은 방을 떠올립니다. 책상에 걸터앉아 열린 창밖으로 담배 연기를 훅 뱉어내면 그럭저럭 하루를 살아냈구나,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던 것 같군요.
이 여름 뜨겁게 타올라야 할 이 땅의 젊은이들은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대형마트 지하실에서 숨져간 대학생과 강화도 해병대 내무반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의 모습이 겹칩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막대한 학비에 짓눌려서 미래를 꿈꿀 여유 없는 젊은이들의 죽음
까지 오버랩됩니다.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도서관에서, 거리에서, 또다른 곳곳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위태로운 순간들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뜨겁게 살아내야 할 인생의 여름이 너무나 빨리 저물고 있습니다. 불온한 공기가 떠돕니다. 작열하는 태양의 계절, 젊은이들의 얼굴엔 그늘만 늘어갑니다.
떨어진 공은 튀어오릅니다. 더 세게 추락한 공일수록 더 높이 튀어오릅니다. 외부의 힘이 가해지면 그 힘을 받아 제 힘으로 흡수해 다시 반동하는 탄성 때문입니다. 사람도 튑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의 가장 중요한 잠재력으로 탄성력을 꼽습니다. 다시 일어서는
반동의 힘 말입니다.
정현종 시인은 ‘탄력의 나라’의 왕자를 노래했습니다.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 한다고 말이죠. 이 땅의 젊은이들이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으로 이 여름, 환하게 튀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진철 < esc > 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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