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지난 주말 한참 이른 새벽, 신나게 자동차 가속페달을 밟았습니다. 경인고속도로를 내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인천 연안부두. 어둑한 바닷물살을 가르며 낚싯배는 유유히 남하했고, 멀어지는 뭍을 망연히 바라보며 맥주캔부터 꺼내들었습니다. 바닷바람에 휘둘리는 몸속을 차가운 맥주가 타고 흐르는 묘한 쾌감에 전율하면서 만선의 꿈은 부풀어만 갔습니다. 낚싯줄 드리운 바다는 해무로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살 약한 바다는 마치 푸딩처럼 부드럽게 눈길을 보듬었습니다. 여기가 무릉이냐 도원이냐…. 조금만 가다 보면 물 위로 복숭아 잎이라도 떠내려오지 않을까 하는 망상마저 일었습니다. 그렇게 흘려보낸 8시간. 속은 타들어갔으나 우럭도 광어도 참한 놈은 낯짝도 뵈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낚싯대를 움켜쥐었으나 아이스박스는 무용했습니다. 새우잡이어선 타기라도 한 듯 짠 바람과 피곤에 찌들었지만, 아마도 시간 지나면 다시 바다를 찾을 겁니다. 이런 걸 중독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광어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지구 반대편에선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념이 인간을 짓밟는 망상이 현실에 그대로 전개됐습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잔혹해질 수 있는지…. 소식을 접하고 잠시 멍해져 버렸습니다. 사람에 대해, 세계에 대해 현실감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망상에 중독된 괴물의 짓이 틀림없습니다.
중독이란 관행의 한 양상일지도 모릅니다. 고민 없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아름다운 관행이란 게 없지 않을 테지만, 편견으로 이뤄진 관행이라면 불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행도 마찬가집니다. 맛있는 음식, 진기한 광경, 흥미로운 경험에 몸을 맡기는 일은 행복한 일일 테지만, 내 행복의 결과가 다시 나의 불행으로 돌아오지 말란 법 없을 겁니다. 그래서 관행을 버리고 대안을 고민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희망이 보이는 거겠죠?
김진철 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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