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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사용설명서

등록 2011-08-11 15:29

esc를 누르며
누구나 짐승 한 마리 가슴에 품고 삽니다. 놈은 얌전하다가도 호시탐탐 절호의 기회를 노립니다.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뛰쳐나갈 틈을 기막히게 알아채고야 맙니다. 탈출 시도를 방관했다간 일이 커집니다. 눈덩이 커지듯 여기저기 사고를 치고 다닐 겁니다. 이곳저곳 물고 때리고 할퀴어 생채기를 내고 다닐 게 틀림없습니다.

몸통 꼿꼿이 세우고 목청 높여 울어대기도 할 겁니다. 한적한 언덕 위에 올라서기라도 한 양 외로운 눈빛을 반짝이며 하늘 높이 고개 들어 알아듣기 어려운 짐승의 노래를 불러제낄 터입니다. 그럴수록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약한 부분을 놈은 잘 알고 있습니다. 처연한 독창에 박자라도 맞췄다간 이글거리는 놈의 눈빛과 마주할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미리미리 잘 길들여야 탈이 안 납니다. 길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쉬운 방편으로 놈을 꽁꽁 묶어두기도 합니다. 약발은 얼마 못 갑니다. 가둬두기만 했다가 더 큰 난리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묵은 분노 폭발하듯 짐승의 본능이 터져나온다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놈에게도 가끔 자유를 주는 게 좋습니다. 놈의 목에 목줄을 걸고 때로 산책이라도 시켜줘야 합니다. 넓은 운동장에 풀어놓고 반나절 햇살이라도 쬐게 해준다면 얼마간은 만족할 겁니다. 여기저기 킁킁거리고 비벼대고 뛰었다가 기었다가 생쇼를 하더라도 가만 놔두십시오. 야성은 사라지지 않고 잠재할 뿐입니다.

가능하다면 한달에 한번 보름달맞이 정도는 허락해주는 게 좋습니다. 이땐 너른 광야에서 마음껏 활개치게 해주십시오. 광란의 질주를 벌인다면 박수쳐주고, 상실의 고통으로 고개 숙이고 애를 끓이고 있다면 조용히 다가가 곁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놈은 위안을 얻을 것입니다. 보름달 아래 신나게 몸을 흔들어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함께 흔들어주는 게 좋겠죠?

당신의 가슴속 짐승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김진철 〈esc〉 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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