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쉼~ 누가 들을세라 고요히 읊조립니다. 쉼~
잠깐, 쉬는 듯도 한데, 한숨 같기도 하군요. 필요한 건 휴식입니다. 휴~. 진정한 쉼이란 어디서 무얼 한다는 것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없이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지경에 이르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만. 그렇다면 그것은 도 닦아 오를 수 있을 선(禪)의 높은 경지가 아닐는지요. 선, 고요하다는 뜻입니다. 허~ 쉬는 것도 쉽지 않네요.
휴일이라고 쉬는 게 아니죠. 퇴근 뒤 소주 한잔도 쉬는 게 아닐 때가 많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쉼의 법칙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요. 아이를 보면 쉴 틈 없이 놀이에 빠져든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놀고 놀고 또 놀아도 끝이 없지요. 로봇 놀이, 블록 맞추기, 동화책 읽기, 애니메이션 보기, 뛰어다니기, 색종이 오리기, 그림 그리기… 하루하루가 온전히 놀이터죠. 그런데도 많이 놀았으니 이제 쉬어야겠다는 법이 없습니다. 체력의 문제가 아니겠죠. 아마도 놀이를 즐기는 순수함에 피로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거겠죠. 나 돌아갈래~, 해도 소용없겠죠.
‘휴식 같은 친구’라는 주옥같은 옛노래가 떠오릅니다. 무려 20여년 전 가수 김민우가 소년 같은 미성으로 불렀었죠. 어떤 친구기에 휴식 같다고 하는가, 궁금하지요?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묻습니다. 남자들만의 우정을 말해달라고. 어두운 밤길을 달려 불 꺼진 창문을 두드렸던 이야기를 해줍니다. 두드리고는 방에 들어가 친구 옆에 눕습니다. 그냥 누워만 있습니다. 아무 말도 필요없었기 때문이죠. 왠지 징그러워지기도 하지만, 시작에 불과합니다. 한참 후에 일어나, 네 얼굴을 보면 편해져, 라고 취한 두 눈으로 웃으며 속삭입니다. 친구는 같이 웃어주죠. 역시 휴식은 닭살 같은 건가요? 이미 순수를 잃어버린 탓인가요? 휴식 같은 사람 못 될 바엔 맛보고 즐길 만한 휴게소 같은 사람이라도 돼야 할 텐데요….
김진철 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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