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플라밍고. 1946년 라스베이거스 최초의 고급 호텔로, 애초의 건물은 1993년 철거되었다.
김형렬의 트래블 기어
로스앤젤레스의 호텔사업가 토머스 헐은 사막의 한 도로에서 펑크 난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었다. 오가는 차량을 가만히 헤아려보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고는 이 사막의 땅 4만평을 한 평에 135원씩 주고 사들였다. 그리고 얼마 뒤 네온사인으로 장식된 풍차를 세운 ‘엘랜초’(El Rancho)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운타운’에서 남쪽으로 5㎞쯤 떨어진 황량한 땅에 등장한 최초의 모텔 카지노였다. 1941년 4월3일, ‘더 스트립’의 탄생이었다.
라스베이거스가 기록에 처음 나타난 것은 1829년이었다. 멕시코계 안토니오 아르미호는 60명의 무역상을 이끌고 로스앤젤레스로 향하고 있었다. 사막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수를 발견하고 스페인어로 ‘초원’(Vega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5년 뒤인 1844년 미국 장교 존 찰스 프리몬트는 캘리포니아와 이 일대를 탐사하여 온천수 온도가 섭씨 71~73도라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펴내, 서부개척시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국이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1848년 캘리포니아와 라스베이거스는 공식적으로 미국 땅이 되었다.
철로 매각과 파업 등으로 기울어가던 도시의 운명은 1928년 후버댐 건설로 되살아났다. 대공황으로 일자리를 찾아 댐 건설 현장에 몰려든 노동자들은 주말이면 라스베이거스 ‘프리몬트 스트리트’의 카지노와 나이트클럽에서 지친 삶을 위로받았다. 댐 건설 현장 바로 옆의 배후도시 볼더가 도박과 음주를 엄격히 금지한 반면, 라스베이거스는 이미 1931년 도박을 합법화한 뒤였다.
‘엘랜초’와 ‘라스트 프런티어’ 등 모텔 카지노들이 들어선 뒤 ‘더 스트립’은 2차대전을 거치며 미국 경제와 함께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결정적으로 불을 댕긴 이가 있었으니, 뉴욕 출신 마피아 ‘벤저민 시걸’이다. ‘벅시’로 알려진 갱스터였다. 엘랜초를 드나들며 카지노를 즐기던 그는 모텔 수준의 카우보이 카지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이애미의 고급 호텔들을 능가하는 초호화판 호텔 ‘플라밍고’를 세우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밀어붙였다. 세탁된 마피아의 돈으로 시작된 투자는 처음 100만달러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종국에는 650만달러까지 불어났다. 돈을 빌려준 마피아들은 노심초사하였고 벅시의 낭비벽은 끝간 데를 몰랐다.
사막 한가운데에 야자수 정원과 폭포가 쏟아지는 초호화 호텔 ‘플라밍고’ 개장날 벅시는 날씨 때문에 엘에이에 갇혀버렸다. 적자에 허덕이던 어느 날 베벌리힐스 정부(情婦)의 집에서 벅시는 30구경 카빈총 4발에 숨을 거뒀다. 이틀 뒤 장례식은 단 다섯 명만이 지켜봤다. ‘플라밍고’는 벅시 살해 뒤 20분 만에 마피아에게 접수돼 7년 동안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더 스트립’에서 최초로 잭팟을 터뜨린 호텔이 된 것이다. (다음 편으로 계속)
글·사진 김형렬 호텔자바 이사 www.hoteljav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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