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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리듬입니다. 인생은 저마다 고유한 주파수에 맞춰 파동합니다. 누군가는 느릿느릿 고요하게, 또다른 누군가는 바람을 가르는 빠른 템포로, 각각의 삶에 리듬을 맞추고 있겠죠. 나름의 주파수가 평온히 유지될 때 삶은, 해와 달이 뜨고 지고 꽃과 열매가 피고 지는 것처럼 때에 맞춰 평화로울 터입니다. 오르내림이 명확한 조울의 리듬도 예측 가능하다면 즐길 만하지 않을까요.
평화는 깨질 운명입니다. 깨지지 않는다면 평화라는 이름을 얻지도 못했겠죠. 그리하여 평화는 자주 깨질 위험에 놓이고 누군가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곤 합니다. 일상의 평화를 깨뜨리는 악의 무리, 어디든 꼭 있습니다. 뭘 안 해도 민폐를 끼치는데 뭔가 하려 들면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기도 하죠. 그래서 차라리 ‘간장게장’이라도 되라고 조용히 속삭이지만… 과한 분노와 번민은 패배에 이르는 지름길이지만….
삶의 리듬 역시 그래서 깨지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거듭되는 리듬의 평온함은 권태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겠죠.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에서 미묘하고 기이하게 겹치는 시공간의 뜻은 삶의 권태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일까요, 싸구려 복제품 같은 인생에 대한 야유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뜻 없는 데서 뜻을 찾으려는 희망의 시도일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알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리듬의 파괴에서 삶의 색다른 변주가 아름답게 펼쳐지리라는 것입니다.
꺾이고 단절되고 떨리는 리듬의, 전망 불가능한 변주는 삶 그 자체인 것만 같습니다. 규정할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해석할 수 없는, 붙잡을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그래서 취할 수밖에 없는, 견뎌낼 수밖에 없는, 빠져들 수밖에 없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중독될 수밖에 없는…. 이게 재즈의 참맛인가요? 그러므로 악의 무리는 삶의 축복입니다. 권태 대신 분노와 번민으로 삶을 축복하므로. 그것도 리드미컬하게!
김진철 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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