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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일은 잊어요, 앞을 보고 걸어가요

등록 2011-10-20 11:28수정 2011-11-09 17:06

그래픽 이정희 기자 bboo@hani.co.kr
그래픽 이정희 기자 bboo@hani.co.kr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페이스타임 가상 인터뷰] i극락에 있는 스티브 잡스를 만나다
“근사함·훌륭한 매너·고상한 인품…난 그런 거 흥미 없어~하하”
그래픽 이정희 기자 bboo@hani.co.kr
그래픽 이정희 기자 bboo@hani.co.kr

스티브 잡스. 그를 꼭 만나보겠다고 무작정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태평양을 건넌 사람도 있었다. 이젠 그러려면 태평양이 아니라 황천길 지나 요단강이라도 건너가야 할 판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그가 남기고 간 페이스타임(애플제품의 영상통화 기능)이 있지 않은가. 질문은 아이폰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누리꾼들한테 모았다. 독하고 직설적이고, 따뜻하고 현명한 질문들을 골라 가 대표로 페이스타임을 날린다. 자~ 가상 인터뷰, 시~작!

당신이 떠난 지 벌써 보름이네요. 역시나 한국에서는 엄청난 일이라도 난 것처럼 와글와글하다가 당신을 벌써 잊은 듯해요. 그곳이 어딘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안부는 묻고 시작하죠. 어때요? 잘 지내고 있나요?

“여긴 극락이에요. 뭐 천국이라고 해도, 아이헤븐(iHeaven)인 것은 같군요. 아직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는데, 저마다 가는 곳이 다른가봐요.”

스티브 잡스가 페이스타임으로 주변 곳곳을 비춰준다. 줄지어 선 이들은 불안과 설렘이 뒤섞인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잡스는 최종 목적지도 모르면서 별 걱정이 없어 보였다. 인도 수행자를 쫓아다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이곳을 벗어나게만 해주면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기도했다던데, 그 때문일까?

“몸의 고통은 사라졌지만, 아직 얼떨떨하긴 해요.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거든요. 지구에서 ‘우주에 한 방 먹일 것’(1980년대 애플 개발팀 독려를 위해 즐겨 쓰던 말)을 제대로 만들려면 좀 더 일을 하고 왔어야 했는데…. 한편으론 괴롭기도 하고요. 여기저기서 절 원망하는 사람들이 내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더라고요. 폭스콘(주문자 상표 부착 방식으로 아이폰을 생산하는 중국계 기업.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2010년 노동자 14명이 투신자살했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중국어로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죠. 그저 난 ‘아임 소리’라고 할밖에요.”

솔직히 별로 난처한 표정은 아니다.

잡스, 당신한테 사과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죠? 삼성전자 같은 업체들을 카피캣(모방 제품 만드는 기업)이라 비웃었지만, ‘있던 것 잘 포장해 만들었을 뿐인 당신과 애플이 진짜 카피캣 아니냐’고 여겼던 사람들요.

“한마디만 할게요. ‘이것은 원맨쇼가 아니다.’”(1998년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 중)

잠깐 화가 난 듯 잡스의 얼굴이 구겨지더니 다시 숭고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원맨은 저이기도 하지만, 애플의 제품 하나하나이기도 해요.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튠스…. 저는 떠나왔지만, 애플의 직원들과 더 나아가 애플의 제품을 사랑하는 소비자들은 어떤 사람들보다 중요하고 위대하죠. 그리고 애플에서 만들어 온, 그리고 만들어 갈 제품들이 모여 ‘하나의 우주’를 형성할 거예요. 그게 바로, 우리가 카피캣이 아닌, 그리고 원맨쇼가 아닌 이유죠.”

우주에 한 방 먹이려고 했는데…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이야
사과를 한다는 사람들이 몇가지 질문이 더 있다는데요… 그쪽엔 맛집 괜찮은 데 없냐는…

잡스는 그런 것 따위에 관심 없다며 두리번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견과류와 물만 먹었다고 한다. 먹을 것 묻는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못 말리는 워커홀릭의 기가 막힌 대답.

“채식 레스토랑 괜찮은 곳이 있다고 하던데…. 극락 맛집 애플리케이션도 만들어야겠군. 개발자들이 이쪽에도 좀 있으려나. 에이(A)급 인재가 필요한데 말이야. 에이급!”

아, 그 이야기도 좀 해보죠. 에이급 인재만을 숭앙했던 당신. 당신의 그 독단적이면서도 차가운 품성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가요? 그 품성을 혁신할 생각은?

“‘우리는 우리의 비전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1984년 매킨토시 발표에서)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없어요. 우리의 비전, 제품, 소비자가 최우선이죠. 나의 인성과 품성에 대한 평가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나는 애플 초창기에 직원을 뽑을 때 두가지를 물었어요. ‘환각제는 몇 번 했냐?’, ‘언제 첫 성관계가 있었냐?’고요.”

이 사람 변탠가? 환각제는 그렇다 치고, 성관계는 그야말로 프라이버시 중 최고의 프라이버시 아닌가. 더구나 여성한테 ‘첫 경험’ 운운한 사장이 있다면 <한겨레> 사회면 머리기사감이다.

“내가 호감이나 사려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건 묻지 않았겠죠. 순발력 뛰어나고 겁 없는 인재를 찾으려고 물은 거예요. 근사하고 매너 훌륭하고, 인품 고상한 사람 되려고 했다면 노력해서 그렇게 됐겠죠. 하하하. 하지만 난 그런 거 흥미 없어~. 나의 비전에 모든 것을 걸고 매진했을 때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잡스의 솔메이트, 혁신과 창의의 뜻을 함께하던 조너선 아이브가 잡스한테 상처받았다는 건 뭔가. 애플의 수석디자이너이자 부사장인 조너선 아이브는 잡스의 공식 전기에 아픈 속내를 털어놨다. “잡스가 나의 창의성을 자기 것처럼 얘기할 때 깊은 상처를 받았어요. 잡스는 강단 위에서 모든 게 자신의 창의력에서 나온 것처럼 연설했어요. 나는 관객석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죠. 그 모든 생각과 아이디어가 적힌 내 수첩을 손에 쥔 채로 말입니다. 때로는 몸에서 가시가 돋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어요”라고.

화가 나서 울 때도 있었지만 당신들 덕분에 두려움 이겨냈죠
아이브 이야기를 꺼내자 잡스는 갑자기 심각해졌다.

“아이브가 원래 욕실 디자이너였다는 건 알죠? 물론 그가 상처받았다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디자인만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나요? ‘사람들은 디자인을 겉치장으로만 생각하죠. 우리는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은 ‘어떻게 기능하는가?’의 문제죠.’(2003년 <뉴욕 타임스> 인터뷰)

거참, 이 사람한텐 죄책감이란 없는가 보다. 천재란 이런 건가. 아이브 역시 가시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그를 존경한다고 털어놓았으니. “잡스가 끊임없이 일을 추진해 주고 여러 압력을 막아 줬기 때문에 애플 제품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아이디어들은 다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을걸요”라고 말이다.

맥월드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스티브 잡스.
맥월드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스티브 잡스.

역시나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군요. 이룬 것은 많지만 떠나기 전엔 고독하지 않았나요. 그런데도 병마와 싸워가며 일을 손에서 놓지 않은 건 참 대단하달 수밖에 없는데, 역시 비전이 병마의 고통을 견디고 일하게 한 건가요?

“내가 일을 계속했다고요? 누가 그런 소리를… 마케팅 쪽에 입 맞춰 놓는다는 걸 깜빡했네.”

아니, 이건 뭔가. 아이폰5는 물론이고 앞으로 4~5년치 제품은 기대할 만하다는 말은 호사가들의 공상이었단 말인가.

“어떻게 일을 계속할 수 있었겠어요. 얼마나 아팠는데. 하지만 ‘옛날 일은 잊어버려야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을 보고 걸어가려 합니다.’(2007년 D5포럼에서) 한 연설 췌장암이라는 병, 그리고 내가 곧 죽을 거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어요. 이제 그것 역시 과거가 됐죠.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나의 마지막 희미한 정신까지도 미래를 향해 있었다는 건요.”

정말 믿거나 말거나, 그랬을 것만 같다만, 참 이 사람 인생 과연 재밌었을까. 도전과 극복밖에 없었던 건가, 인생이 무슨 컴퓨터 게임이냐고요.

“멋진 일은 무모한 도전 없인 해낼 수 없어요. ‘우리는 쓰레기 같은 제품을 절대로 팔 수 없다’(2007년 맥월드에서)는 것만 생각했어요. 그래도 불안하고 걱정도 많았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땐 화가 나서 울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했다면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당신들 때문이었어요.”

이 대목에서 얼핏 눈물이 비치는데, 이 남자 고개를 돌려버린다. 어흑, 왜 나까지 묵직해지는 거냐.

“아직 그 큰 무대의 밑그림밖에 못 그리고 당신들 곁을 떠나와버렸네요. 이제 쇼는 시작됐어요. 무대를 채울 사람은 결국, 당신들이에요. 잊지 마세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몽상가라 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에요.’(2000년 애플의 최고경영자로 돌아왔을 때 발표 마지막 흘러나온 비틀스의 ‘이매진’)

56년 만에 푹 쉴 시간을 가진 잡스를 너무 오래 괴롭혔다. 역시 그는 너무 진지하다. 그런데도 멋지다. 아마도 그가 살아온 드라마 같은 삶 때문이겠지. 자, 이젠 미련을 털고 보내드린다. 부디, 평화 속에서 편히 쉬길. RIP(Rest In Peace), 스티브 잡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참고서적 <아이 리더십>(제이 엘리엇·윌리엄 사이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제프리 영·윌리엄 사이먼 지음,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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