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이정희 기자 bboo@hani.co.kr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페이스타임 가상 인터뷰] i극락에 있는 스티브 잡스를 만나다
“근사함·훌륭한 매너·고상한 인품…난 그런 거 흥미 없어~하하”
[페이스타임 가상 인터뷰] i극락에 있는 스티브 잡스를 만나다
“근사함·훌륭한 매너·고상한 인품…난 그런 거 흥미 없어~하하”
그래픽 이정희 기자 bboo@hani.co.kr
스티브 잡스. 그를 꼭 만나보겠다고 무작정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태평양을 건넌 사람도 있었다. 이젠 그러려면 태평양이 아니라 황천길 지나 요단강이라도 건너가야 할 판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그가 남기고 간 페이스타임(애플제품의 영상통화 기능)이 있지 않은가. 질문은 아이폰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누리꾼들한테 모았다. 독하고 직설적이고, 따뜻하고 현명한 질문들을 골라
→ 사과를 한다는 사람들이 몇가지 질문이 더 있다는데요… 그쪽엔 맛집 괜찮은 데 없냐는… 잡스는 그런 것 따위에 관심 없다며 두리번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견과류와 물만 먹었다고 한다. 먹을 것 묻는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못 말리는 워커홀릭의 기가 막힌 대답. “채식 레스토랑 괜찮은 곳이 있다고 하던데…. 극락 맛집 애플리케이션도 만들어야겠군. 개발자들이 이쪽에도 좀 있으려나. 에이(A)급 인재가 필요한데 말이야. 에이급!” → 아, 그 이야기도 좀 해보죠. 에이급 인재만을 숭앙했던 당신. 당신의 그 독단적이면서도 차가운 품성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건가요? 그 품성을 혁신할 생각은? “‘우리는 우리의 비전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1984년 매킨토시 발표에서)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없어요. 우리의 비전, 제품, 소비자가 최우선이죠. 나의 인성과 품성에 대한 평가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나는 애플 초창기에 직원을 뽑을 때 두가지를 물었어요. ‘환각제는 몇 번 했냐?’, ‘언제 첫 성관계가 있었냐?’고요.” 이 사람 변탠가? 환각제는 그렇다 치고, 성관계는 그야말로 프라이버시 중 최고의 프라이버시 아닌가. 더구나 여성한테 ‘첫 경험’ 운운한 사장이 있다면 <한겨레> 사회면 머리기사감이다. “내가 호감이나 사려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건 묻지 않았겠죠. 순발력 뛰어나고 겁 없는 인재를 찾으려고 물은 거예요. 근사하고 매너 훌륭하고, 인품 고상한 사람 되려고 했다면 노력해서 그렇게 됐겠죠. 하하하. 하지만 난 그런 거 흥미 없어~. 나의 비전에 모든 것을 걸고 매진했을 때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잡스의 솔메이트, 혁신과 창의의 뜻을 함께하던 조너선 아이브가 잡스한테 상처받았다는 건 뭔가. 애플의 수석디자이너이자 부사장인 조너선 아이브는 잡스의 공식 전기에 아픈 속내를 털어놨다. “잡스가 나의 창의성을 자기 것처럼 얘기할 때 깊은 상처를 받았어요. 잡스는 강단 위에서 모든 게 자신의 창의력에서 나온 것처럼 연설했어요. 나는 관객석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죠. 그 모든 생각과 아이디어가 적힌 내 수첩을 손에 쥔 채로 말입니다. 때로는 몸에서 가시가 돋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어요”라고. 화가 나서 울 때도 있었지만 당신들 덕분에 두려움 이겨냈죠
아이브 이야기를 꺼내자 잡스는 갑자기 심각해졌다. “아이브가 원래 욕실 디자이너였다는 건 알죠? 물론 그가 상처받았다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디자인만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나요? ‘사람들은 디자인을 겉치장으로만 생각하죠. 우리는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은 ‘어떻게 기능하는가?’의 문제죠.’”(2003년 <뉴욕 타임스> 인터뷰) 거참, 이 사람한텐 죄책감이란 없는가 보다. 천재란 이런 건가. 아이브 역시 가시의 아픔을 느끼면서도 그를 존경한다고 털어놓았으니. “잡스가 끊임없이 일을 추진해 주고 여러 압력을 막아 줬기 때문에 애플 제품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아이디어들은 다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을걸요”라고 말이다.
맥월드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스티브 잡스.
→ 역시나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군요. 이룬 것은 많지만 떠나기 전엔 고독하지 않았나요. 그런데도 병마와 싸워가며 일을 손에서 놓지 않은 건 참 대단하달 수밖에 없는데, 역시 비전이 병마의 고통을 견디고 일하게 한 건가요? “내가 일을 계속했다고요? 누가 그런 소리를… 마케팅 쪽에 입 맞춰 놓는다는 걸 깜빡했네.” 아니, 이건 뭔가. 아이폰5는 물론이고 앞으로 4~5년치 제품은 기대할 만하다는 말은 호사가들의 공상이었단 말인가. “어떻게 일을 계속할 수 있었겠어요. 얼마나 아팠는데. 하지만 ‘옛날 일은 잊어버려야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바로 이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을 보고 걸어가려 합니다.’(2007년 D5포럼에서) 한 연설 췌장암이라는 병, 그리고 내가 곧 죽을 거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어요. 이제 그것 역시 과거가 됐죠.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나의 마지막 희미한 정신까지도 미래를 향해 있었다는 건요.” 정말 믿거나 말거나, 그랬을 것만 같다만, 참 이 사람 인생 과연 재밌었을까. 도전과 극복밖에 없었던 건가, 인생이 무슨 컴퓨터 게임이냐고요. “멋진 일은 무모한 도전 없인 해낼 수 없어요. ‘우리는 쓰레기 같은 제품을 절대로 팔 수 없다’(2007년 맥월드에서)는 것만 생각했어요. 그래도 불안하고 걱정도 많았죠.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땐 화가 나서 울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포기했다면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당신들 때문이었어요.” 이 대목에서 얼핏 눈물이 비치는데, 이 남자 고개를 돌려버린다. 어흑, 왜 나까지 묵직해지는 거냐. “아직 그 큰 무대의 밑그림밖에 못 그리고 당신들 곁을 떠나와버렸네요. 이제 쇼는 시작됐어요. 무대를 채울 사람은 결국, 당신들이에요. 잊지 마세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몽상가라 하지만, 나만 그런 건 아니에요.’”(2000년 애플의 최고경영자로 돌아왔을 때 발표 마지막 흘러나온 비틀스의 ‘이매진’) 56년 만에 푹 쉴 시간을 가진 잡스를 너무 오래 괴롭혔다. 역시 그는 너무 진지하다. 그런데도 멋지다. 아마도 그가 살아온 드라마 같은 삶 때문이겠지. 자, 이젠 미련을 털고 보내드린다. 부디, 평화 속에서 편히 쉬길. RIP(Rest In Peace), 스티브 잡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참고서적 <아이 리더십>(제이 엘리엇·윌리엄 사이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