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강남역 8번 출구로 나왔습니다. 거대한 유리건물이 서 있네요. 촌놈처럼 두리번거립니다. 유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로 들어섭니다. 삼성전자 사옥입니다. 기자실에 도착했습니다. 어색하네요. 새 만남입니다. 만나려면 헤어져야 하죠.
꽉 찬 1년간 를 만들었습니다. 누구보다 기자들의 고생이 많았어요. 몸도 마음도 그랬을 겁니다. 한 고비가 지나면 또 한 고비가 찾아오곤 했죠. 맥주에 소주를 섞고 담배를 나눠 피우며 때로 눈물을 참았고 자주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신문사 앞 작은 골방 같은 술집에서 찌든 기름 냄새를 맡으면서도 팀원들과 나누는 술 한잔이 정겨웠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길 바랐다면 그 누군가는 독자들뿐이었습니다. 기발한 재미와 꽉 찬 정보에 진심까지 보태 담으려 애썼어요. 의기소침할 만한 어려운 일들에 맞닥뜨리면서도 잃지 않았던 건, 멋진 ‘간지’를 만들어보자는 의욕뿐이었습니다. 솔직히 미진한 부분이 많았을 테죠. 여러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던 탓도 있으나 무엇보다 무미건조한 성정을 지닌 팀장 탓일 겁니다. 거꾸로 덕분에 팀장이 조금은 바뀐 것 같기도 해요.
esc키를 누르기 직전 담배 한 개비 물고 공덕동 고갯길을 바라보며 고심하곤 했더랍니다. 지금은 어색하게도 빌딩숲의 서초동 거리를 내다보고 있어요. 기자·디자이너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렇게 만들어보자, 저렇게 꾸며보자, 많은 이야기를 나눴건만 결국 마무리는 제 몫이 아니네요. 헤어지는 발걸음이 무거운 이윱니다. 그러나 미련은 남기지 말 일이죠.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삶이니까요. 헤어져야 비로소 만나는 법이니까요.
232호를 기획하며 향토어 캠페인이라도 벌여보려 했습니다. 다양성이란, 문화의 힘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요. 사라져 가는 우리의 지역말들을 되살리고 보존해야 사람 사는 세상이 풍요롭지 않을까요. 그래서 는 또다른 향토어입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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