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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보다 멋진 가짜의 유혹

등록 2011-12-01 14:42수정 2011-12-01 14:43

중저가의 캐주얼 의류 가운데서도 인조모피 의류는 대세를 이루고 있다.(코데즈컴바인)
중저가의 캐주얼 의류 가운데서도 인조모피 의류는 대세를 이루고 있다.(코데즈컴바인)
형형색색 복고풍 인조모피 바람, 멋과 윤리 일석이조
찬바람 부는 때 백화점 매장은 동물원을 방불케 한다. 너구리, 여우, 밍크 등의 털 등으로 뒤덮인 쇼윈도. 바라보기만 해도 예쁘다. 반지르르한 윤기가 흐르는 모피코트를 매만지고 있으니 “모피 중에 최고는 역시 밍크죠. 얼마나 보드라운데요. 한번 걸쳐보세요” 하며 유혹의 말을 건넨다. 점원의 권유, 뿌리치기 어렵다. 그러나 걸쳐보는 것뿐이다. 입을 수 없고, 입지 않는다. 왜? 값이 너무 비싸지 않은가! 그리고 모피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탓에 고이 마음 접는다. 회사원 차영미(29)씨는 앞으로 모피를 입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동물 애호 운동가까지는 못 돼도 일상생활에서 동물을 해치는 행동은 피하려고 해요. 거창한 이유 따위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실천하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는 이유라면 이유랄까요.” 그렇다고 그가 패션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선택한 겨울맞이 패션 아이템. 인조모피다.

누가 스텔라 매카트니를 촌스럽다 하랴

푸시버튼의 박승건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인조모피 의류들.
푸시버튼의 박승건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인조모피 의류들.
윤리적인 소비자 되기는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윤리적인 소비에 합당한 다양한 제품을 찾기 어렵다는 데 있다. 친환경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서 ‘멋’을 포기해야 한다? 많은 패셔니스타,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일반 소비자에게 와닿지 않는 소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선택의 갈림길 한복판에서 방황하던 사람들 많았다. 하지만 이제 그 고민 내려놓자. 인조모피로도 멋내기 좋은 시절이다. 다양한 질감과 색감의 인조모피 의류가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

국외 유명 패션디자이너들의 ‘인조모피’ 사랑은 이제 점차 보편화하고 있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 동물 애호가로 적극적 친환경 패션에 앞장서고 있는 스텔라 매카트니. 누가 과연 이 디자이너들의 옷을 ‘싸구려 같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스텔라 매카트니가 올해 내놓은 인조모피 핸드백은 마치 늑대털 같기도 하다. 여기서 ‘같기도 하다’는 게 중요해지고 있다. 꼭 진짜처럼 보일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인조모피를 둘러싸고 외국에서는 웃지 못할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 진짜 모피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져가자, 진짜 모피를 가짜라고 속여 파는 일까지 있었다는 사실. 이게 벌써 5년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래서 ‘너무 진짜 같은 인조모피도 입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웨스트할리우드의 시의회는 올해 5월 모피 의류의 판매를 금지하는 시 조례를 통과시키기도 했다.

씨(SI)에서 내놓은 인조무스탕.
씨(SI)에서 내놓은 인조무스탕.
국내에서도 진짜 모피를 쓰지 않겠다며 ‘도전’을 하는 디자이너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모피 안 쓰는 것을 도전이라고 여길 필요까지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모피의 아우라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옷감이니, 아름답고 창조적인 옷을 만드는 것이 사명인 디자이너에게 모피를 포기한다는 것은 도전의 일종이다. ‘자인 바이 자인 송’의 디자이너인 송자인 실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진짜 모피와 가죽을 쓰지 않은 ‘에코 디자이너’ 중 한명이다.

“동물 보호에 대해서 지식이 많다거나 그렇지 않아요. 반려동물로 강아지를 7년 동안 키우면서 진짜 모피를 볼 때 ‘이게 살아있는 동물이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 정도였죠.”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인기 높은 ‘푸시버튼’의 디자이너 박승건 실장의 말이다. 그는 올해 가을·겨울 컬렉션을 선보이는 패션쇼에서 ‘퍼 이즈 오버’(Fur is over)라는 문구가 새겨진 재킷을 모델들과 함께 입고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만큼 언론의 관심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다. “그 이야기가 많이 민감하기는 해요. 운동가는 아니니까. 그렇게 패션쇼에서 드러낸 것은 ‘모피를 쓰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지요.”


한국 중견 디자이너들도 에코디자인 합류

색감이 발랄하면서도 강렬한 인조모피 의류.(샴페인토킹)
색감이 발랄하면서도 강렬한 인조모피 의류.(샴페인토킹)
그에게 물었다. 진짜 모피가 아쉽지 않으냐고. “진짜 모피는 분명히 예뻐요. 하지만 인조모피는 패턴(무늬)과 컬러(색깔)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으니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라고 답했다. 그는 올해 도트(점박이) 무늬와 강렬한 빨간색 인조모피를 소재로 한 겨울 외투를 선보였다. 인조모피 원자재를 만드는 업체와의 협업을 통해 가능했던 일이다. “인조모피의 질도 많이 좋아져서 실용적이면서도 가볍고 털 빠짐이 적어요.”

올해 인조모피 의류의 트렌드 열쇳말은 무엇일까? 우선 ‘비비드 컬러’. 빨갛고, 노란 원색 계열의 ‘비비드’한 컬러의 인조모피는 젊은 여성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복고 느낌을 주는 빈티지 스타일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패션 아이템이다. 이 옷들, 절대 ‘진짜입네’ 하고 딴청 부리지 않는다. 오히려 대놓고 ‘가짜’의 멋스러움을 주장한다. 키치(가짜)룩의 궁극을 인조모피 의류들이 뽐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열쇳말은 ‘미니멀리즘’. 치렁치렁, 발끝까지 오는 모피의류는 웬만한 이불보다 무겁다. 인조모피는 좀더 가볍다지만, ‘스타일’이 살지 않는다. 허리선까지만 오는 인조모피 재킷은 발랄한 멋을 더한다. 재킷도 버겁다면, 케이프(망토) 스타일의 인조모피 의류도 고려해볼 만하다.

5, 6. 푸시버튼의 박승건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인조모피 의류들.  7, 8. 망고에서 내놓은 인조모피 의류들. 9. 스텔라 매카트니의 폴리에스테르 재질 핸드백
5, 6. 푸시버튼의 박승건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인조모피 의류들. 7, 8. 망고에서 내놓은 인조모피 의류들. 9. 스텔라 매카트니의 폴리에스테르 재질 핸드백
두근두근 연말 파티의 계절, 파티에 입고 갈 옷이 고민인 사람에게 형형색색 인조모피 재킷만큼 손쉬운 해결책이 없다. 외투가 화려한 만큼, 안에 받쳐 입는 옷은 오히려 단순하고 캐주얼한 스타일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검정 원피스에 빨갛거나 파란 인조모피 재킷을 걸쳐보자. 특히 호피무늬 인조모피 외투라면 제발 심플한 스타일의 옷과 함께 입자. 검정 터틀넥에 액세서리를 층층이 겹쳐 연출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인조모피? 착해서 예쁜 게 아니다.

예뻐서 착하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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