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공주식당’의 얼큰한 붕장어탕.(왼쪽) ‘조일식당’의 삼치회.(오른쪽)
[매거진 esc] 농심식문화탐사 프로그램과 함께 찾아간 정읍, 영암, 여수 일대 별미
앉자마자 카메라를 꺼내기 바쁘다. “펑펑” 플래시가 터진다. 카메라 세례를 받은 주인공은 쑥 향 가득한 해장국이다.
지난 15일 전라북도 정읍시 수성동 ‘충남집’은 서울에서 온 미식가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뭐 할라고 이리 먼 곳까지 왔어.” 주인 서금옥(72)씨가 반갑게 인사한다. 서씨를 찾은 이들은 농심식문화탐사에 참여한 농심 직원들이다. 농심식문화탐사는 농심식문화연구팀이 운영하는 사내 프로그램이다. 지난 3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년에 3~5번 팔도 맛 여행을 했다. 맛집 158곳을 방문해 260여가지 음식을 시식했다. 농심식문화연구팀 이정희 팀장은 “지역의 독특한 식재료나 음식”을 맛본 경험은 “실제 제품 개발”로 이어진다고 전한다. 15~16일 진행된 12번째 탐사는 정읍, 영암, 여수 일대 남도 맛을 찾아 나선 여행이었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남도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자는 취지다.
“어란용 숭어는
눈 옆 노란 게 좋아” “구수한데, 쑥 향이 장난이 아니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진다. 41년 역사를 가진 ‘충남집’은 최근 <한국방송>의 ‘1박2일’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서씨는 5~6월에 딴 쑥을 냉동시켰다가 쌀뜨물에 된장을 풀어 해장국을 만든다. 할머니는 곱다. “너무 젊어 보이세요.” 직원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서씨는 한마디 한다. “쑥 삶을 때 김 나오지, 그것 때문이야. 매일 쐬니깐.” 정겹다. 14명의 탐사대원들은 어란 장인이 있는 영암으로 발길을 옮긴다. 김광자(87)씨는 영암의 맛을 대표하는 어란 명인이다. 그는 1999년 해양수산부(현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어란 제조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어란은 숭어나 민어 알을 염장해서 반건조하는 식품이다. 조선시대에 임금 상에 올라간 음식이다. 술꾼들이 한입 베어 물면 바로 양조장으로 뛰어갈 정도로 술안주로 최고다. 명인의 집은 소박하다. “여~ 춥지.” 주름진 명인의 손길이 따스하다. “숭어는 눈알 옆이 노란 것이 좋아! 배가 띵띵하고 (알을) 뿌리기 직전 것이 좋제.” 초보자는 살찐 수컷을 암컷으로 오해한다. 김씨는 첫눈에 알의 개수를 가늠해낸다. 2㎏짜리 숭어에는 알이 약 3500개(약 180g 정도) 있다고 한다. “어란을 뒤집고 엎고 하도 하다 보니” 그의 지문은 세월 따라 희미해졌다. 김씨는 일제강점기 때 고등학교를 다닌 “배운 여자”였다. “스무살에 시집오니깐 동네 사람들이 묵은 간장으로 그 짠 거(어란)를 담가 먹는 거야.” 명인은 시어머니께 기본기를 배우고 자신만의 비법을 담아 덜 짜고 쫄깃한 ‘김광자표 어란’을 만들었다. 비법은 간수를 뺀 신안 천일염에 있다. 2차 염장할 때 그만의 양념 등을 넣어 24시간 절인다. 절인 어란은 해 뜰 무렵 30분, 해 질 무렵 30분만 햇볕을 쐰다. 자외선 차단 크림처럼 참기름을 뭉텅이로 바르고 뒤집기를 여러 번 한다. 바람을 맞은 어란은 서서히 딱딱해진다. 3개월이나 이어진다. 3년 전에는 국내 유명 캔참치 제조회사에서 참치 알로 어란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도 들어왔다. “크기는 괜찮았어.” 참치 알은 엇비슷하게 모양새는 갖췄지만 칼을 대자 부서졌다. 어란은 역시 숭어 알이다. 김광자 명인의 어란은 200g을 약 15만원에 판다. 백화점이나 다른 유통업체에서는 조금 더 비싸다. 농심식문화연구팀의 의뢰를 받아 이번 탐사의 구체적인 일정을 짠 쿠켄네트 이윤화 대표는 “숭어 알의 껍질이 하도 질겨 오늘날의 콘돔처럼 사용했다”는 유럽 고문서에 나온 야사도 전한다. 바다 맛의 천국, 여수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저녁 8시다. 나주의 곰탕집 ‘하얀집’과 영암의 갈낙탕 전문점 ‘학산정’까지 합치면 이미 세끼는 채웠지만 먹거리 탐사는 계속된다. 여수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진 문수동 ‘조일식당’에 도착하자 대원들은 식탁에 한 상 떡하니 펼쳐진 삼치 선어를 보고 아이돌 가수를 만난 것처럼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선어는 잡은 생선의 피를 뽑고 일정 시간 숙성시킨 생선이다. 구이로 주로 먹는 삼치지만 이곳 여수에서 삼치회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팔뚝만한 삼치를 인근 바다에서 잡아 회로 낸다. 16일 이른 아침, 여수는 뚝딱거리는 소리로 요란하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둔 여수다. 5월이면 세계인의 눈동자가 이곳에 쏠린다. 먹거리는 여수를 보석처럼 빛내기에 충분하다. 첫 탐험지는 국동에 있는 ‘자매식당’. “제 이름 재미있죠.” 농을 던지는 ‘자매식당’ 주인 김정일(61)씨는 통장어탕을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통장어탕은 붕장어(아나고)를 된장 푼 물에 통째로 넣어 24시간 끓여낸 탕이다. 오랜 시간 끓인 탓에 개흙 냄새나 비린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된장에 폭 잠긴 통장어탕은 여수 부속 섬에서 주로 먹는 방식이다. 성인 여성의 팔뚝만한 장어 덩어리는 ‘눈은 번쩍, 귀는 쫑긋’ 할 만큼 고소함이 하늘을 찌른다. 이정희 팀장은 “교동시장 앞에 있는 고추장 베이스의 장어탕과 비교해볼 거니깐 잘 기억해 두라”고 말한다. 여수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들러봤을 ‘7공주식당’은 얼큰하고 빨간 국물에 큼직한 붕장어가 흐물흐물 나온다. 고소하기는 마찬가지다. “딸이 일곱이라” 지은 이름이라고 자랑하는 고정자(66)씨는 나물과 김치를 싸준다. 고객상담실 박성진 팀장과 상품개발팀의 이광락 부장은 “둘 다 특색 있고 좋은데, 굳이 따진다면 된장 베이스 장어가 좋네”라고 의견을 교환한다. 박 팀장은 탐사에 벌써 7번 참여한 미식가다.
여수 별미 붕장어탕
고소함이 끝내주네 들머리에서 말미까지 걸어야 고작 10분 거리인 교동시장은 맛의 찬가를 부를 만큼 싱싱한 해산물이 산더미다. 쪽빛 바다가 훅하고 시장 가운데로 날아왔다. 새조개, 굴, 가오리, 붕장어, 정어리, 상어, 쥐치, 파래, 감태 등 바다 동식물의 백과사전이다. 아귀를 손질하는 아낙네를 한참 보고 있노라면 신기한 장면도 목격한다. 가른 아귀의 배에서 마치 고래 뱃속에 들어간 피노키오처럼 멀쩡한 작은 물고기들이 나온다. 교동시장은 1965년 문을 열었다. 매일 새벽에 열어 오후 1시면 문을 닫는다. 한나절 쉬었다가 어스름 땅거미가 지면 포장마차촌으로 변신한다. 돌산갓김치를 마지막으로 여수에서 맛 여행은 끝이 났다. 해가 꺾이기 시작하자 이정희 팀장은 서두른다. “엿 체험할 보성 강골마을, 광양 청매실농원 가야 합니다. 서두릅시다.” 정읍·영암·여수=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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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시장의 신선한 해산물이 풍성하다.
눈 옆 노란 게 좋아” “구수한데, 쑥 향이 장난이 아니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진다. 41년 역사를 가진 ‘충남집’은 최근 <한국방송>의 ‘1박2일’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서씨는 5~6월에 딴 쑥을 냉동시켰다가 쌀뜨물에 된장을 풀어 해장국을 만든다. 할머니는 곱다. “너무 젊어 보이세요.” 직원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서씨는 한마디 한다. “쑥 삶을 때 김 나오지, 그것 때문이야. 매일 쐬니깐.” 정겹다. 14명의 탐사대원들은 어란 장인이 있는 영암으로 발길을 옮긴다. 김광자(87)씨는 영암의 맛을 대표하는 어란 명인이다. 그는 1999년 해양수산부(현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어란 제조 명인으로 지정받았다. 어란은 숭어나 민어 알을 염장해서 반건조하는 식품이다. 조선시대에 임금 상에 올라간 음식이다. 술꾼들이 한입 베어 물면 바로 양조장으로 뛰어갈 정도로 술안주로 최고다. 명인의 집은 소박하다. “여~ 춥지.” 주름진 명인의 손길이 따스하다. “숭어는 눈알 옆이 노란 것이 좋아! 배가 띵띵하고 (알을) 뿌리기 직전 것이 좋제.” 초보자는 살찐 수컷을 암컷으로 오해한다. 김씨는 첫눈에 알의 개수를 가늠해낸다. 2㎏짜리 숭어에는 알이 약 3500개(약 180g 정도) 있다고 한다. “어란을 뒤집고 엎고 하도 하다 보니” 그의 지문은 세월 따라 희미해졌다. 김씨는 일제강점기 때 고등학교를 다닌 “배운 여자”였다. “스무살에 시집오니깐 동네 사람들이 묵은 간장으로 그 짠 거(어란)를 담가 먹는 거야.” 명인은 시어머니께 기본기를 배우고 자신만의 비법을 담아 덜 짜고 쫄깃한 ‘김광자표 어란’을 만들었다. 비법은 간수를 뺀 신안 천일염에 있다. 2차 염장할 때 그만의 양념 등을 넣어 24시간 절인다. 절인 어란은 해 뜰 무렵 30분, 해 질 무렵 30분만 햇볕을 쐰다. 자외선 차단 크림처럼 참기름을 뭉텅이로 바르고 뒤집기를 여러 번 한다. 바람을 맞은 어란은 서서히 딱딱해진다. 3개월이나 이어진다. 3년 전에는 국내 유명 캔참치 제조회사에서 참치 알로 어란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도 들어왔다. “크기는 괜찮았어.” 참치 알은 엇비슷하게 모양새는 갖췄지만 칼을 대자 부서졌다. 어란은 역시 숭어 알이다. 김광자 명인의 어란은 200g을 약 15만원에 판다. 백화점이나 다른 유통업체에서는 조금 더 비싸다. 농심식문화연구팀의 의뢰를 받아 이번 탐사의 구체적인 일정을 짠 쿠켄네트 이윤화 대표는 “숭어 알의 껍질이 하도 질겨 오늘날의 콘돔처럼 사용했다”는 유럽 고문서에 나온 야사도 전한다. 바다 맛의 천국, 여수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저녁 8시다. 나주의 곰탕집 ‘하얀집’과 영암의 갈낙탕 전문점 ‘학산정’까지 합치면 이미 세끼는 채웠지만 먹거리 탐사는 계속된다. 여수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진 문수동 ‘조일식당’에 도착하자 대원들은 식탁에 한 상 떡하니 펼쳐진 삼치 선어를 보고 아이돌 가수를 만난 것처럼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선어는 잡은 생선의 피를 뽑고 일정 시간 숙성시킨 생선이다. 구이로 주로 먹는 삼치지만 이곳 여수에서 삼치회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팔뚝만한 삼치를 인근 바다에서 잡아 회로 낸다. 16일 이른 아침, 여수는 뚝딱거리는 소리로 요란하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둔 여수다. 5월이면 세계인의 눈동자가 이곳에 쏠린다. 먹거리는 여수를 보석처럼 빛내기에 충분하다. 첫 탐험지는 국동에 있는 ‘자매식당’. “제 이름 재미있죠.” 농을 던지는 ‘자매식당’ 주인 김정일(61)씨는 통장어탕을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통장어탕은 붕장어(아나고)를 된장 푼 물에 통째로 넣어 24시간 끓여낸 탕이다. 오랜 시간 끓인 탓에 개흙 냄새나 비린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된장에 폭 잠긴 통장어탕은 여수 부속 섬에서 주로 먹는 방식이다. 성인 여성의 팔뚝만한 장어 덩어리는 ‘눈은 번쩍, 귀는 쫑긋’ 할 만큼 고소함이 하늘을 찌른다. 이정희 팀장은 “교동시장 앞에 있는 고추장 베이스의 장어탕과 비교해볼 거니깐 잘 기억해 두라”고 말한다. 여수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한번쯤 들러봤을 ‘7공주식당’은 얼큰하고 빨간 국물에 큼직한 붕장어가 흐물흐물 나온다. 고소하기는 마찬가지다. “딸이 일곱이라” 지은 이름이라고 자랑하는 고정자(66)씨는 나물과 김치를 싸준다. 고객상담실 박성진 팀장과 상품개발팀의 이광락 부장은 “둘 다 특색 있고 좋은데, 굳이 따진다면 된장 베이스 장어가 좋네”라고 의견을 교환한다. 박 팀장은 탐사에 벌써 7번 참여한 미식가다.
정읍 ‘충남집’의 주인 서금옥씨가 가게 앞에서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마스코트인 여니, 수니를 안고 있다.
고소함이 끝내주네 들머리에서 말미까지 걸어야 고작 10분 거리인 교동시장은 맛의 찬가를 부를 만큼 싱싱한 해산물이 산더미다. 쪽빛 바다가 훅하고 시장 가운데로 날아왔다. 새조개, 굴, 가오리, 붕장어, 정어리, 상어, 쥐치, 파래, 감태 등 바다 동식물의 백과사전이다. 아귀를 손질하는 아낙네를 한참 보고 있노라면 신기한 장면도 목격한다. 가른 아귀의 배에서 마치 고래 뱃속에 들어간 피노키오처럼 멀쩡한 작은 물고기들이 나온다. 교동시장은 1965년 문을 열었다. 매일 새벽에 열어 오후 1시면 문을 닫는다. 한나절 쉬었다가 어스름 땅거미가 지면 포장마차촌으로 변신한다. 돌산갓김치를 마지막으로 여수에서 맛 여행은 끝이 났다. 해가 꺾이기 시작하자 이정희 팀장은 서두른다. “엿 체험할 보성 강골마을, 광양 청매실농원 가야 합니다. 서두릅시다.” 정읍·영암·여수=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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