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전당포 건물은 앤티크 가구와 현대적인 조명으로 꾸며진 레스토랑으로 변신했다
[매거진 esc]
홍콩으로 떠나는 건축·예술 여행…100년 된 건물의 멋스러움에서 현대미술까지 볼거리 가득
“가끔 홍콩이 지나치게 생생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생명력이 너무 넘쳐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어디에나 벌레가 기어 다녔고, 언덕에는 들개가 있었고, 모기는 맹렬하게 번식했다. 사람들은 산 한복판에 길을 내고 빌딩을 세웠지만, 자연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저항했다.”(재니스 리, <피아노 교사> 중)
1940~50년대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 소설 속 자연의 생명력은 다른 영역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산 한복판이 아니라, 바다를 메워 빌딩을 세우고 자연은 거대한 건축물의 탄생을 목도할 뿐이다. 동서양 현대 미술과 예술의 향연이 한판 벌어지고 있다. 여전히 전 국토의 70%를 녹지로 보전하고 있지만, 그 생명력은 건축물과 예술품으로 옮아가고 있다. 홍콩을 단지 미식과 쇼핑 천국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홍콩 하면 떠올리는, 높은 건축물들이 이룬 은빛 스카이라인은 단언컨대 홍콩의 전부가 아니다. 그 사이사이 사람들의 숨결 묻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세워진 건물들은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세련된 건축물에서 느낄 수 있는 쾌적함은 부족할지 몰라도,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오르면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다.
오래된 것의 멋스러움인 ‘빈티지’한 매력을 홍콩 건축물에서 느낄 수 있다. 지난달 25일 오후 찾은 ‘더 폰’(The Pawn·전당포라는 뜻)은 지은 지 100년이 넘은 건물이다. 본래 전당포로 쓰였던 건물이라 레스토랑으로 내부를 바꾼 뒤에도 이름을 이어 쓰고 있다. 2~3층의 영국식 레스토랑은 내부로 들어서자, 홍콩과 옛 지배국이었던 영국의 매력이 뒤섞여 다가온다. 디자이너 톰 딕슨의 현대적인 구릿빛 조명과 닳아서 찢어지기 직전의 가죽소파의 조화가 묘하다.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자 미국의 록펠러3세 기금에서 출연해 만든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홍콩센터는 화약창고로 쓰이던 건물이었다. 24일 오후 들른 이곳에는 화약을 실어나르기 위해 설치된 철로가 바닥에 보존되어 있다. 지난 2월 문을 열었고 갤러리와 소극장, 회의 장소, 옥상정원 등으로 꾸며졌다. 마천루 사이에 녹지와 낮은 건물로 이루어진 홍콩센터에 입장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도심 속 조용한 휴식 공간을 찾는다면, 이만한 곳이 없을 듯하다.
1960년대식 건물로 1층은 ‘홍콩역사관’으로 꾸며진 ‘블루 하우스’와 지금은 환경보호국센터로 쓰이고 있는 옛 중앙우체국 건물, 냉동창고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프린지 클럽’까지 곳곳에서 빈티지 건축물의 매력을 직접 느껴볼 수 있다.
레스토랑·갤러리로
옷 갈아입은
옛 건축물들 옛 건축물에 이어 세워진 현대 건축의 향연은 현재진행형이다. 홍콩에서 가장 높은 국제상업센터(ICC) 건물은 현대 고층 건축물의 심미적 요소와 편리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호텔 더블유(W)와 쇼핑센터인 엘리먼트 등이 함께 자리잡고 있는 아이시시에서 꼭 들러볼 곳은 100층, 400m 높이에 자리잡은 전망대 ‘스카이100’이다. 이곳에서는 빅토리아 피크와는 또다른 홍콩 전경을 선물한다. 150홍콩달러(성인 기준·약 2만3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변덕스러운 홍콩 날씨 탓에 바깥 구경을 제대로 못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매표소 앞에서 현재 스카이100에 올라가면 보이는 홍콩 전경 등을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과 함께 홍콩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바로 현대 미술이다. 오는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홍콩아트페어 때문만은 아니다. 전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이 홍콩에 둥지를 틀고 있고, 현지인들이 세운 갤러리들도 현대 중화권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페더빌딩
동서양 현대미술
주요작들이 한 건물에 ‘오사지 갤러리’는 창고로 쓰이던 공간에 자리 잡았다. 홍콩섬에 오밀조밀 모여든 갤러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카오룬(주룽)반도의 퀀통 지역에서는 이름난 곳이다. 마침 타이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넓은 창고에서 전시장으로 변신한 공간 특유의 독특함과 예술품의 개성은 잘 어우러졌다. 습한 날씨에 듬성듬성 있는 갤러리를 땀 흘리며 찾는 게 고생스럽다면, 이 건물을 찾자. 홍콩 센트럴 페더가에 자리잡은 ‘페더 빌딩’. 이곳에는 영국의 ‘벤 브라운 갤러리’, 미국의 ‘가고시언 갤러리’의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페더 빌딩 안에 이들 갤러리의 홍콩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 근현대 미술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대표적인 갤러리에 속한다. 가고시언 갤러리에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일명 ‘땡땡이 그림’으로 불리는 ‘스팟’이 본전시장도 아닌, 책 판매 코너에 걸려 있을 정도이다. 현대 중국 및 중화권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같은 건물 3층에 있는 ‘한아트 갤러리’로 가면 된다. 오는 9월에 전시관을 더욱 확장할 예정인 이 갤러리는 중화권 신진 예술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홍콩으로 떠나는 건축·예술 여행은 2015년부터 더욱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서카오룬 지역에 ‘문화지구’가 들어설 계획이기 때문이다. 공연기획자로 문화지구 건설 총감독을 맡고 있는 루이스 위는 2015년까지 ‘시취’(xiqu) 극장과 시각문화예술 박물관인 ‘엠플러스’(M+)를 준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취 극장은 중국의 전통극 공연장, 엠플러스는 미술뿐 아니라 디자인을 포함한 시각예술 영역의 전시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웅본색>, <천장지구> 등 홍콩 누아르 액션의 배경이 된 공간을 이제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아쉬워만 할 일은 아니다. 옛 건물은 새로운 용도로 생명을 얻고, 새로운 건물은 근현대 예술품들의 집이 되어 가고 있다. 황무지 같은 카오룬 반도의 서쪽 땅에는 이것이 모두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 탄생한다. 변하고 변한다. 덥고 습한 날씨에도, 찾고 또 찾게 되는 홍콩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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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당포 건물은 앤티크 가구와 현대적인 조명으로 꾸며진 레스토랑으로 변신했다
현대 건축물이 만든 홍콩의 은빛 마천루
옷 갈아입은
옛 건축물들 옛 건축물에 이어 세워진 현대 건축의 향연은 현재진행형이다. 홍콩에서 가장 높은 국제상업센터(ICC) 건물은 현대 고층 건축물의 심미적 요소와 편리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호텔 더블유(W)와 쇼핑센터인 엘리먼트 등이 함께 자리잡고 있는 아이시시에서 꼭 들러볼 곳은 100층, 400m 높이에 자리잡은 전망대 ‘스카이100’이다. 이곳에서는 빅토리아 피크와는 또다른 홍콩 전경을 선물한다. 150홍콩달러(성인 기준·약 2만3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변덕스러운 홍콩 날씨 탓에 바깥 구경을 제대로 못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매표소 앞에서 현재 스카이100에 올라가면 보이는 홍콩 전경 등을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과 함께 홍콩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바로 현대 미술이다. 오는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홍콩아트페어 때문만은 아니다. 전세계 유수의 갤러리들이 홍콩에 둥지를 틀고 있고, 현지인들이 세운 갤러리들도 현대 중화권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홍콩섬 성완의 ‘웨스턴 마켓’ 정보는 ‘디스커버홍콩 시티워크’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왼쪽) 현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벤 브라운 갤러리’(오른쪽)
동서양 현대미술
주요작들이 한 건물에 ‘오사지 갤러리’는 창고로 쓰이던 공간에 자리 잡았다. 홍콩섬에 오밀조밀 모여든 갤러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카오룬(주룽)반도의 퀀통 지역에서는 이름난 곳이다. 마침 타이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넓은 창고에서 전시장으로 변신한 공간 특유의 독특함과 예술품의 개성은 잘 어우러졌다. 습한 날씨에 듬성듬성 있는 갤러리를 땀 흘리며 찾는 게 고생스럽다면, 이 건물을 찾자. 홍콩 센트럴 페더가에 자리잡은 ‘페더 빌딩’. 이곳에는 영국의 ‘벤 브라운 갤러리’, 미국의 ‘가고시언 갤러리’의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페더 빌딩 안에 이들 갤러리의 홍콩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 근현대 미술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대표적인 갤러리에 속한다. 가고시언 갤러리에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일명 ‘땡땡이 그림’으로 불리는 ‘스팟’이 본전시장도 아닌, 책 판매 코너에 걸려 있을 정도이다. 현대 중국 및 중화권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같은 건물 3층에 있는 ‘한아트 갤러리’로 가면 된다. 오는 9월에 전시관을 더욱 확장할 예정인 이 갤러리는 중화권 신진 예술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홍콩으로 떠나는 건축·예술 여행은 2015년부터 더욱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서카오룬 지역에 ‘문화지구’가 들어설 계획이기 때문이다. 공연기획자로 문화지구 건설 총감독을 맡고 있는 루이스 위는 2015년까지 ‘시취’(xiqu) 극장과 시각문화예술 박물관인 ‘엠플러스’(M+)를 준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취 극장은 중국의 전통극 공연장, 엠플러스는 미술뿐 아니라 디자인을 포함한 시각예술 영역의 전시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웅본색>, <천장지구> 등 홍콩 누아르 액션의 배경이 된 공간을 이제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아쉬워만 할 일은 아니다. 옛 건물은 새로운 용도로 생명을 얻고, 새로운 건물은 근현대 예술품들의 집이 되어 가고 있다. 황무지 같은 카오룬 반도의 서쪽 땅에는 이것이 모두 한데 어우러진 공간이 탄생한다. 변하고 변한다. 덥고 습한 날씨에도, 찾고 또 찾게 되는 홍콩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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