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필름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는 대니얼 전(전우진)의 작업들. 소울커넥션(soul connection)
패션필름, 화보와 광고 그 너머
패션필름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는 대니얼 전(전우진)의 작업들. 페르마타(fermata)
브랜드 인지도 위해
패션필름 제작 적극적 패션은 사진 또는 런웨이 위에 갇혀 있었다. 사진은 영속적이나 정적이었고, 런웨이는 동적이었지만 일회적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그칠 수는 없다. 패션을 전하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했다. 런웨이와 사진 속에 갇혔던 패션이 탈출하고 있다. 바로, 패션 필름 위에서다. 패션 필름? 갸우뚱할 것이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 광고 영상과 패션디자이너의 삶을 다룬 극영화, 이 모든 것이 패션 필름이 아니었던가? 과연 새로운 것인가?’ 하고. 누가 딱 잘라 ‘이것은 패션 필름이고 아니다’라며 선을 긋지 않았다. 패션 필름의 공통점을 도출하자면, 무엇인지 조금 감이 올 뿐이다. 패션 필름은 옷을 포함한 ‘패션’을 주제로 한 영상물이다. 유명 패션디자이너의 삶을 다룬 극영화와 다른 지점이다. 굳이 ‘패션 영화’라 일컫지 않는 이유는, 대사 등 영화를 구성하는 필수 요소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의 주인공, 대사, 극적 전개 등은 패션 필름에서 부수적 요소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잘 만든 영화도 세부적인 데까지 꼼꼼하게 신경쓰듯이, 패션 필름 또한 그렇다. “패션은 새로운 언어로 표현될 필요가 있다. 영상은 패션을 표현할 수 있는 적합한 방식이라고 본다”는 디자이너 조르조 아르마니의 말은 현실화하고 있다. 국내에 패션 필름이 상륙하기에 앞서 국외에서는 4~5년 전부터 붐이 일기 시작했다.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경기침체기에도 브랜드 관리와 유지를 위해 발버둥치던 명품 브랜드들이었다. 본래 ‘격 떨어진다’며 영상 광고에는 이렇다 할 신경을 쓰지 않던 브랜드들이 새로운 시장,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고자 본격적인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하던 때와 일치한다. 국내에 유통되는 명품 브랜드들도 최근에는 하나같이 ‘패션 필름’을 만들어 뽐낸다. 얼마 전 방영되어 화제가 됐던 카르티에의 ‘오디세이 드 카르티에’(L’ODYSSE DE Cartier·카르티에의 모험)나 아르마니 익스체인지의 ‘해피 엔딩’ 등이 국내에도 알려지며 눈길을 끌었다. 명품 브랜드의 광고가 아니더라도, 실험적인 태도의 패션 필름들은 패션 관계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새로운 먹을거리이다. 세계적인 패션 평론가로 꼽히는 다이앤 퍼넷. 그는 벌써 자신의 누리집(홈페이지)에서 자체적인 ‘패션 필름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패션 필름 아카이브를 자처하는 누리집도 국외에는 벌써 여럿이다. 아직까지 국내에 선보인 패션 필름과 광고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진정 ‘패션’을 주인공으로 한 패션 필름들도 점차 늘고 있다. 영국에서 지난해 9월 귀국한 대니얼 전(Daniel Jon·전우진)은 국내 패션 필름 메이커 1세대로 자리잡을 듯하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다 모션 그래픽으로 전향한 뒤 패션 필름을 만들고 있다. 대니얼 전은 말한다. “광고는 팔려고 하는 제품에만 집중을 하지만, 패션 필름은 헤어 스타일이나 메이크업, 음악 등 그 밖의 것을 통해서 옷과 브랜드의 분위기를 전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의 작업을 가리키며 “깨끗하지는 않지만, 영상에 나오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냄새, 분위기가 전해졌으면 한다”고 바란다.
신진 디자이너 주태경의 옷을 주제로 한 패션필름
버 포티스(vir fortis)
필름은 스타일, 음악 등으로
브랜드의 분위기를 전달” 패션 필름과 잡지 화보의 다른 점을 대니얼 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잡지의 화보는 덮고 싶을 때 덮을 수 있죠. 패션 필름도 정지 버튼을 누를 수는 있지만, 적어도 흥미롭다면 다음 장면이 무엇이 될지 보는 사람이 궁금하게 여길 것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신진 디자이너에게는 더욱 집중도 높은 매체가 되리라 봐요.” 그의 말대로, 국내에서 패션 필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신진 디자이너인 경우가 많다. 지난 9일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시작된 ‘패션플러스알파’라는 패션 관련 강의의 첫 주제는 ‘패션 필름’이었다. 이날 대니얼 전은 강의자로 초대됐다. 그는 “될 수 있으면 많은 국내 신진 디자이너들과 패션 필름 작업을 해보고 싶다. 패션 필름은 필름 메이커가 옷과 브랜드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만들 수 있으니, 이런 장점을 활용해 ‘룩 북 필름’ 같은 것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국내외 패션 필름은 주로 온라인으로 유통됐다. 이랬던 패션 필름이 런웨이로 진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4월 초 열린 춘계 서울패션위크는 패션 필름과 런웨이의 결합이 어떤 모습일지 보여줬다. 참가자와 관람객에게 가장 많이 회자됐던, 말 그대로 ‘말 많았던’ 컬렉션은 남성복 디자이너인 신재희(Jehee Sheen)의 쇼였다. 런웨이에 모델 대신 패션 필름을 틀었다. 관람객들은 수군댔다. “이게 뭐야?” 쇼가 끝난 뒤에는 “이게 뭐야?”라는 말에 푸념이 묻어났다. 동양적 철학을 주제로 삼았기에 국내 관람객에게는 그다지 새롭지 못했다. 그러나 외국에서 온 바이어에게는 이 쇼가 ‘충격’으로 다가갔다. 결과적으로 신재희 디자이너의 옷은 국외 바이어들에게 가장 많이 팔렸다. 신재희 디자이너 외에도 최범석, 장광효 디자이너 등도 런웨이 쇼와 영상의 결합을 시도했다. 아직 이 새로운 패션 매체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예측은 해볼 수 있겠다. 패션을 둘러싼 국내 관계자들과 소비자의 적극적인 태도를 고려하자면, 우리는 곧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내용의 패션 필름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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