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출퇴근 하는 임종업 기자
[매거진 esc] 연신내에서 공덕역까지 45분의 전투장…임종업 기자의 자전거 출퇴근 명상기
차한테는 인도에서 온 틈입자
보행자한테는
찻길에서 온 불청객 자동차는 바퀴와 소파를 결합한 구조다. 사적인 공간을 공공의 길 위에 난딱 옮겨놓은 모양새다. 방안 소파의 편안함은 고무바퀴와 스프링의 완충장치에 의해 길 위로 연장된다. 요철과 굴곡은 그 움직임이 최소화하고 철갑 두른 차창을 통해 색번짐과 형태의 일그러짐으로 시각화한다. 안락함과 더불어 속도가 특장이어서 거리는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치환된다. 출발점과 도착점만 있을 뿐 그 사이의 과정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자전거는 얄따란 바퀴에 땡글의자를 얹은 구조. 조랑말을 타고 댓바람에 길 위로 나선 형국이다. 길의 모양, 주변의 소음, 날씨의 온랭이 오감에 날것으로 전달된다. 자동차의 내연기관 자리에 육신이 놓인다. 이동거리는 땀샘이 분비하는 찝찔한 수분과 근육에 쌓이는 젖산으로 환산된다. 목적지는 출발점에서부터 차곡차곡 줄여온 거리의 합계에 해당한다. 결국 자동차에서 사소한 과정이 자전거에서는 사건이 된다. 지난달 28일부터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했다. 자동차, 버스의 박스 또는 지하철의 어둠으로 차단된 길의 실재를 체감하려는 것. 일상화하면서 심드렁해진 집과 회사의 거리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면 가외의 소득일 터다. 기자가 사는 서울 은평구 연신내에서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로 가는 자전거길은 대략 두 가지. 북한산에서 발원한 불광천 물길을 따라 서울을 관류하는 한강에 이른 뒤 양화대교에서 자전거길을 거슬러 올라 마포대교에서 찻길로 공덕동에 이르는 게 첫째. 대개 물을 끼고 가는 까닭에 연신내~응암, 마포대교~회사 두 군데 찻길을 제외하면 평탄하기 이를 데 없다. 1시간15분 정도 걸린다. 둘째는 통일로를 따라 불광~녹번~홍제~무악재~서대문에 이른 뒤 염천교, 서부역을 거쳐 만리재를 넘는 길이다. 북한산이 한강을 만나 기세가 수그러들면서 나누어진 다섯 개의 지맥을 넘어야 한다. 연신내~불광 중간의 이름없는 고개, 불광~녹번 사이의 양철평, 녹번~홍제 사이의 산골고개, 홍제와 서대문 사이의 무악재, 서부역~공덕 사이의 만리재가 그것이다. 문제는 두번째 길, 통일로. 일산, 파주 등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바뀐 고장에서 나온 차들이 시내를 향해 꼬리를 무는 출근로다. ‘맨 인 블랙’의 차들은 일제히 앞차의 꽁무니에 코를 박고 있다. 옆의 차는 일부러든, 실수로든 앞에 끼어들 낌새가 아니라면 아예 뵈지 않는다. 자전거는 완전히 갑각류 틈에 낀 연체동물처럼 이질적이다. 집 앞에서 회사 문 앞까지 45분. 물길에서보다 줄어든 30분은 길을 선점한 차들과 투쟁하여 얻은 결과다. 길은 매캐한 배기가스와 타이어 마찰열이 가득하다. 몸의 배기는 비교도 안 되는 그것들은 덩어리째 흡기가 되어 목구멍, 콧구멍을 가격한다. 열심히 페달을 밟을수록 폐에 흡착하는 일산화탄소의 강도가 강렬해진다. 그러니까 애초 이 길은 자전거를 위한 게 아니다. 버스 전용차로가 한 차선을 오로지하고, 나머지 차들이 한두 차선에서 곁을 다툰다. 차들은 자전거를 무지막지 갓길로 밀어내고, 자출족은 차도와 인도 사이에서 꿈틀거린다. 머리에 뒤집어쓴 헬멧은 갑각류 흉내내기일 뿐. 자출족 하나 없는 통일로에서 자전거는 외로워 위태롭다. 어쩔 수 없는 일. 자전거는 태생적으로 하이브리드인 것을. 차량한테는 인도에서 유래한 틈입자, 보행자한테는 찻길에서 튀어나온 불청객이다. 차인 동시에 보행자이고, 차가 아닌 동시에 보행자가 아니다. 고갯마루 직선길에서 차한테 밀려난 자전거는 평지의 네거리에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좌회전 신호를 받아야 하는 데서는 차들 사이에서 외톨이다. 하여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갓길 사이에 그어진 10㎝ 너비의 노란 선이 가장 편안하다. 하지만 그 선조차 인도의 상점과 보행자와 시시로 교역하는 트럭과 택시들이 끊어 먹는다. 큰 덩치로 앞을 가로막는데야 용뺄 방법이 없다. 브레이크를 잡아 그동안 축적한 추동력을 일시에 소비하고 만다. 자전거는 선주민한테서 환영받지 못하는 제3국 노동자와 흡사하다. 몸이 동력원인 걸 미덕이라고 해야 하나. 아침저녁 무심하던 재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분명한 고개가 된다. 어느 데 맨홀이 푹 꺼지고, 어느 곳 덧씌운 아스팔트가 도드라져 있는지, 대형 트럭이 뜯어먹어 누더기가 된 구간이 어딘지, 머리가 아닌 엉덩이의 통각으로 낱낱이 기억한다.(무악재와 만리재를 제외한 나머지는 이번에 비로소 이름을 얻었다.) 노트북 가방은 빼도박도 못하는 등짐이 된다. 지하철 또는 버스에서라면 무릎 또는 선반에 의탁해 존재를 잊었을 법한 그것은 선명한 어깨 자국이 되고, 신문 또는 서책의 활자 같은 잡티가 섞이지 않은 순정한 길이라는 표지가 된다. 그럼으로써 몸은 하룻밤 내내 다시 벼린 무기, 등짐은 그날의 노동을 위한 장비가 된다. 회사는 거기에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이르러야 하는 목적이 된다.
버스·지하철 타면서
무심하게 지나던 고개와 길들
이제야 그들의 이름을 알게 돼 호사라면 집 앞에서 타, 회사 앞에서 내린다는 점.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는 다시 버스를 갈아타는 불편이 없으니 자가용 부럽지 않다. 다만 출퇴근 복장도, 업무용 옷도 아닌 어정쩡한 차림으로, 땀에 절어 꿉꿉한 채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게 좀 그렇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면 민감해진다. 밤길은 전설이 살아 있는 옛 시절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택시, 트럭, 버스가 언제 늑대, 여우, 호랑이로 변신하여 덮쳐올지 모른다. 그래서 집은 시원한 샤워와 따뜻한 밥이 되고 노곤한 몸을 누일 보금자리가 된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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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한테는
찻길에서 온 불청객 자동차는 바퀴와 소파를 결합한 구조다. 사적인 공간을 공공의 길 위에 난딱 옮겨놓은 모양새다. 방안 소파의 편안함은 고무바퀴와 스프링의 완충장치에 의해 길 위로 연장된다. 요철과 굴곡은 그 움직임이 최소화하고 철갑 두른 차창을 통해 색번짐과 형태의 일그러짐으로 시각화한다. 안락함과 더불어 속도가 특장이어서 거리는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치환된다. 출발점과 도착점만 있을 뿐 그 사이의 과정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자전거는 얄따란 바퀴에 땡글의자를 얹은 구조. 조랑말을 타고 댓바람에 길 위로 나선 형국이다. 길의 모양, 주변의 소음, 날씨의 온랭이 오감에 날것으로 전달된다. 자동차의 내연기관 자리에 육신이 놓인다. 이동거리는 땀샘이 분비하는 찝찔한 수분과 근육에 쌓이는 젖산으로 환산된다. 목적지는 출발점에서부터 차곡차곡 줄여온 거리의 합계에 해당한다. 결국 자동차에서 사소한 과정이 자전거에서는 사건이 된다. 지난달 28일부터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했다. 자동차, 버스의 박스 또는 지하철의 어둠으로 차단된 길의 실재를 체감하려는 것. 일상화하면서 심드렁해진 집과 회사의 거리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면 가외의 소득일 터다. 기자가 사는 서울 은평구 연신내에서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로 가는 자전거길은 대략 두 가지. 북한산에서 발원한 불광천 물길을 따라 서울을 관류하는 한강에 이른 뒤 양화대교에서 자전거길을 거슬러 올라 마포대교에서 찻길로 공덕동에 이르는 게 첫째. 대개 물을 끼고 가는 까닭에 연신내~응암, 마포대교~회사 두 군데 찻길을 제외하면 평탄하기 이를 데 없다. 1시간15분 정도 걸린다. 둘째는 통일로를 따라 불광~녹번~홍제~무악재~서대문에 이른 뒤 염천교, 서부역을 거쳐 만리재를 넘는 길이다. 북한산이 한강을 만나 기세가 수그러들면서 나누어진 다섯 개의 지맥을 넘어야 한다. 연신내~불광 중간의 이름없는 고개, 불광~녹번 사이의 양철평, 녹번~홍제 사이의 산골고개, 홍제와 서대문 사이의 무악재, 서부역~공덕 사이의 만리재가 그것이다. 문제는 두번째 길, 통일로. 일산, 파주 등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바뀐 고장에서 나온 차들이 시내를 향해 꼬리를 무는 출근로다. ‘맨 인 블랙’의 차들은 일제히 앞차의 꽁무니에 코를 박고 있다. 옆의 차는 일부러든, 실수로든 앞에 끼어들 낌새가 아니라면 아예 뵈지 않는다. 자전거는 완전히 갑각류 틈에 낀 연체동물처럼 이질적이다. 집 앞에서 회사 문 앞까지 45분. 물길에서보다 줄어든 30분은 길을 선점한 차들과 투쟁하여 얻은 결과다. 길은 매캐한 배기가스와 타이어 마찰열이 가득하다. 몸의 배기는 비교도 안 되는 그것들은 덩어리째 흡기가 되어 목구멍, 콧구멍을 가격한다. 열심히 페달을 밟을수록 폐에 흡착하는 일산화탄소의 강도가 강렬해진다. 그러니까 애초 이 길은 자전거를 위한 게 아니다. 버스 전용차로가 한 차선을 오로지하고, 나머지 차들이 한두 차선에서 곁을 다툰다. 차들은 자전거를 무지막지 갓길로 밀어내고, 자출족은 차도와 인도 사이에서 꿈틀거린다. 머리에 뒤집어쓴 헬멧은 갑각류 흉내내기일 뿐. 자출족 하나 없는 통일로에서 자전거는 외로워 위태롭다. 어쩔 수 없는 일. 자전거는 태생적으로 하이브리드인 것을. 차량한테는 인도에서 유래한 틈입자, 보행자한테는 찻길에서 튀어나온 불청객이다. 차인 동시에 보행자이고, 차가 아닌 동시에 보행자가 아니다. 고갯마루 직선길에서 차한테 밀려난 자전거는 평지의 네거리에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다. 좌회전 신호를 받아야 하는 데서는 차들 사이에서 외톨이다. 하여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갓길 사이에 그어진 10㎝ 너비의 노란 선이 가장 편안하다. 하지만 그 선조차 인도의 상점과 보행자와 시시로 교역하는 트럭과 택시들이 끊어 먹는다. 큰 덩치로 앞을 가로막는데야 용뺄 방법이 없다. 브레이크를 잡아 그동안 축적한 추동력을 일시에 소비하고 만다. 자전거는 선주민한테서 환영받지 못하는 제3국 노동자와 흡사하다. 몸이 동력원인 걸 미덕이라고 해야 하나. 아침저녁 무심하던 재가 오르막과 내리막이 분명한 고개가 된다. 어느 데 맨홀이 푹 꺼지고, 어느 곳 덧씌운 아스팔트가 도드라져 있는지, 대형 트럭이 뜯어먹어 누더기가 된 구간이 어딘지, 머리가 아닌 엉덩이의 통각으로 낱낱이 기억한다.(무악재와 만리재를 제외한 나머지는 이번에 비로소 이름을 얻었다.) 노트북 가방은 빼도박도 못하는 등짐이 된다. 지하철 또는 버스에서라면 무릎 또는 선반에 의탁해 존재를 잊었을 법한 그것은 선명한 어깨 자국이 되고, 신문 또는 서책의 활자 같은 잡티가 섞이지 않은 순정한 길이라는 표지가 된다. 그럼으로써 몸은 하룻밤 내내 다시 벼린 무기, 등짐은 그날의 노동을 위한 장비가 된다. 회사는 거기에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이르러야 하는 목적이 된다.
자전거 출근, 뜻은 좋지만 전용로가 없는 길이라면 정말 무모한 일이다.
무심하게 지나던 고개와 길들
이제야 그들의 이름을 알게 돼 호사라면 집 앞에서 타, 회사 앞에서 내린다는 점. 걸어서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는 다시 버스를 갈아타는 불편이 없으니 자가용 부럽지 않다. 다만 출퇴근 복장도, 업무용 옷도 아닌 어정쩡한 차림으로, 땀에 절어 꿉꿉한 채 하루를 보내야 하는 게 좀 그렇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면 민감해진다. 밤길은 전설이 살아 있는 옛 시절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택시, 트럭, 버스가 언제 늑대, 여우, 호랑이로 변신하여 덮쳐올지 모른다. 그래서 집은 시원한 샤워와 따뜻한 밥이 되고 노곤한 몸을 누일 보금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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