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학 기자
문단 음주계 대표인사 한창훈 작가의 30년 해장편력
이웃 시인과 식당 앞서
문 열기 기다렸다
들이켠 냉면 한사발
어지간히 마시면서 살았나 봅니다. 누구를 만나도 음주계의 대표인사로 알아주고 급기야 술병(病) 때문에 병원도 들락거리고 결국 이런 원고 청탁도 받으니 말입니다. 스무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하여 올해 쉰이니 꼬박 30년을 장복한 것입죠. 30년 근속하기 쉽지 않고 더군다나 그 긴 기간 동안 무엇을 한결같이 붙들고 있는 것은 더 어려운데 저는 해낸 것입니다.
현대상선 콜롬보호 탔을 때입니다. 그 배 캡틴은 여러 해 전 담배를 끊었고 술좌석에서도 와인 몇 잔으로 마무리하는 분이었습니다. 이 양반이 하루는 자신의 금연 금주 성공담을 말하고 나서 스스로도 대견했다면서 저를 바라보셨죠. 그러니 당신도 끊어라, 이런 눈빛이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삼십년 가까이 마시고 피워왔는데도 버티고 있는 제 자신도 대견합니다.”
흐흐, 아무렴요. 삼십년 해 온 짓을 부끄러워해버리면 어디 살겠습니까. 잘못 살아왔다는 꼴이 되어버리는데요. 아무튼 오늘의 술은 내일의 해장과 어김없이 맞물려 있습니다. 속풀이 말입니다. 아, 풀어야죠, 맺힌 것은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낮에는 생업에 힘쓰는 선량한 국민이 되죠.
해장은 술과 잠시 이별하는 행위입니다. 방법 많습니다. 효과가 좋기로는 콩나물국, 일명 아스파라긴산탕이 으뜸이랍니다. 그런데 이거 돈 주고 사먹기 아깝습니다. 고작 콩나물국을 몇 천원 주고 사먹으면 손해 보는 느낌 들잖아요. 아, 전주 콩나물국밥은 좀 다릅니다만. 해장과 관련하여 이런 풍경들이 있었습니다. 십여 년 전 충남 서산에 살 때는 그곳 유명한 냉면집에서 해장을 하곤 했지요. 많이 마신 날은 새벽에 깹니다. 알코올은 잠이 들게도 하지만 숙면을 방해하는 성질도 있다죠.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더 이상 못 참고 유용주 시인과 달려갑니다.
냉면집 오픈 시간은 10시. 술꾼한테는 상당히 괴로운 시간이죠. 쪼그려 앉아 담배 피우면서 날아다니는 까치 숫자나 세고 있다 보면 버스에서 내린 주방 아주머니가 아이고 이걸 워쪄, 또 일찍 오셨구만그랴, 하면서 숫제 달려오기 마련이죠. 그리고 얼음 뜬 육수를 한 사발 먼저 줍니다. 유 시인과 저는 번갈아 벌컥거리고 나서 으으, 신음소리를 내죠. 그러고 보면 술과 관련해서는 아에이오우 모음만 입에서 나오는 거 같습니다.
거기서 종종 해장술도 마셨죠. 충동의 매력이 강력하기는 한데 좋은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몇 잔 넣어보면 순간, 세상이 용서가 되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합니다만 그것이 주는 위로는 아주 짧은데다 제가 세상을 용서한들 세상이 저를 용서 안 해버리면 어쩝니까, 제기랄. 그곳에서 이사를 간 곳이 천안 인근입니다. 아침이면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순댓국밥집을 자주 갔습니다. 단골이 되다보니 주인아주머니는 아직 세수도 안 한 딸아이 얼굴도 닦아주고 과일도 깎아주고 하게 되었죠. 사람에게 측은지심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제가 즐겨 찾았던 또 하나의 메뉴는 짬뽕이었습니다. 중국음식점은 11시 이후에 열기 때문에 냉면집보다 더 혹독한 경우입니다. 당시 그 마을에서는 머리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식당에서 나오는 중독자풍의 어떤 화가 소문이 돌았습니다. 다행이죠, 작가라고 안 하고 화가라고 해서.
지금은 고향 섬에 돌아와 살고 있어서 그러한 것들은 먹고 싶어도 못 먹습니다. 냉면·순댓국은 거의 없고 짬뽕은 주인아주머니가 기분이 나빠 있으면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집 아주머니 기분이 좋아지라고 축원을 하는 날이 많습니다.
냄비에 밥 한덩이 놓고
눌리게 익혀서 물 붓고 끓인
누룽지 해장탕 강추 좋은 해장국이 있다는 것은 술꾼들에게는 축복이자 구원 같은 것입니다. 덕분에 해장국 끓여놨으니 자기 오늘 술 많이 마시고 와, 이런 멘트가 세상에 돌아다니겠죠. 마셔본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아세트알데히드가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는지. 특히 저처럼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은 답답증과 소갈증의 고통을 방구석에서 고스란히 견뎌야 하죠. 산에 다녀오면 좋아지는데 매번 술 냄새 풍기며 가는 것은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사실 귀찮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일에 몰두하게 되는 출근인을 부러워하곤 했는데 들어보니 그들은 그들대로 저 같은 사람을 부러워하더라고요. 마을 안에서 살 때는 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다녀옵니다. 숙취를 풀어내기에 가장 괜찮은 코스였죠. 그런데 요즘은 그 해수욕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침에 갈 곳이 없어요. 우리 섬에서 가장 좋은 해장국으로 치는 것은 모자반국입니다. 모자반에 육고기나 해산물을 넣고 젓국간장으로 간을 쳐 끓인 것인데 특히 소내장을 넣고 끓인 것이 일품입니다. 이것처럼 답답한 속을 일순간 개운하게 풀어주는 것도 없을 겁니다. 하나 여기서도 먹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마땅한 해장국집도 없고 혼자 끓여 먹어야 하는 저 같은 팔자를 위해 조언 하나 하면 이렇습니다. 냄비에 밥을 한 덩어리 넣고 불을 약하게 합니다. 조금씩 뒤섞으며 밥알이 골고루 눌리게 만듭니다. 이제 타겠다 싶을 때 물을 붓고 푹 끓이면 괜찮은 해장용 누룽지가 됩니다. 옛날에는 씨눈이 있는 생쌀을 가지고 조당수처럼 끓여 먹었다는데 그것까지는 안 되더라도 얼추 효과는 봅니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오늘 아침에도 먹었습죠.
저는 열역학 2법칙을 기준으로 인생살이를 바라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질서와 무질서는 같은 양으로 공존한다고 보는 거죠. 거기에 맞추어보면 즐거운 음주 뒤에 찾아오는 이 숙취는 당연한 것이 됩니다. 어쩌겠어요. 인생 어떤 경우에도 좋거나 예쁜 것은 독한 것을 숨기고 있기 마련인데요.
이문구 선생께서 생전에 ‘막소주 막 마시지 말구 술도 좋은 것으로 먹어’ 하셨습니다. 전들 왜 안 그러고 싶겠어요. 하지만 가난한 전업 작가가 고를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뿐입니다. 마시느냐 마느냐.
사실 삼십년 마시고 속병도 얻다보니 술이 진부하기도 합니다. 정떨어졌는데 그냥 같이 사는 수준이죠. 하지만 병을 얻고부터 조심스러워지고 몸에 대한 생각도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오래된 종교의 경전에 쓰여 있는 말입니다.
요즘 다들 건강에 열을 올리는 세태입니다. 심지어는 히포콘드리아(비정상적으로 건강을 염려하는 증후군) 환자도 많다데요. 저기요, 건강하게 너무 오래 살려고 하지 맙시다. 징그러워요.
글 한창훈 소설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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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리게 익혀서 물 붓고 끓인
누룽지 해장탕 강추 좋은 해장국이 있다는 것은 술꾼들에게는 축복이자 구원 같은 것입니다. 덕분에 해장국 끓여놨으니 자기 오늘 술 많이 마시고 와, 이런 멘트가 세상에 돌아다니겠죠. 마셔본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아세트알데히드가 얼마나 사람을 괴롭히는지. 특히 저처럼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은 답답증과 소갈증의 고통을 방구석에서 고스란히 견뎌야 하죠. 산에 다녀오면 좋아지는데 매번 술 냄새 풍기며 가는 것은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사실 귀찮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일에 몰두하게 되는 출근인을 부러워하곤 했는데 들어보니 그들은 그들대로 저 같은 사람을 부러워하더라고요. 마을 안에서 살 때는 해수욕장으로 산책을 다녀옵니다. 숙취를 풀어내기에 가장 괜찮은 코스였죠. 그런데 요즘은 그 해수욕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침에 갈 곳이 없어요. 우리 섬에서 가장 좋은 해장국으로 치는 것은 모자반국입니다. 모자반에 육고기나 해산물을 넣고 젓국간장으로 간을 쳐 끓인 것인데 특히 소내장을 넣고 끓인 것이 일품입니다. 이것처럼 답답한 속을 일순간 개운하게 풀어주는 것도 없을 겁니다. 하나 여기서도 먹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모자반국.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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