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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본 디자이너와 눈밝은 소비자가 만나는 칸

등록 2013-01-02 18:12

70여개의 ‘칸’이 있는 카페 플리플리의 내부 모습.
70여개의 ‘칸’이 있는 카페 플리플리의 내부 모습.
[매거진 esc] 스타일
서울 한남동 카페 플리플리
가구 칸칸마다 디자인 제품
수수료 없이 전시 판매

젊은 소비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디자인 제품 판매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상점마다 색다른 디자인 제품을 앞세운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이런 상점 몇군데를 둘러보면 비슷비슷한 디자인 제품이 눈에 띈다. 제품 구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 찾았을 때는 개성있는 디자인 제품에 눈을 빼앗기지만, 다시 방문할 때는 그 재미를 보장하기 어렵다.

“그런 곳은 대부분 유통 수수료를 챙기는 곳이잖아요. 한마디로 잘 팔리는 게 기준이에요. 많이 색다를 필요도 없다고요.” 디자인 제품을 만들어 파는 명아무개씨의 말이다. 디자인 제품의 생명력인 창조성이나 기발함은 판매 가능성 다음에 오는 기준이다. 디자인 제품 판매처가 비슷한 상품을 취급하는 이유다.

이런 유통 구조에 불만인 디자이너는 많다. 거기서 거기인 디자인 제품에 불만인 소비자도 많다. 그러나 불만이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불평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작은 도전들이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의 작은 가게들에서 도전은 시작됐다.

카페 플리플리의 ‘칸’에 전시, 판매되고 있는 조명 제품과 다육식물 화분.
카페 플리플리의 ‘칸’에 전시, 판매되고 있는 조명 제품과 다육식물 화분.
요사이 개성을 찾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 용산구 한남2동 이태원 공영주차장 옆 티(T)자 골목이다. 오래된 슈퍼와 우유보급소, 세탁소와 좁은 골목이 남아 있는 이곳에 신진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티자 골목 초입, 카페 플리플리(flee flee). 바깥에서 관찰하니 ‘카페가 맞나?’ 하는 생각부터 든다. 유리창에 ‘칸, 칸, 칸! 디자인 공정거래’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공정거래 커피를 취급한다는 카페는 봐왔지만, 디자인 공정거래는 처음이다. 바로 옆 유리창을 보니 실제로 여러 칸으로 나뉜 가구가 놓여 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각종 액세서리와 조명기구, 신발, 유리잔, 음악 시디 등이 칸마다 놓여 있다.

카페 플리플리는 최충환·박관주 사장이 2011년 12월 열었다. 이제 갓 돌을 넘겼다. 이곳에서는 상시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있다. ‘칸칸칸 프로젝트’다. 전시공간을 창작자들에게 열어놓고 있다. 전시공간은 가로세로 30㎝ 남짓 되는 진열장의 ‘한 칸’이다. 최충환씨는 말했다.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팔려고 하면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상품을 전시하는 데도 조건이 까다롭고, 판매가 되더라도 유통하는 쪽에서 이익을 많이 가져가더라고요.”

디자인스튜디오 워크스
디자인 작품 위탁판매 자처
과자전 등 색다른 전시도 기획

신진 디자이너들에게는 작지만 소중한 공간이다. 칸에 전시하는 상품의 심사는 없다. 판매 대행 수수료도 없다. 조건은 직접 만든 것이어야 한다는 것뿐이다. 물건을 떼어다 팔 수는 없다. 이런 구조이니 당연히 갑을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칸’을 꾸미려는 사람들은 카페를 오가고, ‘칸’이 모인 곳은 작은 시장이 된다. 그렇게 생명력을 얻어가고 있는 공간이다.

카페를 열려다 디자인 상품 유통 쪽으로 아이디어를 냈나 보다 했다. 그게 아니다. 반대다. 최씨는 “애초 ‘칸’을 활용한 무엇인가를 해보자는 게 시작이었어요. 커피 아이템은 여기에 덧붙여진 것이죠”라고 말했다.

“칸을 만들어서 무엇인가를 하면, 이것을 꾸미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했어요. 여러 예술가나 창작가들이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친해지는 공간을 구상했죠. 서양의 살롱 문화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꿈꿨어요.” 그 꿈은 점차 실현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칸 대여료 대신 일정 금액을 받고 커피 바우처를 발행한다. 칸을 쓰는 사람들은 전시 상품과 커피를 매개로 모여든다.

디자인 상품 판매 공간뿐 아니라 다른 공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때로는 강연장, 공연장이 된다. “이런 프로그램을 일부러 만드는 것은 아니에요. 아이디어를 갖고 계신 분들이 제안을 해주시면 진행을 하죠. 저희가 갖고 있는 것은 공간뿐인데, 여러 창작자들이 이 공간을 채워주시는 거죠.”

디자인스튜디오이자 독립 창작가들의 제품 등을 파는 워크스.
디자인스튜디오이자 독립 창작가들의 제품 등을 파는 워크스.
한남동 도깨비시장 근처의 골목길에 자리잡은 워크스(WORKS). 워크스는 본래 이연정·이하림·박지성 디자이너가 꾸려가고 있는 디자인스튜디오이다. 디자인스튜디오는 서울 곳곳에 많다. 워크스는 디자인스튜디오의 기능에 하나를 더했다. 바로 ‘위탁판매처’이다.

이들은 직접 디자인 상품을 만든다. 유통 구조에서 디자이너의 처지를 몸소 깨달아 위탁판매처를 마련했다. 이연정씨는 “2009년부터 매년 달력을 만들었어요. 2012년에 캘린더 테이프라는 제품을 대량생산해서 판매 방법을 알아보다가 불합리한 상황을 많이 맞닥뜨리게 됐죠. 공모전에 준하는 심사,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 등등으로 을의 처지를 알게 됐고, 무엇인가를 만드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 생각해서 워크스를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소자본의 창작자가 자립적으로 디자인과 생산을 다 해냈을 때 단가를 맞추기 어렵다. 그리고 판매공간에 적합한 ‘기준’으로 심사하기 때문에 독립 창작가들의 창작물은 시장에서 소외된다”고 덧붙였다.

워크스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책, 그림, 사진과 같은 창작물부터 인형이나 장난감, 가방과 액세서리 같은 패션 용품까지 취급한다. 다른 디자인 상품 가게보다 다채로울 수 있는 이유는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나 디자이너 개인이 만드는 독립창작물이 주요 판매 상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러나라에서 온 수집품과 손때가 탄 중고품도 전시·판매된다.

캘린더 테이프.
캘린더 테이프.
전시된 제품을 보다 보면, 하나씩 꼼꼼하게 살펴보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 세명의 워크스 구성원이 꼽는 ‘좋아하는 제품’도 저마다 다르다. 이연정씨는 영국에서 온 수집품을, 이하림씨는 붙이면 달력이 되는 캘린더 테이프, 엉덩이 모양의 장난감 찰이, 박지성씨는 길욘랩의 지갑을 꼽았다.

7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지만, 고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작품 관리나 디스플레이에 대한 고민, 판매율에 대한 책임감. 예상치 못한 형태의 제품을 위탁받았을 때” 난감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그들의 작은 도전은 계속된다. 아직 수익이 많이 나는 것은 아니다. “수익창출의 가능성보다는 우리는 워크스의 가치와 그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꼭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고 워크스 구성원들은 설명했다.

style tip이태원 어디라고?

카페 플리플리
서울 이태원 공영주차장을 들어서기 직전 왼쪽에 있는 골목으로 100여m 걸으면 있는 삼거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 일대에는 신진 패션디자이너의 전시공간 겸 판매장, 패션잡지 전문서점, 중고품 판매 가게 등이 여럿 들어서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134. (02)795-4040.

워크스 이태원 이슬람 사원까지 올라가 오른쪽에 있는 길로 들어서 가다 보면 왼쪽에 있는 작은 디자인스튜디오 겸 위탁판매처이다. 워크스의 회원이 되면 주최하는 행사에 무료로 참가할 수 있고, 창작물 혹은 물건을 위탁하여 판매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757-17. worksblog.egloos.com.

디자인스튜디오이자 위탁판매처인 워크스에서는 색다른 전시회도 열린다. 지난 한 해 동안 두차례 ‘과자전’을 열었다. 이연정씨는 과자전의 탄생 비화를 이야기했다. “몇년 전 도쿄의 한 가게에서 아마추어 베이커가 과자들을 한데 모아 팔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과자를 작업으로 생각하고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워크스에서 ‘과자전’을 열면 흥미로울 거란 생각에 진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프라인 공간이 생기자마자 제일 먼저 진행한 프로젝트이다. 먹고 싶은 과자가 잔뜩 있는 풍경이 환상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작품의 의미로 과자‘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과자전뿐 아니다. 각종 워크숍과 프로젝트도 워크스에서 진행되고 있다.

글·사진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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