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술 마신 상태에서 물건을 선반에 올리는 행위는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서울메트로 관계자가 말했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술도 마시지 않은 채 소유권을 포기한 적이 있으니까요. 10년 전 그러니까 결혼하고 처음으로 맞는 추석 명절 때였습니다.
시가에 명절 인사를 갔다가 시어머니께서 바리바리 싸주신 음식 꾸러미를 들고 지하철 5호선을 탔더랬죠. 음식인지라 바닥에 놓기가 왠지 찜찜해서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수다를 떨다가 집 앞의 역 플랫폼에 자연스럽게 내렸습니다. 마치 짐 따위는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 말이죠. 그러고 역에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선반 위의 짐이 생각났습니다. 부리나케 내려가 역무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했고 역무원은 커버스토리 기사에 나오는 매뉴얼처럼 다른 정류장에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새 짐꾸러미가 없어졌다고 하더군요.
화도 났지만 문제는 그 이후의 대처였습니다. 당최 무슨 음식이 들어 있는지 모르니 시어머니께 어떻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고, 또 어떤 그릇에 담겼는지 모르니 그릇을 돌려드릴 일도 난감했습니다. 주변머리 부족한 초짜 며느리 입장에서 진실을 말해야 할지 거짓으로 감사를 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다가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잠깐 사이 없어진 그 꾸러미가 누구에게 갔을까, 그 이후에도 문득문득 궁금해지더군요. 현금화가 가능한 값비싼 물건이었다면 그저 나쁜 놈이라고 욕했겠지만 오히려 열어보고 황당했을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라도 명절 연휴 때 맛난 음식을 먹었다면 우울한 결말은 아니었을 거라 위로합니다.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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