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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된 ‘PNB 풍년제과’에 풍년들었네

등록 2013-02-27 19:00

[매거진 esc] 요리
1951년 문연
전주 대표빵집
풍년제과의 쇠락과 부활

2000년대 이후
하락곡선 그리다
한옥마을 여행자들 사이
초코파이 입소문으로 대박

“초코파이 두 상자 살래.” “나는 센베이도 한 상자 더 사갈 거야.” 폐점 시간에 맞춰 할인식품이 깔린 대형마트 식품 코너가 아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1가에 위치한 ‘피엔비(PNB) 풍년제과’는 평일 낮 2시에도 장터처럼 북적댄다. 쉬는 시간 학교매점 같다. <라따뚜이> 주인공 생쥐처럼 혼자 낡은 의자에 푹 파묻혀 이 가게의 명물 ‘초코파이’를 음미하는 이들도 있다. 그야말로 빵에 날개가 달렸다. 간판에 적힌 ‘신스(SINCE) 1951’은 광활한 우주의 포스를 뿜어낸다. 62년 된 빵집. 하지만 이런 진풍경은 고작해야 3년 전부터였다. 한때 ‘풍년제과가 망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전주를 대표하는 이 빵집의 60여년 세월은 두툼한 소설 한권이다.

주인 강현희(66)씨에게 아버지 강정문(2012년 작고)씨는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센베이(煎餠·밀가루 등의 재료를 반죽해 틀에 넣고 구운 과자)다. 작은 과자점 방바닥에서 배 깔고 공책에 ㄱ, ㄴ 적는 동안 아버지는 센베이를 구웠다. 땅콩을 팍팍 넣은 센베이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이었다. 어쩌다 부서진 센베이는 그의 차지였다. 아버지는 자전거에 잔뜩 싣고 길을 나섰다. 진
1960년대 말 풍년제과의 외관.
1960년대 말 풍년제과의 외관.
안, 이리 등 전라북도 일대를 힘차게 페달을 밟고 달렸다. 가는 곳마다 인기였다. 아버지의 센베이는 특별했다.

전북 익산이 고향이었던 정문씨는 8남매의 막내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누구나 허기졌다. 그는 가난한 살림에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12살에 전주로 와 일본인이 운영하는 센베이 가게에 취직했다. 얇은 센베이가 깨질까 노심초사하면서 배달을 하고, 돌아오는 밤길이나 빙판에서는 헛디뎌 구르기도 했다. “정직하고 성실했던” 그는 곧 센베이 기술자로 승진했다. 배합 비율을 머릿속에 외우고 또 외웠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또 반죽했다. 고지식한 손끝에서 깊은 맛의 센베이가 탄생했다. 해방을 맞아 일본인 주인이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는 1951년에 쌈짓돈을 모아 전주시 중앙동3가 29번지에 월세로 제과점을 열었다. 풍년제과의 탄생이다.

며느리 권영란(66)씨 기억에 “시아버님은 개척자 정신이 높은 분”이었다. 정문씨는 1958년 일본에서 소프트아이스크림 기계를 들여왔다. 1959년에는 에어컨을 달았다. “더운 날 제과점을 시원하게 할 방법을 찾으시다가, 우리나라보다 잘사는 나라는 뭐가 있겠지 하시고 미군부대로 가셔서 중고 에어컨을 가져오셨어요.” 여름날이면 발전기가 하루 종일 돌았다.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도지사도 서울에서 귀빈이 오면 자랑삼아 이곳을 찾았다. 땅콩이 깊숙이 박힌 센베이, 달콤한 생강 덩어리로 분칠한 고운 생강센베이, 깨와 김 센베이, 단팥빵, 곰보빵 등 풍년제과는 점점 유명해졌다. 성공한 맛집의 특징 중 하나는 가족경영이다. 풍년제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피엔비 풍년제과 주인 강현희(왼쪽)씨와 부인 권영란씨.
피엔비 풍년제과 주인 강현희(왼쪽)씨와 부인 권영란씨.
정문씨는 3남4녀를 뒀다. 현희씨는 둘째 아들이다. 고려대 공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갔다가 휴가차 고향에 와서 권씨와 결혼했다. 전주교대를 졸업하고 교사를 하던 권씨는 군대 간 남편을 대신해 교사를 그만두고 시아버지를 도왔다. “큰아들을 가진 지 8개월 때 일이죠. 전주제지 창립기념일에 쓸 케이크와 빵을 입찰한다는 거예요. 서울서 유명한 빵집 주인이 왔어요.” 권씨는 만삭의 몸으로 곱게 화장을 하고 “우리 것은 촌스럽다, 하지만 바로 만들어 오는 강점이 있다”고 애절하게 말했다. 그의 꾸미지 않은 얘기가 감동을 줘 결국 기회는 풍년제과가 잡았다. 70년대 일이다. 현희씨의 누나 정희씨는 풍년제과 직원 김생수씨와 결혼을 했고, 여동생 숙희씨는 익산에서 풍년제과를 운영했다. 도란도란 가족경영의 형태가 갖춰졌다. 정규직 직원만 40명이 넘었다. 1978년 본점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고 현희씨가 본격적으로 운영에 뛰어들었다.

성공한 맛집에 우울한 전조는 가족의 균열이다. 현희씨보다 5살 위였던 매형 김씨는 70년대 말 독립을 해서 1984년에 상표·서비스표권 등록을 자신의 이름으로 특허청에 냈다. 전국 단위로 프랜차이즈를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절차다. 사업상 중요한 권리다. 그는 사업을 확장했다. 직영점 2개, 체인점 10개 이상이 김씨의 주도하에 생겼다. 그는 제과 전문가답게 새로운 빵도 개발하고 공장도 증축했다. 체인점은 늘어만 갔다. 1997년 부랴부랴 현희씨는 특허청에 ‘피엔비’(PNB)를 상표·서비스표권 등록을 했다. 이 와중에 큰 기업의 프랜차이즈 빵집은 들어올 틈이 없었다. 현희씨도 제과점 두곳을 열어 아들들이 경영하도록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익이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손님들로 북적대는 피엔비 풍년제과.
손님들로 북적대는 피엔비 풍년제과.
2000년대 들어서서 김씨가 내준 체인점의 관리가 어려워졌다. 버스 정거장마다 풍년제과가 보인다는 소리가 떠돌았다. 수익을 서로 뺏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름만 같을 뿐 체인점마다 맛이 다르다는 전주시민들의 평이 잇달았다. 체인점 중에는 마진이 떨어지니 재료비를 아끼는 곳도 생겼다. 맛은 더 떨어졌다. 김씨는 도내에 40여개 가맹점을 열 계획을 발표하고 점포 주인들과 공동 출자해 공장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2006년에 돌연 문을 닫았다. 큰 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이때부터 전주에 입점했다. 이즈음에 김씨는 전남 광주의 한 케이크 업체에 상표·서비스표권을 팔았다. 업체 주인은 이듬해 현희씨와 ‘풍년제과’란 상호를 사용하는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했다. 판사의 중재로 현희씨가 운영하는 현재 본점에서 ‘피엔비(PNB) 풍년제과’를 쓸 수 있게 됐다.

현희씨의 피엔비 풍년제과는 매달 적자였다. 직원을 7명까지 줄였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투박하고 못생긴 초코파이가 대박을 쳤다. 3년 전 전주 한옥마을에 여행 온 이들이 맛을 보고 ‘신기하다’, ‘재미있다’는 평을 인터넷에 올렸다. 전주시민들은 관심도 없던 초코파이가 외지인들을 사로잡았다. 제과점의 위치도 한몫했다.

전주시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주를 찾은 이들 710만여명 중 493만여명이 한옥마을을 찾았다고 한다. 제과점은 한옥마을에서 걸어서 9분 거리다. 피엔비의 초코파이는 과자와 빵의 중간 정도 질감이다. 호두 맛이 속에서 씹히고 크림과 초콜릿이 넉넉하다. 초코파이는 하루 1000~4000개가 팔린다. 한개에 1600원이다. “센베이를 꾸준히 지킨 것과 3년만 버텨 보자, 결심한 것도 이유가 돼요.” 권씨의 말이다. 성공 비결에는 어려운 시절 서로 보듬어 안은 부부애가 있다.

요즘에는 센베이도 하루 200~400봉지가 나간다. 미국에서 2년간 조리학을 공부한 둘째 아들 지웅(41)씨가 지금 센베이 제조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앞으로 이곳은 큰아들 철웅(43)씨가 대를 이을 계획이다. 정문씨는 101살에 작고했다. 현희씨는 지금도 아버지가 종종 그립다. 60여년 전통을 자랑하는 피엔비 풍년제과의 현희씨 부부는 “3대를 넘어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전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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