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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저는 오줌싸개였습니다. 네댓살도 아닌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아닌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보통의 도시 주택들에 보일러는 없을망정 수세식 화장실이 대부분 설치돼 있었더랬죠. 반면 학교나 공원 같은 공공시설은 여전히 재래식 화장실 일색이었습니다.
국민학교 입학했을 때 겪었던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이 화장실이었습니다. 추워도 깨끗한 집 화장실과 달리 어둡고 냄새나며 지저분한 학교 화장실은 일곱살 어린이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요. 4교시를 참다 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디 골목 구석에서 바지 벗고 쭈그려 앉을 용기도 없던 저는 그냥 터덜터덜 걸으면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오줌을 싸곤 했더랬죠. 어린 마음에 축축이 젖은 바지를 가린다고 신발주머니로 엉덩이 쪽을 가렸지만 그게 티가 나지 않을 리 있나요. 한두번 사고를 치다 보니 나중에는 그냥 집에 가서 옷 갈아입으면 되지 하는 느긋한 마음까지 먹게 되더군요. 그래서 억울하게도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던 저의 별명은 똘똘이, 전교 1등 이런 게 아니라 오줌싸개였답니다.
그때는 제가 아니라도 반에 한두명씩은 오줌싸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오줌을 싸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어린 시절 봤던 그 컴컴하고 더러운 화장실에서는 어쩐지 귀신이 나올 것만 같습니다. 요즘은 학교에 이런 아이들도, 이런 별명도 없어졌을 듯합니다. 아예 재래식 화장실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나는 아이들도 제법 있습니다. 최근엔 수세식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라 가족 화장실을 만들어 아이들 키에 맞는 변기를 설치한 백화점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도시 농부들 사이에서 옛날 뒷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고 하지만 저는 화장실만은 무조건 편리한 게 좋습니다. 이것만은 양보 못해요.
김은형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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