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옷감에 일일이 손으로 꽃을 그려넣는 ‘핸드드로잉’ 장면.(이새 제공)
[esc]커버스토리
고급 의상·스카프
직접 그린 정교한
꽃무늬를 수작업 인쇄
유명작가들과 협업도 스타킹 등 입체적 디자인
패턴의 연결성 까다로워
그릇 꽃문양 완성 위해
4번 구워 내기도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해온 패션 브랜드들은 올해 봄여름을 겨냥해 꽃무늬가 돋보이는 블라우스와 스카프류, 그리고 티셔츠와 가방을 다수 선보였다. 자수, 스티치, 프린트처럼 다양한 기법을 쓰고 있지만, 그중 가장 한국적인 멋이 돋보이는 것이 붓터치의 꽃무늬다. 최근 서울 인사동 중심의 다양한 우리옷 브랜드에서 이처럼 모란·국화 등 송이가 큰 꽃들을 붓으로 그려내 프린팅한 제품들을 다수 쇼윈도에 전시하고 있다.
정교한 꽃무늬는 기계로 프린트해 대량생산하지 않고, 직접 천에다 하나하나 손으로 그림을 그려내기도 한다. 친환경주의 국내 패션브랜드 이새는 최근 티셔츠와 가방류에 디자이너의 ‘핸드드로잉’을 적용한 상품군을 내놓았다. 매번 직접 그린 그림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모두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이 된다. 비단 같은 소재에 그림을 그리면 번짐 등 때문에 쉽지 않아, 면으로 만든 티셔츠류 등 일부에만 적용하고 있다. 찍어내지 못하는 옷이니만큼 소량생산에 그쳐 이번 시즌에 티셔츠는 260벌, 가방은 50개만 만들어 내놓았다. 이새 소재개발실 성경주 실장은 “손그림으로 꽃을 그릴 땐 꽃잎의 색감과 모양을 나타낼 때 번짐이 적게 하면서도 농담을 살리고, 가는 줄기의 우아한 곡선을 살리는 데도 섬세하게 작업해야 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달 초 한국에서 첫선을 보인 구치의 ‘아티잔 코너’를 위해 서울을 찾은 이탈리아 피렌체 실크 장인은 도화지에 물감으로 꽃그림 그리는 과정을 손수 보여주기도 했다. 장인이 손그림을 그린 뒤 인쇄용 젤리판을 놓고 빛을 투과시켜 음각판을 만든다. 그 뒤 여러 장의 필름을 다시 찍어낸 뒤 실크스크린을 여러 번 하는 과정을 거친다. 구치의 플로라 패턴에는 33~37가지 색이 들어가는데, 그 색깔을 만들기 위해 실크스크린을 무려 30~40번에 걸쳐 뜨게 된다. 원단이 나오면 한장 한장 바느질로 장인이 끝단을 처리해 마무리한다. 구식 같지만, 섬세한 수작업 공정을 거쳐야 실크 위에 선명하고 질 좋은 색감과 느낌의 프린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꽃무늬 패턴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은 여러 송이의 꽃을 배열하면서 또다른 고민을 하게 된다. 꽃과 이파리가 어울려 나타나는 색깔과 형태의 조화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패턴 디자인 업체 ‘나인글로리’의 무늬디자이너 권병섭씨는 “완성되는 제품에 맞게 생각하고 그려야 하기 때문에 조각보로 쓰이는 퀼트지를 만들 때는 어디서 잘라봐도 예쁜 잔꽃을, 이불 같은 패브릭류는 큰 꽃을 그린다. 제품에 따라 무늬의 쓰임새가 다르고 이를 생각해가며 배열하는 과정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손그림이 아니라 실로 천 조직을 일일이 짜내면서 입체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스타킹 같은 제품은 꽃 패턴을 만들 때 그림이 연결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제 제작까지 기계화가 많이 돼 있지만 디자인이 나온 뒤 원사 배합이나 바늘의 교차지점 등을 일일이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영비비안에서 1978년부터 스타킹을 개발해온 남영스타킹 조덕환 차장은 “1983년 회사에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패턴 기계가 들어오면서 스타킹에 꽃무늬를 그리기 시작했다. 예전엔 단순한 무늬만 그렸다가 이 기계를 쓰면서 다양한 식물과 꽃 패턴을 제작해왔다”고 말했다. 다리 전체를 감싸는 넝쿨 같은 꽃무늬 패턴 스타킹은 특히 제작과정이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원하는 꽃무늬를 그려서 원단을 인쇄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실을 일일이 조직해 패턴을 만들어 메시조직을 짜면서 스타킹 한장의 원통을 이어야 한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패턴 기계의 바늘 수는 총 400개다. 이 바늘들이 컴퓨터로 입력한 바에 따라 위아래로 움직여 조직을 짜면서 그림을 그리는데, 스타킹은 평면이 아니라 360도 원통이기 때문에 꽃잎이나 줄기의 이어짐 등이 전후좌우 다 들어맞아야 한다. 조 차장은 “예전에는 모눈종이에 그림을 그려 원사의 코수를 일일이 그리고, 샘플을 잘라서 그림을 이어보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바늘 코수도 세어보곤 했다”고 말했다.
자기 등 그릇류에 꽃그림을 그려넣는 디자이너들에게는 또다른 ‘숙제’가 있다. 색감의 표현이다. 그릇은 흙과 불의 조화이니만큼, 여러 번 가마에 넣어 구워내는 과정에 따라 꽃의 색깔이나 느낌도 매우 달라진다. 행남자기 디자인실 정혜정 과장은 “수채화 물감으로 종이에다 꽃그림을 그려서 스캔을 받은 뒤, 다시 컴퓨터그래픽을 얹어서 병행한다. 꽃무늬 모티브만 쓸 땐 컴퓨터 작업으로만 하는 경우가 있지만, 수작업도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제품 가운데 80%가량에 꽃무늬가 들어간다. 가마에 반드시 구워야 하는 자기의 특징 때문에 특수 안료를 사용한 그림이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좀더 밝아지거나 연해지는 경우가 있다. 평균 1200도의 가마에 10시간 이상 구워내지만, 원하는 색감을 낼 때는 온도를 낮춰 불을 때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초벌과 재벌까지 구운 그릇에 유약을 처리하고 전사지를 댄 뒤 프린팅해 다시 한번 그림을 수정한 뒤, 금색 선을 두르고 한번 더 구워 총 4번 구울 때가 많다. 그만큼 원화에 가깝도록 색채 구현에 장인정신을 기울여야 원하는 색깔이 나온다는 것이다.
최근 행남자기와 협업을 진행한 아티스트 신미래씨는 꽃과 사람의 만남을 주로 그려왔는데, 작품은 티셔츠 등 패션 아이템이나 가수의 음반 시디 케이스, 텀블러에도 쓰였다. 그의 전시회를 보러 온 회사 쪽 관계자의 눈에 띄어 협업을 진행하게 됐다. 그의 작품은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일러스트의 느낌으로 보라색이나 형광색 계열을 가미해 환상적인 분위기가 물씬 난다. 몽환적이고 아스라한 상상 속 이미지 덕에 실제 꽃보다 상상화에 가깝다. 제품 속에 또다른 ‘작품’을 만들어 넣는 셈이다. 그는 “아크릴 물감을 주로 써서 원화를 그리고 컴퓨터 작업도 하지만, 최근에는 100% 수작업을 많이 했다. 앞으로는 스카프 패턴 디자인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직접 그린 정교한
꽃무늬를 수작업 인쇄
유명작가들과 협업도 스타킹 등 입체적 디자인
패턴의 연결성 까다로워
그릇 꽃문양 완성 위해
4번 구워 내기도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현대 감각으로 재해석해온 패션 브랜드들은 올해 봄여름을 겨냥해 꽃무늬가 돋보이는 블라우스와 스카프류, 그리고 티셔츠와 가방을 다수 선보였다. 자수, 스티치, 프린트처럼 다양한 기법을 쓰고 있지만, 그중 가장 한국적인 멋이 돋보이는 것이 붓터치의 꽃무늬다. 최근 서울 인사동 중심의 다양한 우리옷 브랜드에서 이처럼 모란·국화 등 송이가 큰 꽃들을 붓으로 그려내 프린팅한 제품들을 다수 쇼윈도에 전시하고 있다.
2. 이달 초 서울을 찾은 구치의 실크 장인들.
3. 스타킹 제작 때 큰 꽃무늬는 가장 난도가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남영비비안 제공)
4. 아티스트가 그린 꽃무늬를 적용한 자기제품.(행남자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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