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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시대 효리의 카리스마를 입다

등록 2013-05-15 18:31

가수 이효리
가수 이효리
[esc]스타일
‘미스코리아’ 뮤직비디오
헵번, 드뇌브, 트위기 등
60년대 패셔니스타 향한
오마주 향연

복고적 섹시함에
당당한 현대적 여성상 결합
아름다움에 대한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

이효리가 돌아왔다. 지난 6일 낮 12시 공개한 ‘미스코리아’ 뮤직비디오는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마음을 건드리는 음악뿐 아니라,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는 듯한 자전적인 가사, 패션 스타일 면에서도 복고풍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15일 공개한 5집 타이틀곡 ‘배드 걸스’ 티저영상에서는 ‘나쁜 여자’ 콘셉트를 갖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귀환한 그를 만날 수 있다.

가수 이효리
가수 이효리
‘핑클’의 요정에서 솔로로 독립한 뒤 ‘한국 최고 패셔니스타’라는 호칭을 10년 넘게 유지해온 그다. 그러나 그는 변했다. 동물권리와 생명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면서 <녹색평론>과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구독했다. 붉은 고기와 치즈를 먹지 않는 채식을 실천하면서 모피 옷을 입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기부하고, 가죽 가방 대신 천 가방을 멨으며, 기타를 들고 어쿠스틱 음악을 선보였다. 이런 삶의 변화는 이효리가 이제 유행을 이끄는 ‘트렌드 세터’의 자리에서 물러나려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켰다. 물론 면 티에 청바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이 신선하긴 했지만, 무대 위에서 화려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면 그 또한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섹시한 언니’로 돌아왔다. ‘미스코리아’ 뮤직비디오에 나타난 흑백 화면을 보면, 반짝반짝 지나치게 화려한 옷이나 액세서리가 돋보이진 않지만 충분히 강렬한 이미지가 도드라진다. 명품 백이나 성형수술을 좇는 또 다른 ‘미스코리아’(일반 한국 여성)들에게는 “자고 나면 사라지는 그깟 봄 신기루에 매달려 더 이상 울고 싶진 않아”라고 자신의 경험을 빗대 충고했다. 이번 뮤직비디오를 만든 차은택 감독은 “명품 가방은 장식적인 백이 아니라 여자의 큰 짐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지구처럼 보이도록 크게 만들었다. 성형에 대한 이미지 또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찔릴 수 있는 위협적인 성형도구들 사이에 갇혀 있는 이효리의 얼굴을 통해 여성들의 욕망과 구조를 재밌고 가볍게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패션과 화장은 1960년대 복고풍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효리의 소속사 비투엠엔터테인먼트 쪽은 “앨범 제목이 ‘모노크롬’(흑백)이기 때문에 흑백 티브이나 사진을 떠올릴 수 있는 복고풍을 콘셉트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이효리의 스타일링을 오랫동안 맡아온 런던프라이드 정보윤 대표는 “이번 봄·여름 트렌드인 1960년대 룩을 반영했다”며 “이효리씨 본인 또한 이 시대를 재밌어했고, 그가 몇년 동안 추구해온 아날로그적인 감수성도 현란함에 길들여진 대중의 눈을 쉬게 할 수 있는 흑백의 복고풍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1960년대는 반전평화운동의 시대이자 록·포크 음악과 패션·뷰티의 전성시대였다. 말라깽이 모델 트위기와 에디 세지윅이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아이라인을 짙게 그리는 화장법이 유행이었다. ‘미스코리아’ 뮤직비디오 속 이효리가 보여주는 화장도 눈을 강조했다.

가수 이효리
가수 이효리

에스티로더의 글로벌 메이크업 아티스트 알렉스 조는 “이번 이효리씨의 화장법은 흑백이니만큼 컬러감보다 라인이 강조됐고, 옆으로 넓어지는 화장법은 특히나 눈의 좌우 폭이 좁은 한국 여성들에게 매우 잘 어울린다. 위아래를 강조한 아이라인보다 더 자연스럽게 눈이 커 보이면서 얼굴이 크게 달라져 보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검고 커다란 챙모자, 부풀린 머리 등은 옛날 여배우들의 패션과 닮아 있다. 패션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블레이크 에드워즈 감독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나온 것이 1961년이다. 여기서 오드리 헵번이 입은 지방시 검정 드레스와 커다란 검은 모자는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변주되는 스타일 가운데 하나다. 자크 드미의 <셰르부르의 우산>(1964)에서 카트린 드뇌브는 뒤통수를 강조하고 옆을 붙인 헤어스타일로 아름다운 금발 아가씨의 매혹적인 모습을 선보여 1960년대 스타일을 완성했다. 정 대표는 “딱히 외국 배우 가운데 누군가를 참조한 건 아니고, 그보다는 나중에 보니 정윤희를 비롯한 옛날 한국 트로이카 여배우들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고 말했다.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씨는 “이효리씨의 ‘미스코리아’ 뮤직비디오는 1960년대 여배우들의 메이크업 패턴 등을 더욱 과감하게 표현했다. 머리도 윗부분을 부풀리고 옆부분을 붙여 뒤로 길게 떨어지는 등 복고풍 이미지가 난다”고 말했다. 또 “일반인들이 이런 화장법을 표현할 때는 아이라인의 두께를 조절하거나, 윗부분만 라인을 그린다든지 해서 조금은 정돈해서 표현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3집 ‘유고걸’에서 화려한 모습을 선보인 이효리(왼쪽)는 몇년 전부터 동물보호 활동에 관심을 가지며 서서히 변화했다.
3집 ‘유고걸’에서 화려한 모습을 선보인 이효리(왼쪽)는 몇년 전부터 동물보호 활동에 관심을 가지며 서서히 변화했다.
그러나 복고를 재현하는 것만이 이번 스타일의 전부는 아니었다. 젊은이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현대적인 감각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김성일씨는 “너무 그 시대만 집중해서 푹 빠졌더라면 고루하고 지루해 보였을 텐데, 이효리의 당당하고 현대적인 여성상의 이미지와 복고적인 섹시함이 잘 맞아서 너무도 잘 어울리게 표현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차은택 감독도 “스타일리스트가 복고풍을 모던하게 표현하는 의상을 여러벌 가져다주었지만, 보는 것과 입은 느낌은 정말 달랐다. 스타일링에 대해서는 효리씨가 거의 천재적인 자질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노래들에서는 더욱 화려하고 확 달라진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미애 백제예술대학교 모델학과 교수(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최근까지 패션 스타일 유행은 화려함이 너무 지나친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복고풍은 이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며 “오늘을 살아가는 30대 이상의 한국인들은 행복하지 않은 상황 가운데 고단함과 외로움이 매우 커 옛날을 돌이키며 향수와 편안한 마음을 느끼기 때문에 복고풍 유행 경향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옥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이효리씨의 변화를 미뤄 짐작할 때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보이는 수영복 차림 등은 여성의 몸을 도구화했다기보다 오히려 패러디적인 요소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정치적 발언이자 동시에 타인에 대한 말 걸기”라고 분석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사진제공 비투엠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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