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간엔 정원에서 바라본 사쿠라지마 화산의 분화 활동.
[매거진 esc] 여행
대규모 화산지대의 독특한 자연경관과 다채로운 온천으로 여행자 부르는 일본 가고시마
대규모 화산지대의 독특한 자연경관과 다채로운 온천으로 여행자 부르는 일본 가고시마
가고시마는 일본 남쪽 섬 규슈에서도 맨 아래쪽에 자리잡은 따뜻한 남쪽 동네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와 비교하면 한적하고 소박한 이 도시에 지난 8월 전세계의 시선이 모였다. 지척에 있는 사쿠라지마섬 화산이 60년 만의 대규모 폭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화산재로 뿌예진 지역 사진을 보며 어떤 이들은 쓰나미 같은 재앙을 떠올리기도 했다.
지난 10월 말 찾은 가고시마는 여전히 화산의 도시였다. 멀리 보이는 사쿠라지마 화산의 어깨쯤에서는 한나절에도 여러번 연기가 솟구친다. 이렇게 1년이면 1000회 정도 분화활동을 한다니 이곳 사람들에게 화산은 일상인 셈이다. 그리고 여행자들에게는 특별한 볼거리다. 가을 단풍이 들기 직전 가고시마의 탁 트인 자연경관과 뜨끈한 온천을 체험했다.
기리시마 에비노 고원과 규슈올레 트레킹
가고시마는 언뜻 제주를 닮았다. 코앞에는 바다가 보이고 높은 산과 숲들이 지척에 있다. 제주보다 낮은 위도에 위치해 조금 더 포근하다. 가고시마 공항에서 30분 정도 차로 달리면 도착하는 기리시마 에비노 고원은 산을 좋아하는 한국 여행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다. 이전의 화산활동으로 정상 부분이 움푹 들어간 봉우리가 한라산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런 봉우리가 무려 20여개나 모여 있다. 크고 작은 칼데라호도 10개나 품고 있다. 이 스케일과 사철 아름다운 풍경 덕에 1934년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1700m 높이의 최고봉은 가라쿠니다케, 한자로 한국악(韓國岳)이다. 한국악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날이 좋으면 이 봉우리에서 한국이 보인다는 설이 있긴 한데 그러기에는 한국과의 거리나 봉우리 크기가 터무니없긴 하다. 해발 1200m의 공원 입구까지 꼬불꼬불 차를 타고 가는 길에는 아름다운 삼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또 공원 들머리 주변에는 유황온천의 하얀 김이 여기저기서 올라온다. 등산을 하고 내려온 사람들이 온천을 하면서 피로를 풀 수 있는 숙박시설들이 많이 보인다.
유카타 차림으로 바닷가로 나오니
사람들을 ‘파묻고’ 있다
얼굴만 내놓은 채 모래구덩이에
폭 파묻혀 누워있으면
서서히 뜨끈한 기운이 올라온다 트레킹을 즐길 만한 지역으로 규슈올레도 있다. 2012년 초 처음 선보인 규슈올레는 알려져 있다시피 제주 올레길을 벤치마킹한 걷기 코스다. 4개 현에 한 코스씩 있는데 가고시마현에는 이부스키에 가이몬 코스가 있다. 20.4㎞에 달하는 규슈올레 최장 코스인데 길 초입의 나가사키바나 해안은 갈고리처럼 갈라진 가고시마 지형의 한쪽 갈고리 끝이다. 그러니까 일본의 땅끝마을 같은 곳이다. 전체 길을 완주하려면 6~7시간이나 걸리지만 중간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기도 좋은 게 올레의 장점인지라 해안과 소나무숲만 한두시간 정도 따라가보는 것도 괜찮다.
파도소리 들으며 검은모래찜질 온천
이부스키의 규슈올레를 즐겼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마무리 코스는 검은모래찜질 온천이다. 일본은 온천으로 워낙 유명하지만 천연 모래찜질 온천은 가고시마에서만 즐길 수 있다. 숙박업소마다 모래찜질 온천을 운영하고 있는데 바닷가에 있는 ‘오리지널’ 모래찜질을 꼭 즐겨봐야 한다.
‘사라쿠’라는 이름의 온천은 일종의 대중목욕탕인데 역과 숙박시설들에서 가까워 가장 인기가 많다. 탈의실에서 유카타로 갈아입고 바닷가로 나오면 천막 아래 건장한 사내들이 사람들을 ‘파묻고’ 있다. 순서를 기다려 오목하게 파인 자리에 누우면 순식간에 모래에 파묻힌다. 얼굴만 빼꼼히 내놓은 채 굵기가 다소 굵은 검은 모래에 폭 파묻혀 누워 있으면 서서히 뜨끈한 기운이 올라온다. 5분 정도 지나면 몸이 노곤노곤해지며 잠이 온다. 안내문에는 10~15분 정도 들어가 있는 게 가장 효과가 좋다고 하는데 워낙에 ‘지지는’ 걸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한시간씩 버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모래를 털고 나와 샤워를 한 뒤 따끈한 온천물에 한번 더 몸을 담갔다가 나온다. 호텔에서 운영하는 모래찜질 온천들은 자연 지열이 아니라 전기를 통해 바닥을 덥혀서 찜질을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금방 몸이 더워지기는 하지만 은근한 맛은 없다.
이 밖에도 가고시마는 일본의 2대 온천 수원지로 어디를 가도 온천을 즐길 수 있다. 벳푸나 유후인보다는 외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물이 좋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온천을 즐기는 시간이야 자유지만 아침 일찍 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멀리 사쿠라지마에서 해가 떠오르는 걸 보는 게 압권이다. 또한 가고시마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족욕탕을 발견할 수 있다. 사쿠라지마섬 초입의 용암해안공원에는 전체 길이가 100m나 되는 족욕탕이 있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올려 발을 담그면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족욕탕이 좋은 건 모두 공짜다!
고구마, 소주, 흑돼지 삼종 별미
가고시마와 제주도의 공통점에는 먹거리도 있다. 바로 흑돼지다. 가고시마의 추천 먹거리 1등은 단연 흑돼지다. 흑돼지는 가고시마에서 개발한 일종의 지역 브랜드인 셈인데 400년 전 오키나와에서 처음으로 돼지를 들여온 뒤 육질을 개선시키기 위해 꾸준히 종자 개량을 해왔다고 한다. 특히 돼지고기 우린 국물에 살짝 데쳐 먹는 흑돼지샤브샤브는 이 고장의 최고 별미다. 부드러운 육질에 감칠맛이 특징. 닭고기회 역시 이 지역에서만 즐길 수 있는 명물로 껍질 쪽만 아주 살짝 구운 생닭고기를 얇게 썰어 생강간장에 찍어 먹는다.
흑돼지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건 ‘사쓰마이모’다. 사쓰마는 가고시마의 옛 이름. 이모는 고구마다. 어딜 가나 고구마튀김을 팔고 일본식 화과자 안에도 고구마소가 들어 있다. 고구마튀김은 여기서도 길거리 음식인데 육질 때문인지 튀김기술 덕인지 한국의 길거리 음식인 고구마튀김보다 훨씬 부드럽고 달콤한 맛은 더 강하다. 고구마로 만든 소주도 인기다. 사케가 일본 북쪽 지역의 술이라면 남쪽에서는 소주를 먹는데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소주에 대한 지역 사람들의 자부심이 얼마나 강한지 현지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가고시마 소주를 마시면 심장이 튼튼해지고 혈압도 떨어지며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맑고 기운이 난다”고 자랑한다. 정말? 정색했더니 너무 많이 마시면 그래도 힘들다고 씩 웃는다.
가고시마/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람들을 ‘파묻고’ 있다
얼굴만 내놓은 채 모래구덩이에
폭 파묻혀 누워있으면
서서히 뜨끈한 기운이 올라온다 트레킹을 즐길 만한 지역으로 규슈올레도 있다. 2012년 초 처음 선보인 규슈올레는 알려져 있다시피 제주 올레길을 벤치마킹한 걷기 코스다. 4개 현에 한 코스씩 있는데 가고시마현에는 이부스키에 가이몬 코스가 있다. 20.4㎞에 달하는 규슈올레 최장 코스인데 길 초입의 나가사키바나 해안은 갈고리처럼 갈라진 가고시마 지형의 한쪽 갈고리 끝이다. 그러니까 일본의 땅끝마을 같은 곳이다. 전체 길을 완주하려면 6~7시간이나 걸리지만 중간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기도 좋은 게 올레의 장점인지라 해안과 소나무숲만 한두시간 정도 따라가보는 것도 괜찮다.
규슈올레 중 하나인 가이몬 코스의 나가사키바나에서 만난 올레길 안내표시. 제주올레의 것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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