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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우 거리를 아십니까

등록 2014-03-26 19:57수정 2014-03-27 15:49

해질녘 문오리. 오리고기와 문어를 섞어 끓인 ‘문오리’(4만~6만원)가 인기.
해질녘 문오리. 오리고기와 문어를 섞어 끓인 ‘문오리’(4만~6만원)가 인기.
[매거진 esc] 요리
이태원 경리단길 뒷골목에 식당·카페·빵집 등 아이디어 번뜩이는 매장 5곳 열고 4곳 더 준비중인 20대 청년 장진우 스토리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13가길. 경리단길을 등진 소박한 뒷골목이지만 경리단길의 호황 따위는 부럽지 않다. 지금 멋쟁이 식도락가들은 이 골목을 찾는다. 주말이면 삼삼오오 짝을 이룬 20~30대가 골목을 메운다. 이름도 생겼다. 찾는 이들은 ‘장진우 거리’라 뭉뚱그려 부른다. 장진우. 낯설다. 유명한 연예인도 아니고 나라를 구한 애국지사는 더더욱 아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인적이 드물었던 이 골목에 3년 전 ‘장진우 식당’이 생겼다. 원테이블 레스토랑인 장진우 식당은 큰 인기를 얻었다. 뒤이어 장진우 다방, 방범포차, 문오리, 프랭크, 그랑블루가 문을 열었다. 모두 장진우(28)씨가 연 맛집들이다. 장진우 다방은 지금 없어졌지만 조만간 장진우 스시, 경성스테이크, 카페 프랭크, 프랭크팩토리도 오픈 예정이다. 일부는 동업했지만 모두 장진우씨의 손을 탄 곳들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장진우 거리’, ‘장진우 사단’이란 말이 생겼다.

3년 전 원테이블 식당
인기 얻으며 주변 가게들 임차해
포차, 제주 음식점, 재즈 비스트로 등
줄줄이 열면서 거리 별명 얻어
자신의 취향 녹인 게스트하우스
‘장진우 호텔’도 오픈 예정

지난 21일 한창 공사 중인 경성스테이크에서 만난 장씨는 여느 20대 젊은이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본래 그의 직업은 상업사진가다. 빙그레, 삼성전자, 네이버 등과 작업을 했다. 대학에서는 국악을 전공하고 사진을 부전공했으나 한 학기를 남겨두고 “시간이 없어서” 졸업을 못 했다. 그는 스스로 대식가이자 미식가라고 말한다. 요리가 취미다. 장진우 식당의 메뉴도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구성했다. “짜파게티가 가장 인기였어요.” 지금은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 고용한 이들이 솜씨를 발휘하면 맛보고 방향만 제시한다.

장진우씨.
장진우씨.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13가길 들머리에는 맛집들의 간판이 있다.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 13가길 들머리에는 맛집들의 간판이 있다.

“장진우 식당, 내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도 했는데, 나도 내 공간을 만들고 싶어졌죠. 공간을 만드니 음식이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찾아온 이들이 붙였어요.” 지금도 장진우 식당은 간판이 없다. “(빈) 공간이 나오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게 제 직업입니다.” 그는 공간마다 ‘자기만의 해석’을 붙였다. 문어와 오리고기를 섞은 전골이 메뉴인 문오리는 그가 해석한 제주도다. “제주도 너무 좋아요. 80%가 조금 슴슴한 전라도 맛이에요. 전라도 사람들은 여러 재료를 섞어 맛을 만들죠.” 오리와 통영산 문어를 섞어 끓인 전골은 입소문이 났다.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걸로 만드는 게 제주도 음식이라 생각합니다.” 반찬은 제주도산 식재료로 만든다. 리소토나 파스타가 차림표에 나오는 그랑블루는 재즈 비스트로라고 못박는다. ‘맛’이 아니라 ‘음악’이 주인공이다. “데이트 장소가 라이브 재즈바가 되는 게 싫어요. 재즈바 가보면 재즈 뮤지션들이 기량만큼 연주 안 하더군요. ‘너는 연주해라, 나는 밥 먹는다’ 식 분위기 때문이에요. 식사를 위한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위한 식사가 돼야 합니다.” 그랑블루는 일주일에 두세번 공연을 하는데, 연주가 시작되면 레스토랑을 나가지도 못하고 주문도 할 수 없다. 촛농이 쭉쭉 늘어지는 초와 나무식탁, 높은 천장은 마치 중세의 고성에 온 기분이 든다.

그랑블루의 실내
그랑블루의 실내

‘통오징어먹물리조또’(2만2000원).
‘통오징어먹물리조또’(2만2000원).

동업자의 이름에서 따온 빵집 프랭크도 그만의 삐딱한 세계관(?)이 만든 작품이다. “충격적인 사건”이 계기가 됐다. “유명한 패션 피플의 파티에 초대돼서 갔어요.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3명이나 같은 집의 케이크를 사 왔더라고요. 획일화된 문화가 싫어요. 오가닉을 마케팅 수단으로 내세우는 이들도 싫습니다.” 프랭크의 인기 메뉴 무지개롤빵은 보란 듯이 식용색소로 치장해 화려하다. “유기농 밀가루 쓰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맥주를 파는 점도 독특하다. 방범포차는 형무소가 콘셉트다. 창살 안에서 조개찜과 삶은 돼지수육이 나온다. 걸려 있는 형광봉과 어둑한 실내조명은 술꾼들을 부른다. 파티전문업체의 대표 이동훈씨와 영화 <공공의 적>, <이끼> 등의 미술감독을 한 이태훈씨와의 합작품이다. “태훈이 형은 형사물 전문이죠. 우리가 술 마시는 데 쓰는 돈 아껴서 만들자고 했어요.(웃음)” 그야말로 그는 잘 노는 사람이다.
방범포차의 ‘한보따리 조개찜’(3만5000원).
방범포차의 ‘한보따리 조개찜’(3만5000원).

식당들은 하나같이 넓지 않다. 일반적으로 레스토랑 하나가 대박을 치면 벽을 트고 분점을 낸다. “재미없어요. 문오리는 열고 3개월 동안 저녁에 늘 만석이죠. 지점을 내달라는 사람도 많은데, 그렇게 했으면 돈을 많이 벌었겠지만 그건 아니죠. 양식, 일식, 한식,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이 정도면 돈을 꽤나 벌었을 성싶다. “많이 물어요. 아닙니다. 우리는 다 작아요. 실질적으로 돈을 벌 구조가 아닌 거죠. 사진 찍어 번 돈 500만원으로 시작해서 또 벌면 식당 열고 또 벌면 식당 열었어요.”

그는 30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시이오다. 감각적인 아티스트인 그의 감성 뒤에는 치밀함도 숨어 있다. “장진우 다방은 식당이 성공하면서 ‘장진우’를 브랜드화하고 세상에 더 알리기 위해서 만든 거예요. 전 자유로운 영혼 절대 아닙니다. 치밀한 천재가 있는가 하면 본능에 충실한 천재가 있는데 굳이 따지자면 저는 후잡니다.” 그의 성공은 빠른 실행력에 있다. 감이 와서 결정을 하면 바로 다음날 계약을 하고 몇 주 만에 가게를 연다. 빵기술도 가르칠 프랭크팩토리, “추천 음악 100선” 같은 노랫가락 대신 그의 취향을 담뿍 담은 프렌치팝이 나올 프랭크카페, 구한말의 스테이크를 접시에 담아낼 경성스테이크도 그의 추진력이 원동력이 돼 열 가게들이다. 이태원역 주변에 ‘장진우 호텔’도 곧 연다. 명칭이 호텔일 뿐 그의 “100% 취향”을 녹인 게스트하우스다.

빵집 프랭크에서 맥주를 사 먹는 젊은이들.
빵집 프랭크에서 맥주를 사 먹는 젊은이들.

무지개롤빵(1만2000원). 녹차앙금빵, 바게트 등도 찾는 이가 많다.
무지개롤빵(1만2000원). 녹차앙금빵, 바게트 등도 찾는 이가 많다.

“문화가 발전하기도 전에 기업이 발달했어요. 돈만 많이 번 겁니다. 돈을 멋있게 쓰는 법을 몰라요. 먹고살 만하니깐 (문화 얘기나 하고) 그러는 거다 하는데 먹고살 만하니깐 그래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까지 휴전국이다 뭐다 그런 거에 매달려 살 수 없잖아요.”

저녁 무렵이면 거리를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는 장씨를 만난다. 여전히 사진가라는 그는 서퍼나 어부처럼 바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이들을 프레임에 넣은 사진을 찍는다. 넓은 바다 풍경에 사람이 점처럼 박혀 있다.

“박수 칠 때 떠났으면 좋겠어요. 떠나서 더 재밌는 거 하고 싶어요.”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새로운 직업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가 이번에는 어떤 가게를 열까 궁금해한다. “부담이 되죠. 가수가 앨범을 내듯이 진우는 가게를 냅니다.(웃음)”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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