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덕수궁길에 위치한 콩두. 박미향 기자(맨 왼쪽), 이지민(가운데), 쵸키가 모여 음주방담을 하고 있다.
[매거진 esc] 요리
다양한 술 탐험 뒤 전통주에 빠져 페이스북에 술만화 ‘대동여주도’ 연재하는 이지민·쵸키 작가와의 음주방담
다양한 술 탐험 뒤 전통주에 빠져 페이스북에 술만화 ‘대동여주도’ 연재하는 이지민·쵸키 작가와의 음주방담
지난 4월부터 포털 다음에 연재를 시작한 웹툰 ‘술도녀’(술꾼도시처녀들)는 애주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운 술이라는 소재도 비결이었지만 웹툰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인 점도 한몫했다. 지난 8월 페이스북을 통해 재밌는 술 관련 만화가 퍼졌다. 문패는 ‘대동여주도’(www.facebook.com/drinksool). 홍보 일을 하는 이지민씨와 직장인인 동시에 만화가로 활동하는 쵸키(필명)가 뭉쳐 제작한 만화다. 이 둘은 30대 여성으로 온갖 술을 탐험하고 최근엔 전통술에 반한 터다. 이지민씨는 “5월 전통주 명인 투어를 취미 삼아 갔다가 맛보고 정말 좋았다”고 말한다. 그 맛에 반해 명인들이 요청한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전통주를 소개하는 ‘대동여주도’를 만들었다. 이들과 지난 18일 석양주를 마시면서 음주 토크를 나눴다.
쵸키 음주 토크를 한다니 <음주가무연구소>(니노미야 도모코 지음)를 보라는 이들이 많았어요. 그 만화도 술꾼 여자가 주인공이죠.
기자 그 만화의 재미는 술 마시고 사고 친 얘기들이잖아요. 그런 일 없었나요?
쵸키 무궁무진하죠. 최근에 와인모임 갔다가 마지막 마신 위스키가 문제였어요. 아침에 깨보니 무릎에 멍이 든 거예요. 지갑, 핸드폰 잃어버리고. 거의 없는 일이라 놀랐죠. 아파트 1층에서 넘어지면서 가방을 떨어뜨리고 그냥 올라간 거였어요. 술을 못 마시는 남자와 사귄 친구가 있어요. 그 남자친구는 이런 거 절대 이해 못한대요.(웃음)
기자 연애하기 힘들겠군요.
쵸키 굳이 남자친구와 술을 먹고 싶지 않아요.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죠. 오히려 친구들과 마시는 게 편해요.
이지민 저는 가족하고 술을 많이 마셔요. 남편과 술상 봐서 마시고 시부모님과도 마셔요. 시아버님은 막걸리, 시어머님은 맥주, 남편은 소주, 저는 와인을 먹어요. 남편은 세상에서 제가 만든 음식과 같이 마시는 술이 가장 좋대요. 취해서 깔깔깔 같이 웃다가 자요.
기자 그런 거 말고 밝히고 싶지 않은 얘기들이요.(웃음) 우선 저부터. 10년도 전인가 봐요. 11월에 막걸리를 먹고 택시를 탔어요. 따스하잖아요. 속에서 뭔가가 끓어올랐어요. 저의 술 철학은 ‘택시 안에서는 절대로 토하지 않는다’였어요. 저 때문에 영업을 못 하면 안 되잖아요. 급하면 차라리 가방에 했죠. 그날따라 가방이 작았고 바람을 쐬려고 택시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어요. 사달이 났어요. 찬 바람 쐬고 나아지긴 했는데 다시 택시 안으로 들어오려니 안 되는 거예요. 머리가 창문에 낀 거예요. 너무 놀라서 기사분을 불렀는데, 라디오의 ‘남행열차’ 노랫소리가 너무 컸어요. 그때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지고 멈췄어요. 옆 차선에 버스도 멈춰서 승객들이 다 쳐다봤죠. 지금도 잊지 못해요.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그 수많은 눈동자들을요. 그 이후로 토를 거의 안 합니다. 흠흠.(일동 폭소)
쵸키 요즘 같으면 사진 찍어서 에스엔에스에 올렸겠네요. 사실 토는 술과 패키지죠. 지금은 저도 안 하지만.(웃음)
이지민 대학원 뒤풀이였어요. 그날도 미친 듯이 술 마셨는데, 한 선배가 갑자기 안 보이는 거예요. 너무 취해서 느낌표, 물음표 붙여서 ‘오빠 나 너무 힘들어’ 문자 보냈어요. 제 뜻은 술을 너무 마셔서 이제 그만 파하자, 어디서 뭐 하느냐 뜻이었는데. 그 선배가 와야 끝나니깐요. 애가 셋인 선배였는데 부인이 그걸 보고 오해했어요. 이혼할 뻔했대요.
기자 만취 문자, 만취 전화통화 조심해야 돼요. 다음날 63빌딩에서 뛰어내리고 싶잖아요.
쵸키 입을 찢고 싶죠. 그래서 취하면 아예 핸드폰 처박아 두는 편입니다.
이지민 동생한테 피해 준 적 있어요. 수능 전날이었는데, 너무 속상한 일이 있어서 30분 만에 청하 5병을 마셨어요. 그러고는 고향(부산)집에 밤새 계속 울면서 전화한 거예요. 잠 설친 동생은 저 때문에 수학 문제를 20문제나 밀려 썼대요. 지금도 한 소리 해요.
쵸키 술 마시고 우는 거 진상입니다! 전 기분 나쁠 때 절대 술 안 마셔요. 좋을 때만 마셔요.
모두 송화백일주, 정말 맛있네요.
기자 안주 뭐 좋아하나요? 주량은?
쵸키 술꾼은 안주 안 먹잖아요. 술은 역시 공복에 먹어야 맛있어요. 배부르면 술이 안 들어가요. 맥주와 와인은 딱히 주량을 모르겠고요. 소주는 못 마셔요.
술 마시고 사고 치기도 하지만
유쾌한 시간 만드는
인간관계의 윤활유
이걸 왜 포기해? 이지민 저는 안주를 꼭 먹어야 된다고 배웠어요. 그래야 안 취한다고요. 취한 모습 보인 적 별로 없어요. 대학원에서 괴수주모라 불렀어요. 쵸키와 저는 대학원의 ‘황새’(황혼에서 새벽까지) 모임 회원이었어요. 쵸키 20대 후반, 직장생활 하면서부터 마시기 시작했어요. 다른 친구들도 그런 편이에요. 취업 초기에는 대학생 시절 느낌이 남아서 쇼핑하고 커피 마시죠. 그런데 돌아다니는 게 귀찮아져요. 남자들은 모이면 무조건 술 마시잖아요. 우리도 점점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옛날에는 취하려고 먹는다는 게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힘든 노동을 마치고 한잔 걸치는 술맛을 알게 됐죠. 애주가가 된 것은 와인 때문입니다. 마시다 술이 진짜 좋아졌어요.
이지민 고백하자면 저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요. 심지어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맥주를 조금 주셨어요. 맛을 보라고요. 술은 어른께 배워야 한다고 하시면서요. 중3 때도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한잔씩 주셨어요. 술 받는 법, 잔 받는 법 등 주도를 배웠죠. 맛만 봤어요. 아버지는 술을 담그셨어요. 20살부터는 막대한 술을 마시기 시작했죠.
모두 이 시점에서 원샷!
쵸키 이런 전통주 좋아하면 아저씨 되는 건데.(웃음) 술맛을 알면 죽을 날이 다가오는 거라잖아요. 저희 팀에는 ‘아저씨’가 많아요. 송화백일주 가져갔는데 좋아들 하더라고요.
이지민 선녀들이 마시는 약수로 만들었다는 설화가 내려오는 술이죠.
기자 우리가 선녀가 되는군요. 술 취한 선녀! 근데 꼭 불량서클 멤버 같군요.(웃음)
이지민 술량서클이죠.(웃음) 대학 때부터 온갖 술 다 먹었죠. 돈 좀 있으면 맥주 마시고. 회사생활 하면서 폭탄주 마시고, 와인회사 들어가서는 와인 엄청나게 마셨죠.
쵸키 저는 맥주로 술 시작했어요. 비싼 병맥주 말고요. 당시 미팅하면 술 마시잖아요. 1만원에 쓰레기 같은 안주 이만큼 주고 2000㏄나 3000㏄, 물 탄 거 같은 맥주로 마셨어요. 2차 가면 소주로. 남자들은 소주 먹으니깐. 돈이 없으니 4명이 소주 한병 주문해요, 술집 주인이 노려봤죠.
송화백일주를 다 마셔버린 술꾼녀 3명은 이강주를 주문하고 단숨에 마셔버린다.
쵸키 주당 선배가 한번은 ‘새로운 여자와 마시고 싶다’는 거예요. 남자와 여자는 다른 거 같아요. 저는 처음 만난 남자와는 술 마시는 거 불편해요. 잘생긴 남자면 더욱요.
기자 저도 그래요. 헛소리 막 해도 편한 사람들이 좋죠. 낮술도 좋아하시는지요?
쵸키 울릉도 여행 갔다가 절벽 술집에 갔는데, 멸치와 맥주 두병 마셨어요. 바람은 불고 바다는 파랗고. ‘딴 게 행복이 아니다. 이게 행복이다’ 했죠.
이지민 혼자 스페인 여행 가서 아침부터 하몬과 카바(스파클링와인)를 먹었어요. 걷다가 펍 발견하면 마시고, 스페인 남자들이 엄청 말 걸어왔죠.
쵸키 우리 같이 주신로드 만들까요?(웃음)
이지민 여신로드죠.
기자 2005년에 술집 소개 책,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 내고 방송 프로그램 ‘아침마당’에서 출연 요청이 온 적 있어요. 주제가 남편들은 왜 술 마시고 집에 늦게 오나였는데, 저는 남성 편에서 얘기를 해달라는 거였어요. 주변에서 완전히 말렸어요. 나쁜 이미지가 생긴다는 거였죠. 요즘도 여성들이 술 마시는 거에 대해 편견을 느끼나요?
이지민 없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죠. 오히려 어떤 술자리에서든 주사 없이 즐겁게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여성이 인정받는 거 같아요.
쵸키 아직 있죠. 여성의 술주정에 대해서는 남자보다 관대하지 않아요. 남자는 사회생활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죠. 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주사는 금물이죠.
기자 나에게 술이란?
이지민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고리! 술을 통해 사람들과 더 친해집니다. 일이 마음처럼 안 될 때 술 한잔하면서 털어놓으면 타인과의 친밀도가 높아져요. 좋은 사람, 맛있는 술과 음식, 즐거운 대화가 인생의 즐거움이죠. 꿈이 있어요. 영어, 중국어, 일어로 된 전통주 소개 누리집을 만들고 싶어요.
쵸키 애증관계! 술 마시다 사람한테 실망한 적도 있고, 다음날 숙취로 고생도 하지만 기쁠 때나 좋은 사람들 만날 때 언제나 술이 같이합니다. 관계를 극대화시키는 매개체죠. 근데 술로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도 있잖아요. 술 권하는 사회가 되면 안 됩니다. 앞으로는 술로 피해를 보는 이들을 위한 ‘클린 캠페인’도 만화에 담을 생각이에요.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만화 쵸키 제공
유쾌한 시간 만드는
인간관계의 윤활유
이걸 왜 포기해? 이지민 저는 안주를 꼭 먹어야 된다고 배웠어요. 그래야 안 취한다고요. 취한 모습 보인 적 별로 없어요. 대학원에서 괴수주모라 불렀어요. 쵸키와 저는 대학원의 ‘황새’(황혼에서 새벽까지) 모임 회원이었어요. 쵸키 20대 후반, 직장생활 하면서부터 마시기 시작했어요. 다른 친구들도 그런 편이에요. 취업 초기에는 대학생 시절 느낌이 남아서 쇼핑하고 커피 마시죠. 그런데 돌아다니는 게 귀찮아져요. 남자들은 모이면 무조건 술 마시잖아요. 우리도 점점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옛날에는 취하려고 먹는다는 게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힘든 노동을 마치고 한잔 걸치는 술맛을 알게 됐죠. 애주가가 된 것은 와인 때문입니다. 마시다 술이 진짜 좋아졌어요.
만화 대동여주도.
만화 대동여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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