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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즐거운 쓰레기통을 봤나

등록 2014-10-01 20:42수정 2014-10-02 10:20

시티브레이크 쓰레기통.
시티브레이크 쓰레기통.
[매거진 esc] 스타일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을 브랜드 전략 삼아 공연장 휴지통, 전통시장, 버스정류장 등을 바꾸는 현대카드 디자인랩의 실험
록페스티벌에 가면 왜 그리 쓰레기통 하나 찾기가 힘들까? 택시를 타면 왜 시트에 밴 담배 냄새, 시끄러운 라디오 소리, 뒤로 밀린 앞좌석 때문에 좁아진 뒷자리 공간 등에도 찍소리 못하고 불편을 감수하게 될까? 시골 장터에 가면 정겹긴 한데 왜 선뜻 물건을 사진 못할까? ‘대기업의 섬 개발=리조트 조성’일까? 와인은 꼭 따기 힘든 코르크 마개여야 할까?

돌려따는 신개념 와인인 ‘잇와인’.
돌려따는 신개념 와인인 ‘잇와인’.
질문이 참 두서없다. 누구를 향한 불만인지, 누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가도 제각각이다. 살아가면서 한번쯤 의문을 가져볼 만은 한 주제지만 ‘다 그런 거지 뭐’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잊기 쉬운 문제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먼저 하고 나서서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회사가 있다. 경영진부터 말단 사원까지 스타일을 중시하고 논리적 디자인을 고민하는 ‘현대카드’다.

지난 8월 현대카드가 준비한 마룬파이브, 오지 오즈번, 싸이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콘서트 행사인 ‘시티브레이크 2014’ 현장. 그곳에 쓰레기통이 있었다. 커다란 드럼통과 그보다 4배는 큰 수거함, 농구대 모양의 쓰레기통 등이 샛노란 색깔을 입고 콘서트장 곳곳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샛노란 옷을 입은 ‘쓰레기 처리’ 요원들도 바삐 움직였다. 행사 이틀 동안 9만5000명이 모였는데 나뒹구는 쓰레기가 없었다.

‘1호 순영 할머니’ 나물 가게와 다른 가게의 명함들.
‘1호 순영 할머니’ 나물 가게와 다른 가게의 명함들.
쓰레기뿐이 아니었다.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스태프들은 ‘인포메이션’을 맡았다. 각종 이벤트를 담당하는 보라색 티셔츠, 안전을 책임지는 검은색 티셔츠도 곳곳에 보였다. 등판에는 각 색깔 옷의 의미를 말해주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샛노란 옷의 등판은 쓰레기통이었다. 누구에게나 쉬워서 누구도 헤맬 필요가 없었다. 직관적이다.

마이택시.
마이택시.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의 4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봉평장.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장돌뱅이 허생원이 어김없이 나타날 듯한 이곳도 최근 색깔을 입었다. 농산물은 초록색, 먹거리는 황토 빗금, 수산물은 푸른색, 의류 상점은 보라색 천막을 썼다. 상인들은 같은 디자인의 앞치마를 했다. 시장 바닥에는 하얀색 선과 간명한 메시지가 갈 길을 알려준다. 시장 한쪽에는 그늘 쉼터가 생겼고 화장실은 깨끗해졌다.

신용카드 결제시장의 한부분인
택시에 대해 논하다가
조수석을 뗀 넓은 공간
아이 혼자 태워보낼 수 있는
스마트 환경까지 구현

디자인랩 내부 모습. ‘움직이는 벽’ 역할을 하는 수납장이 돋보인다.
디자인랩 내부 모습. ‘움직이는 벽’ 역할을 하는 수납장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신뢰’ 강화다. 상점부터 노점까지 천막 아래 소박한 간판이 내걸렸다. 얇은 간판에는 상인의 웃는 얼굴과 이름, 이 가게의 특징과 자랑거리가 쓰여 있다. ‘시장 1호 상인’이라는 봉평장 터줏대감 순영 할머니의 나물 가게에도 간판이 붙어 있다. 처음에는 새 앞치마를 거부하던 순영 할머니는 요즘 “간판 사진 찍을 때 더 웃을걸 그랬다”고 말한다고 한다. 1년여 사이 상인도 손님도 늘었다.

제주의 버스정류장.
제주의 버스정류장.
현대카드가 강원도와 손잡고 ‘봉평장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은 지난해 3월. “‘지키기 위한 변화’에 초점을 뒀어요. 봉평장만의 ‘이야기’를 살리고 불편한 부분은 바꿔야 한다는 점에 대해 1년 넘게 상인들과 소통하며 협력했어요. 홍보팀 직원들도 결합해 원활한 소통을 위해 나섰고 회사의 정규직 조리장들이 메밀로 만들 수 있는 메뉴 개발도 했죠.” 29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이정원 디자인랩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책상 책꽂이에는 ‘선을 살린 간결한 디자인’의 대명사인 미국 주간지 <타임>의 표지가 전면이 보이도록 놓여 있었다.

현대카드는 이런 일을 왜 할까? 보통 기업의 디자인실이라고 하면 그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기초적인 업무를 하게 마련이다. 휴대폰을 만드는 회사는 휴대폰을, 책을 만드는 회사는 책을 디자인할 것이다. 현대카드 디자인랩 역시 신용카드를 디자인하는 기본 업무도 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삶의 방식)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 현대카드의 브랜드 전략이다. 디자인랩은 고객의 삶 자체를 신경쓴다.

봉평장 풍경.
봉평장 풍경.
10여년 전 현대카드는 업계 최하위의 신생 신용카드사에 불과했다. 2007년 비욘세 등 세계적인 스타의 내한 콘서트를 기획할 당시만 해도 “돈이 많아서 그런가, 왜 저런 일을 할까”란 의문이 많았다. 하지만 2014년. “올해 마돈나가 내한한다는 소문이 돌았었는데 다들 저희 회사로 문의를 하더라고요. 그런 일을 벌일 데가 현대카드밖에 더 있겠느냐는 거죠.” 민운식 홍보팀장의 말이다. 8년 동안 19번의 슈퍼콘서트를 이어온 뒤 만들어진 브랜드 이미지다.

이정원 실장은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경력자다. 새로운 ‘미션’을 받아들 때마다 디자인랩은 타 부서와 결합해 브랜드 전략부터 수립한다. ‘슈퍼콘서트’가 브랜드라면 그를 통해 보여주고자 이미지를 향해 가는 과정이 브랜드 전략이다. 결과물로 보여지는 디자인이 제대로 나오려면 그 뿌리가 될 철학과 기획이 튼튼해야 한다. 디자인랩을 구성하는 직원 40명의 전공과 재주가 제각각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산업 디자인, 건축, 공간 디자인 등을 전공한 디자이너들과 기계공학, 전기공학 등을 전공한 공학도, 문학이나 패션 등을 전공한 마케터들이 서로 토론하고 협력한다. 여기에 프로젝트마다 유연하게 타 부서와 협업을 한다.

지난 5월 디자인랩이 내놓은 ‘마이택시’도 협업의 결과다. 신용카드 결제 시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택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예 생각을 전환해보기로 했다. “왜 택시를 탈 때마다 남의 차 얻어타는 불편한 기분이지?” 사무실 한쪽에 현대자동차의 경차 ‘레이’를 가져다 놓고 죄다 뜯어 다시 만들어봤다. 사용 빈도가 적은 조수석을 아예 떼 넓은 승객 공간을 확보하고 내비게이션부터 결제 시스템까지 아이 혼자 택시 태워 보내도 안심할 수 있는 스마트 환경을 구현했다. 금융회사 최초로 독일 하노버 국제포럼디자인이 주관하는 ‘이프(iF) 디자인 어워드’의 커뮤니케이션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매번 ‘현대카드 디자인’(Designed by Hyundai Card)이 또 이런 짓을 했어?’라는 소리를 들을 기대감을 갖고 일을 합니다.” 이 실장은 자신이 지난 10년 동안 해온 작업을 ‘과격하다’고 표현하며 웃었다. 아마도 그 정점에 서게 될지 모르는 프로젝트가 현재 진행중인 ‘가파도 프로젝트’다. 맞다, 이번엔 섬 그 자체다. 올레 이정표 디자인, 제주 버스정류장 디자인 등으로 제주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현대카드가 이번엔 서귀포시 모슬포 남쪽 바다에 있는 섬 ‘가파도’를 개발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들은 이번에도 질문했다. “개발은 언제나 무언가를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어야만 할까?” 240명이 살아가는 작고 깨끗한 섬, 이 섬의 식생과 문화, 역사를 그대로 살리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다듬어가는 것이 ‘가파도 프로젝트’의 목표다. 지난 5월 제주도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현대카드는 앞으로 3년은 더 이 일에 매달릴 터다.

누군가는 이들의 활동은 ‘영리한 마케팅’이라 부를 수 있고 또 누군가는 ‘기업의 사회공헌’이라 칭할 수도 있다. 브랜드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행태 자체가 세련되고 전략은 치밀하며 실행은 우직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디자인이, 그런 짓을 했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현대카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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