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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김 과장은 반바지 입고 출근한다

등록 2015-06-24 19:35수정 2015-06-25 08:51

반바지를 입고 출근한 케이티앤지 직원들. 왼쪽부터 구해림 과장, 김희진 대리, 이응한 대리, 오희승 대리, 배진용 과장.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반바지를 입고 출근한 케이티앤지 직원들. 왼쪽부터 구해림 과장, 김희진 대리, 이응한 대리, 오희승 대리, 배진용 과장.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매거진 esc] 라이프
출근 옷차림으로 반바지 허용하는 대기업 늘어 … 반팔 티보다는 긴팔 셔츠, 샌들보다는 운동화나 로퍼 추천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디오시와 춤을…’ 중)

디제이 디오시(DJ DOC)가 이렇게 노래한 게 1997년 일이다. 꼭 이 노래 때문은 아니었으나, 반바지 출근을 선동한 이가 있었다. “바지 길이로 남성의 자존심을 지키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바지 길이를 과감히 줄입시다. 그리고 장딴지와 발가락을 해방시킵시다.” 박중언 <한겨레> 당시 국제부 기자는 2000년 여름 내근하는 남자 동료들에게 이런 내용의 전자우편을 보냈다. ‘행동의 날’로 정한 7월10일, 그의 취지에 동의한 6명의 남자 기자가 반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하지만 신문사 안팎의 불편한 시선 탓인지 반바지는 점차 모습을 감췄고, 홀로 고군분투하던 박 기자도 언젠가부터 더는 반바지를 안 입게 됐다.

“우선 덥기도 했고, 언론사인 만큼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는 취지로 반바지 입기 운동을 제안했는데, 아무래도 바깥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는 분위기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어요. 내근 기자를 대상으로 했는데도 ‘바깥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면 좀 그렇지 않겠느냐’며 말리는 목소리가 많았죠. 결국 얼마 못 가 좌절되고 말았어요.” 지금은 디지털에디터를 하고 있는 박 부장의 말이다.

디제이 디오시의 파격적 제안은 10여년이 훌쩍 지나서야 점차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2012년 일부 중·고등학교에서 여름용 반바지 생활복을 도입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일부 직장에서 청바지를 넘어 아예 반바지 출근을 허용하는 사례도 속속 나왔다. 여름철 전력난 해소를 위해 실내온도를 2~3℃ 올리고 반팔 셔츠, 노타이로 대표되는 이른바 ‘쿨비즈’(쿨+비즈니스) 차림을 권장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면서 가능해졌다.

대기업 가운데 케이티앤지(KT&G), 에스케이씨앤씨(SK C&C), 에스케이하이닉스, 쌍방울 등이 2~3년 전부터 반바지 출근을 허용했다. 보수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따라붙는 공무원 조직인 서울시청마저 2012년부터 반바지 차림을 허용한 것은 상징적이다. 삼성그룹도 최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반바지 출근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다. 응답자 상당수가 ‘상황에 맞는 탄력 적용’을 지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오는 29일부터 금융사를 제외한 전 계열사에서 휴일 근무자에 한해 반바지 출근을 허용하기로 했다. 단 제일모직 패션부문은 패션업계 특성을 반영해 평일에도 반바지 출근이 가능하다.

회사에 반바지 입고 출근하면 어떤 분위기일까? 반바지 출근을 2012년부터 허용해 이제는 정착 단계인 케이티앤지 직원들을 만나 바뀐 분위기와 자기만의 반바지 코디 요령 등을 들어봤다. 지난 19일 찾아간 서울 강남 대치동 사옥에선 벌써부터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한 직원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2012년 반바지 출근 허용 케이티앤지
한여름엔 직원 절반 반바지 착용
삼성 계열 제일모직 패션부문
평일 반바지 출근 허용하기로

“반바지 입고 출근해보니 정말 편해서 계속 입게 되더라고요. 퇴근 뒤 한잔할 때면 정장 입은 친구들이 그렇게 저를 부러워해요. 다만 아버지가 보수적인 금융권 회사 출신이라 부모님은 좀 혼란스러워하셨죠. 처음에 반바지 입고 회사 다녀오니 어머니께서 ‘넌 회사 안 가고 어딜 놀러 갔다 왔니?’ 하셨다니까요. 하하~.”(이응한 대리)

“한때는 반바지 매력에 푹 빠져서 월화수목금 색깔별로 입기도 했어요. 맵시를 위해 한번은 일회용 면도기 들고 한시간 동안 끙끙대며 다리털 제모를 해보기도 했고요. 이제 그렇게까지 하진 않지만, 반바지 출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어요.”(배진용 과장)

지난해 ‘시원차림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홍보실 직원들의 패러디 포스터.(사진 케이티앤지 제공)
지난해 ‘시원차림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홍보실 직원들의 패러디 포스터.(사진 케이티앤지 제공)
지난해 케이티앤지에서 한창 더울 때는 절반 가까이 반바지 차림일 정도로 반바지 출근이 일상화됐다고 한다. 부서별로 직원들이 반바지 입고 사진을 찍어 사내게시판에 올리면 심사해 포상하는 ‘시원차림 콘테스트’도 했다. 홍보실 직원들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 포스터를 패러디한 ‘더위와의 전쟁’ 사진으로 상금을 받아 피자를 사먹었다고 한다.

물론 초기에는 과도기와 적응기를 거쳤다. 20~30대 젊은층은 비교적 세련되게 잘 입었지만, 40대 이상 직원들은 그야말로 시원함만을 중시하는 실용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기도 했단다. 처음에는 7부바지를 입고 목이 긴 양복 양말에 샌들을 신은 경우도 가끔 있었지만, 이제 그런 차림은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은 다들 세련되게 코디를 잘해요. 설혹 세련까지는 아니어도 그렇게 보기 싫거나 하진 않아요. 반바지가 너무 안 어울리는 분은 알아서 안 입고 오시는 것 같아요.” 여직원들의 얘기다.

반바지 차림으로 근무하는 김학순 대리.  사진 박미향 기자 <A href="mailto:mh@hani.co.kr">mh@hani.co.kr</A>
반바지 차림으로 근무하는 김학순 대리.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그렇다면 반바지를 잘 입는 나만의 요령은 어떤 게 있을까? 배진용 과장은 “스타일링을 위해 위에는 마 같은 시원한 소재의 긴팔 셔츠를 소매 걷어 입는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반바지를 입고 모인 남자 직원 4명 중 3명이 긴팔 셔츠를 입었다. 김학순 대리는 “아래위가 다 반바지, 반팔이면 너무 느슨한 휴양지 패션처럼 보일까봐 긴팔 셔츠를 선호한다”고 했다. 구해림 과장은 “반바지에 반팔 옷을 입을 땐 얇은 재킷을 걸친다”고 했다.

길이는 무릎 살짝 위가 대세다. 또 펑퍼짐한 것보다는 슬림한 스타일을 선호한다. 셔츠를 바깥으로 빼서 입기도 하지만, 좀더 단정한 느낌을 위해 바지 안으로 집어넣을 때가 많다. 소재는 면이나 마를 선호한다. 감색, 회색, 푸른색 계열의 단색 바지를 주로 입되, 가끔은 스트라이프 같은 무늬가 들어간 것도 입는다고 한다. 오희승 대리는 “자칭 ‘패셔니스타’인 분이 한번은 얼룩말 무늬 반바지를 입고 왔는데, 화려하고 시원해 보여 좋더라”고 말했다.

남성복 브랜드 ‘커스텀멜로우’의 손형오 디자인 실장은 “반바지는 때와 장소에 맞춰 스타일링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나 직장에서는 어두운 색상의 마 소재 반바지에 셔츠나 재킷을 코디해 단정한 느낌을 주는 것이 좋다. 반면 평상시에는 차가운 색 계열의 다양한 무늬가 있는 반바지로 시원하고 경쾌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반바지에 어떤 신발을 신을지도 고민되는 문제다. 정장구두보다는 로퍼, 단화, 슬립온, 보트슈즈, 운동화 등을 주로 신는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여기에 발목양말이나 맨발처럼 보이는 덧신을 애용한다. 아무래도 발가락을 내놓는 샌들은 피하는 편이라고 한다.

반바지 차림으로 외부 사람을 만날 때도 부담이 없을까? “반바지 입고 외부인을 만나면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있어요. 가볍고 예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저도 잘 알죠.” 배진용 과장이 그래서 생각해낸 비법은 회사에 긴바지 한 벌을 가져다 놓는 것이다. 갑자기 외부인을 만날 일이 생기면 갈아입고 나간다. 물론 그럴 일이 그렇게 많진 않다. 외부 미팅이 잡힌 날은 애초 긴바지를 입고 출근하고, 반바지는 내근할 때만 입고 오기 때문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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